“세 살 때 서울 상계동에 있던 집이 철거되고 광주대단지로 왔어요. 나이 쉰 넘어 겨우 집 가져보나 했는데, 또 나가라니…. 철거민 팔자 어디 가겠습니까.”
광주대단지는 1970년대 초 서울 도시 개발을 이유로 쫓겨난 이들이 정착한 곳으로, 지금의 경기도 성남에 해당한다. 이주민들은 일자리 부족과 투기로 인한 땅값 상승에 분노해 정부에 집단 대항했다. 이른바 ‘광주대단지 사건’이 일어난 지 50년이 된 올해, 다시 그곳에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이재명 후보가 “제가 한 겁니다”라고 밝힌 이 개발 사업의 핵심은 소수의 특정인들이 천문학적인 개발 이익을 챙겼다는 사실이다.
도시 개발과 재개발을 거듭하며 성남은 ‘제2의 강남’이 됐지만, 정작 도시를 일군 철거민 일부는 여전히 도시 빈민으로 남아있다. 개발 과정에서 소수가 이익을 독점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는 집 뺏기고 보상은 제대로 받지 못한 원주민과 세입자의 몫. <아무튼, 주말>이 성남 대장동 도시개발구역, 산성동 재개발구역 주민들을 만났다.
◇“도와준다더니 당선되고 돌변했다”
2014년 결정된 대장동 도시 개발은, 대장동 210번지 일원을 개발한 이익으로 성남 신흥동에 공원을 조성하는 민관 공동 사업이다. 개발 전 이곳 일대는 산지 지형으로 우계 이씨 가문과 타지에서 들어와 정착한 이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이들은 입찰 당시 제시된 가격보다 낮은 보상을 받았다. 2015년 성남시의회 회의록에 따르면, 시의회는 성남도시개발공사 관계자에게 토지보상금이 시세 대비 터무니없이 낮아 주민들 항의가 거셀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으로 당선되기 전, 마을에서는 자체적으로 이곳을 민간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당시 개발을 추진했던 원주민 이호근(75)씨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후보가 ‘당선되면 민간 개발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선 이후 기존 사업자를 배제하고 민관 공동 개발 방식으로 한다며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태어날 때부터 살았던 종중 땅을 개발하려고 애를 썼는데, 이 후보가 도와준다고 해서 믿고 지지했다. 그런데 한순간 돌변한 모습에 충격이 컸다”고 했다.
◇맹지된 땅, 헬리콥터 타고 가야 할 판
38년째 대장동에서 벼농사를 지어온 최경자(61)씨는 2014년 집으로 날아온 우편물 한 통으로 개발 사업을 처음 접했다. 최씨는 보상 금액이 적어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주변에서 말렸고, 결국 토지 구획별로 평(3.3㎡)당 80만~120만원씩 보상받았다. 최씨는 “상가 딱지(생활대책용지) 준다고도 했는데, 계약금도 비싸고 언제 지어질지도 몰라 불안했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해 딱지는 금방 팔아버렸다”고 했다.
도시개발공사의 땅 매입 후 최씨의 남은 땅은 맹지(盲地)가 됐다. 개발 이후 최씨 소유의 산 아래 아파트가 들어서자, 입구가 막혀버린 것이다. 최씨는 “산에 시아버지 산소와 조상 묘들이 있는데 길이 막혀 2년째 찾아가지도 못했다. 묘 이장을 하려고 해도 헬리콥터를 타야 할 판”이라며 “뉴스를 보니 이재명 후보는 개발 이익을 시에 환원했단다. 대체 땅 빼앗긴 시민에게 뭘 해줬단 말인가”라고 했다.
또 다른 주민 이모(77)씨는 50년 동안 대장동에 살다 4년 전 이사했다. 이씨는 고령인 데다 보상 관련 도움을 받을 가족도 없어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이씨는 “스물세 살에 시집와 일흔 넘을 때까지 살았다. 없는 살림에 남의 땅 위에 비닐하우스 개조해 살았는데, 개발한다고 난리더니 3000만원 이사비만 받고, 그마저도 빚 갚기 바빴다”고 했다.
