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중 유일하게 삼치를 잡은 학생은 "나 진짜 어부 해야 되나 봐!"라며 인증 사진을 남겼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바다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주인공 홍두식은 귀어(歸漁)한 청년이다. 어촌에서 태어나 서울로 대학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U턴형 귀어다. 알고 보면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지만, 최저 시급을 받고 어선의 조업을 돕거나 마을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일명 ‘홍 반장’으로 불린다. 왜 “최고 사양 컴퓨터로 지뢰 찾기, 수퍼카로 논두렁 달리기”를 하느냐는 물음에 홍 반장은 답한다. “인생은 수학 공식이 아니라고. 정답이 없어. 그저 문제가 주어졌고, 내가 이렇게 풀기로 결심한 거야.”

홍 반장처럼 도시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귀촌, 아니 귀어를 꿈꾸는 이가 늘고 있다. 그 첫 길잡이인 ‘귀어학교’도 북적인다. 귀어학교는 귀어·귀촌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어선어업·양식업의 기초를 알려주고 이들의 어촌 정착을 돕는 교육 기관. 강릉·통영·강진 등 6곳에서 운영 중이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귀어 가구는 전년 대비 0.8% 줄었지만, 귀어학교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강원귀어학교 관계자는 “지난 기수는 15명을 뽑는데 170명이 지원해 영상 통화로 면접을 봐서 선발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요즘 도시에서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다 보니 귀어를 고려하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고 찾아오시는 분도 있고요.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제2의 인생을 모색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무튼, 주말>이 그 현장을 찾았다.

지난 18일 강원귀어학교 학생들이 강릉 사천진항 인근 해상에서 미끼를 이용해 물고기 낚는 법을 배우고 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제2의 삶 꿈꾸는 사람들…30%가 20~30대

지난 18일 오전 9시, 강원도 강릉 사천면 사천진항에서 귀어학교 학생 6명을 실은 3.9톤급 어선 ‘만복호’가 출항했다. 소싯적 월척 무용담을 자랑하는 학생부터 생애 두 번째 배를 탄다는 젊은 학생까지 다 같이 선상 테이블에 둘러앉아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홀짝였다. 이날 파고는 0.8m. 잔잔한 편이라는데도 요동치는 파도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날의 실습 과제는 긴 낚싯줄에 여러 개의 낚싯바늘을 끼워 고기를 잡는 주낙 어법. 멍게 양식장을 지나 복어가 많이 잡힌다는 수심 120m권으로 향했다. 선생님이 테두리에 낚싯바늘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 상자를 나눠주자, 학생들은 큼지막한 바구니에 담긴 3일 염장한 정어리를 낚싯바늘에 끼우기 시작했다. “전날 미끼를 끼워두고 새벽에 나가자마자 상자들을 바다에 뿌리는 거예요. 그리고 일출 때 회수하면 복어를 잡을 수 있죠.”

만복호 선장은 가짜 미끼(루어)를 달고 위아래로 움직이며 고기를 낚는 ‘지깅 낚시’도 가르쳐줬다. “먹이를 찾는 갈매기들이 날아가는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물고기가 물 위로 떠올라 보글보글 거품이 끓는 듯한 지점이 보일 거예요. 이 ‘보일링’ 현상이 바로 고기 떼가 있다는 징표입니다.” 보일링 지점이 가까워지자 학생들은 “왔다! 왔다” “위치로! 위치로!” 하며 날쌔게 움직였다. 입질은커녕 줄이 꼬이고, 끊어지고, 미끼까지 잃어버리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선장은 “하루 이틀 만에 성공할 순 없다. 오늘은 충분히 연습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라”며 위로했다.

이달 초 교육을 시작한 강원귀어학교 5기 교육생은 총 21명. 40~50대가 많지만 20~30대 학생도 30%에 달했다. 직업도 호텔 셰프·프로그래머·은행원 등으로 다양했다. 서울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20년 가까이 일한 권세만(38)씨는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찌들어 있다가 배 하나 사서 어업을 해볼까 하고 귀어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내를 설득하기가 제일 어려웠는데, 회사 생활에 치여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더니 결국 허락해줬죠. 공기도 좋고 도시보다 놀거리도 많아서 아이들 키우기도 좋을 것 같아요.” 권씨는 “어업에 IT를 접목해 수산물 직거래 장터 앱을 만들어보고 싶다”면서 “요즘 어업은 단순 1차 산업이 아니라 1x2x3, 총 6차 산업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또 다른 학생 원덕식(32)씨는 “은행에 다니고 있는데 퇴직하고 어부가 되고 싶어 귀어학교를 지원했다”면서 “방위나 바람, 조류 읽는 법부터 수산업 관련 정책이나 정부 지원받는 법까지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했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 도시에서의 삶을 버리고 바다마을로 돌아온 주인공 홍반장. /tvN

◇경조사에 참여하시겠습니까?

