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 관전하는 재미가 신통치 않고 볼만한 드라마도 없는 요즘, 힐링 프로그램을 하나 만났습니다. TV조선이 지난주 목요일 첫 방송을 시작한 ‘내일은 국민가수’입니다. <아무튼, 주말> 마감이 매주 목요일이라 본방송을 놓쳤다가 주말에 재방송으로 봤는데요. 방송 2시간 내내 TV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실은 큰 기대 안 했었지요. 흥으로 뭉친 트로트가 아니라 K팝이란 이름 아래 모든 장르의 노래들이 우르르 나온대서요. 본방을 사수한 시어머니, 친정어머니도 “어째 미스터트롯만 못하다” 하시길래 시큰둥해하던 참인데, 이 또한 세대 차이였을까요. 막상 방송을 보니 입이 딱 벌어지더군요. 결론부터 말하면, 참가자들 수준이 ‘역대급’이었습니다.
늘 그랬듯이 저는 데스 매치나 팀 미션보다는 첫 무대인 마스터 예선을 가장 좋아합니다. 강호의 고수, 진흙 속 보석을 캐내는 기쁨이랄까요. 저마다 사연들도 절절해 팔뚝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지요. ‘내일은 국민가수’에도 그런 보배들이 대거 눈에 띄더군요. 어머니에게 미용실을 차려주고 싶어 멋지게 솔을 열창한 청년, 얼굴 없는 CF 가수이지만 레이디 가가 뺨치는 음색으로 객석을 집어삼킨 여성, 무대 공포증으로 가수를 포기했다가 다시 용기를 낸 젊은 아빠, 무명 통기타 가수로 수십 년 거리를 전전해온 쉰 살의 가객까지.
한 참가자의 경연을 보다가는 그만 눈물을 흘렸습니다. ‘미스터트롯’에서 정동원이 ‘이 풍진 세상’을 부를 때 울어버린 뒤 아마 처음일 겁니다. 부산 어느 닭갈비 집에서 하루 수백 개 숯불을 구워내면서도 음악에 대한 꿈을 놓지 않고 상경한 김동현씨 무대. 록그룹 부활의 ‘비밀’을 원곡보다 더 맑게, 더 애절하게 불러준 바람에 올하트를 받았지요. 덕분에 ‘사랑할수록’ ‘네버엔딩 스토리’ 등 부활의 명곡들을 다시 찾아 들으며 괴짜 기타리스트 김태원의 천재성에 새삼 감탄했습니다.
이주천의 ‘Reality(리앨러티)’에 마음을 빼앗긴 분도 많을 겁니다. LA 어바인에서 왔다는 이 잘생긴 청년은 영화 ‘라붐’ 주제가를 코끝 찡긋거리고 눈웃음 날려가며 본토(?) 발음으로 불러서 여심을 저격했지요. 가창력이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뭇 소녀들 가슴을 설레게 했던 왕년의 ‘교회 오빠’ 같은 느낌이라 그냥 좋더군요.ㅎㅎ
이들이 다 어디 숨어 있다가 나왔나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프로 가수들이 무안해할 만큼 절창을 쏟는 모습에 ‘기회의 공정’이란 말을 곱씹게 되고요. ‘역사는 이름 없는 국민들이 만들어왔다’는 나훈아 말도 떠오르고요.
이래저래 올가을은 국민가수들 향연에 푹 빠져 지낼 모양입니다.
김윤덕 주말뉴스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