◇代를 이어 철거민 된 사람들
성남 산성동은 재개발이 한창이다. 집마다 대문에 빈집(空家)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있고, 떠난 주민이 버리고 간 장롱, 식기구들이 골목에 나와 있다. 이곳은 대장동 개발 사업과 같은 해인 2014년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재개발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주민들의 이주는 작년 10월 26일부터 시작돼 1년을 기한으로 한다. 계획대로라면 지난 26일 모든 주민이 이주해야 하는데, 아직 이곳에는 200여 명의 주민이 있다. 남아있는 이들은 주로 세입자와 영세 상인들이다.
1971년 서울 상계동에서 광주대단지로 이사 온 철거민 김성환(53)씨는 “‘콘티빵’ 공장 옆 중간마을에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몰려 살았다. 아버지가 빵 배달하면서 우리 6남매를 키웠다”고 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살림이 나아지자 15년 전 산성동 빌라 주택을 샀다. 재개발이 확정되고 조합으로부터 아파트 분양권을 받았는데, 자기 부담금 2억5000여 만원을 낼 수 없어 포기해야 했다. 김씨는 “겨우 내 집에서 사람처럼 살아보려 했는데 또 집이 강제 수용당하고,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됐다”고 했다.
산성동 주민대책위원장 김정태(65)씨는 1974년 서울 신도림동에서 철거민이 된 후 가족과 함께 성남 신흥동으로 이주했다. 그는 “재개발, 재건축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근데 당장 집 뺏긴 사람에게 대책은 마련해줘야지. 시민운동,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 후보? 내 삶이 이런데 뭘 기대하나”라고 했다.
◇배관 터져 물바다 돼도…“당장 나가라”
세입자들 집에 문제가 생겨 집주인에게 털어놓아도, 돌아오는 말은 ‘불편하면 나가라’는 말뿐이다. 이우영(44)씨는 석 달 전 지하실 수도 배관이 터져 허리까지 물이 차올랐다. 이씨는 “아침에 물이 나오지 않아 지하실로 내려갔더니, 배관이 잘려 물이 콸콸 넘치고 있었다. 겨우 수리했지만 아직도 지하실은 정강이까지 물이 차 있다. 곧 겨울인데 물이 얼까 봐 두렵다”고 했다. 이씨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유공자. 영세민에게 제공되는 아파트에서 아버지와 살다가 12년 전 지금의 빌라에 정착했다.
집주인들의 퇴거 압박도 커지고 있다. 손모(69)씨가 살고 있는 집 주인은 일주일에 한 번씩 손씨의 현관 문 앞에서 욕설을 하고 간다. 지난여름에는 손씨가 사는 집 위층 보일러 배관이 터져 누수가 생기는 바람에 방 안에 시커먼 곰팡이가 폈다. 손씨는 “매일 욕하는 주인에게 곰팡이 생겼으니 고쳐 달라는 말을 어떻게 꺼내겠나. 제일 이사 나가고 싶은 건 난데, 갑상샘과 관절 질환으로 지난달 병원비만 1600만원이 나왔다”고 했다.
남은 주민들은 범죄에도 쉽게 노출된다. 지난 8월 주민 조모(52)씨는 집에 있던 중 갑자기 침입한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당시 고등학생 딸이 외출 뒤 들어온 줄 알았지만 낌새가 이상해 소리쳤더니 해당 남성은 조씨의 입을 막고 ‘가만있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했다. 조씨가 강하게 저항하고 소리치자 도망갔다. 조씨는 “혼자 있기에 망정이지 딸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더 아찔하다. 이주하지 않으니 일부러 협박하는 건가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광주대단지 50년, 왜 달라진 게 없을까
광주대단지 개발 당시 주민 구성은 철거‧이주민이 96%, 원주민이 4%였다. 1971년 8월 10일 철거민들은 열악한 주거 상황과 투기업자들의 횡행에 조직적으로 항의했다. 광주대단지 사건을 연구해 온 임미리 정치학 박사는 “폭력과 빈곤으로 낙인찍힌 도시 성남에서 차별과 배제에 대항한 조직이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다”며 “하지만 더 나아가지 못하고 고착과 퇴행으로 고립되고 말았다”고 했다.
대장동 주민 이호근씨는 말했다. “광주대단지 때 저는 농사짓고 있었어요. 오래전이라 기억은 흐릿해도 부동산 브로커로 이름 날린 김○○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50년 뒤 주민 등쳐 폭리를 취하는 일이 여전히 일어나는 현실은 참, 진절머리가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