‘동네의 경조사와 지역의 사회 활동에 참여할 예정입니까?’ ‘어촌에서의 조기 정착을 위하여 원어민과 융화에 자신이 있습니까?’ 귀어·귀촌 종합센터에서 제공하는 ‘귀어단계별 체크리스트’ 문항들이다. 귀어학교를 졸업해 실제로 어촌에 정착한 선배들은 “어촌 공동체에 어떻게 융화되느냐에 따라 정착의 성패가 달렸다”고 입을 모았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 각종 마을 행사 및 잡다한 일들에 빠지지 않는 홍 반장의 오지랖이 실은 어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비결인 셈이다.

경남 통영에서 가두리 양식업을 하는 장부근(40)씨는 오전에는 가두리 양식장에 출근해 참돔 치어에게 사료를 주고, 오후에는 동네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다. “어르신이 그물 갈아야 한다고 하면 나서서 도와드리고, 다른 형님네 물고기가 병이 났다고 하면 수산질병관리사를 데리고 오기도 하고요.” 그는 통영 출신이지만 고향이 아닌 다른 마을로 귀어하는 J턴형 귀어를 선택했다. “외지인이 버티려면 어쩔 수 없어요. 누가 힘쓰는 작업 한다고 하면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내밀어야 하고, 마을 대동제가 열린다고 하면 돈도 좀 갖다 드리고….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죠. 내 아니면 이런 일 누가 도와줄 끼고!”

4~6주 정도의 귀어학교 교육만으론 바로 현장에 투입되기도 어렵다. 경상남도귀어학교의 김덕현 사무국장은 “귀농과 달리 귀어는 배를 조종하는 법, 그물 내리고 올리는 법, 닻을 놓는 법 등 배워야 할 전문 지식이 많다”고 했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꿈을 갖고 왔다가 현실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죠. 직장 생활을 하다가 귀어했다는 사실을 주변에 숨기고 싶어 하기도 하고요.”

정부에서 귀어 자금을 지원받고 배를 구해도, 배를 정박하고 작업할 공간인 ‘뱃자리’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김 사무국장은 “귀어 애로 사항의 1순위가 뱃자리 구하기”라면서 “주차장처럼 아무 데나 배를 갖다댈 수가 없고 기득권을 지닌 어촌계에서 허락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외지인은 뱃자리를 못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어촌과 연고가 없는 젊은이가 정착에 성공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예요. 개인 역량에 따라 동네 허드렛일 해주고 인맥을 쌓아서 자연스레 흡수되는 사람도 있지만 좌절하고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도 많아요.”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그럼에도 미세 먼지 없이 쾌청한 하늘과 어디서든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맑은 바다는 어촌 생활을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다. 수확을 위해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농사와 달리 그날 잡은 어획량을 그날 내다 팔 수 있다는 것도 어업의 장점. 강릉 영진항에서 통발 낚시를 하는 이용철(40)씨는 새벽 3~4시에 출항해 5~6시간 조업 후 8시쯤 항구로 돌아온다. 그날 잡은 문어를 들고 경매장에 입찰하러 갔다가 돌아와서 배를 정리하고 9~10시쯤 퇴근한다. 이씨는 “바다는 일한 만큼 돌려주기 때문에 부지런하기만 하면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면서 “오전에 퇴근해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했다. 축구 선수 출신인 그는 귀어학교를 다니고 6개월간 무급으로 어선을 타면서 장기간 귀어를 준비했다. “제 유튜브를 보고 어떤 분이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서울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데 코로나 때문에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됐다고요. 귀어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쉽게 조언을 못 해드리겠더라고요.” 그는 “도피성 귀어보다는 교육도 받고 체험도 해보시면서 적성에 맞는지 오래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강릉 사천면 사천진리의 박성호 이장은 “정부도 무조건 돈부터 빌려주기보단, 주거를 지원해주고 방파제를 새로 만들어 뱃자리를 늘리거나, 귀어인을 위한 뱃자리를 따로 지정해주는 등 제도적으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인생을 걸고 어촌에 오는 젊은이들이 마음 편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줘야 어촌도 젊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