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쇠락한 공업도시 빌바오를 한 해 100만명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로 변모시킨 건 한 미술관이었다. 1997년 빌바오 시가 1억유로(약 1380억원)를 들여 유치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개관 3년 만에 관광객 약 400만명을 불러 모아, 5억유로 상당의 경제적 효과를 도시에 안겼다. 이제 빌바오는 한 도시의 건축물이 그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할 때 쓰는 대명사로 통한다.
전북 남원은 한국의 빌바오를 꿈꾸는 곳이다. 이 도시에는 화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있다. 2018년 3월 문을 연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이다. 화가 김병종(69·가천대 석좌교수)이 자신의 작품 400점을 고향인 남원시에 기증하면서 건립 토대를 닦았다. 29세에 최연소 서울대 미대교수가 된 그는 서울대 미대 학장, 서울대 미술관 관장 등을 지냈다. 서울·파리·시카고·브뤼셀·바젤 등에서 스무 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영국 대영박물관, 캐나다 온타리오 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처음엔 지역 주민들 사이 입소문이 나더니, 3년 만에 전국에서 20만명이 미술관을 다녀갔다. 거리 두기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는 코로나 시기임에도 주중 평균 300명, 주말이면 600명이 찾는다. 그간 남원은 오전에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고 추어탕 한 그릇 먹은 뒤 전주나 여수 등지로 떠나는 ‘거쳐 가는 도시’ 이미지가 강했지만, 미술관이 남원을 ‘머물러도 좋은 도시’로 만들었다. 가을 초입, 화가 김병종과 함께 남원을 찾았다.
◇작품 400점 기증은 어린 시절 나에 대한 보상
열다섯 살, 화가가 호기롭게 첫 개인전을 연 복지다방 자리엔 이제 같은 이름의 건강원이 서 있다. 그 앞 남원역은 더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역이 됐다. 초기 작품인 ‘바보 예수’ 시리즈의 모태가 된 동북 교회만이 자리를 지켰다.
김병종은 아쉬운 듯 동네를 서성이다, 이내 옛 추억이 떠오르는 듯 웃었다. “화랑도 없던 소도시라, 한복 입은 마담을 찾아 직접 전시 허락을 받았지요. 중학교 2학년 때니까, 첫 개인전인 셈입니다. 아, 저쪽엔 좋아하던 누나 집이 있었는데….”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학교 다녀오기 무섭게 가방 던져 놓고 그림 그리러 갔던 광한루원의 수백 년 된 고목은 아직도 봄이면 새싹을 틔운다. 그가 화판을 받쳐놓고 숱한 그림을 그렸던, 바로 그 나무다.
미래의 구겐하임 빌바오를 꿈꾸는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지리산 자락 아래 함파우 길에 있다. 지상 2층 1442㎡(450평) 규모다. 노출 콘크리트 기법을 사용해 마치 상자를 서로 포개 놓은 형상이다. 국내 건축가 김은숙, 전해갑씨 등이 설계했다. 미술관 앞 소나무 3그루는 김병종이 나고 자란 송동(松洞) 주민이 기증했다고 한다.
3개 전시실로 구성된 미술관은 평소엔 김병종 대표 작품들을 상설 전시한다. 미처 공개하지 못한 작품은 1년에 한두 차례 ‘특별전’으로 소개하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기다. 오는 11월 14일까지 김병종 미공개 작품을 중심으로 한 ‘생명의 숲과 바다’전이 열린다. 생명과 숲과 바다는 김병종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다.
“어릴 적 노송 아래서 듣던 솔바람 소리가 영혼의 모음(母音)처럼 느껴지고, 봄이면 분분히 날아다니는 송홧가루가 노란 구름처럼 보였다.” 그는 유년 시절 황홀했던 자연에서의 경험이 자신의 기억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화폭 위에 쏟아져 나왔음을 고백한다. ‘송화 분분’ ‘풍죽’ 시리즈는 그 기억 창고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2층 전시관은 일부 작품들이 낮은 키로 걸려 있다. 어린이들이 자기 눈높이에서 볼 수 있게 배려한 공간이다. 미술관 유치석 학예사는 “김병종의 작품은 따뜻하고 눈을 편하게 해, 어린아이들도 무척 좋아한다. 아이들이 더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게 위치를 조정했다”고 말했다.
미술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미술관 한쪽에 있는 미안 커피에서 화가와 마주 앉았다. 처음엔 100점만 기증하려고 했단다. 고사도 여러 차례 했다. 이환주 남원시장의 끈질긴 구애에, 작품 400점과 국내외에서 수집한 인문·예술서적 5000여 권을 내려 보냈다. 김병종은 “어릴 적 미술관은 물론, 마음껏 책을 빌려볼 수 있는 도서관이 전무한 것이 늘 아쉬웠다”며 “14~15세 무렵의 나에 대한 일종의 보상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가 기증한 책들은 미안 커피 내부를 가득 채웠다. 서울의 웬만한 북카페보다 다양한 진용을 갖춰, 눈으로만 쓱 보는 데도 탐나는 책이 여럿 있다. 하루의 반나절은 미술관에서 보내다, 다리 아플 즈음 카페에 파묻혀 지내면 좋겠다. 처음엔 ‘미술관 안 커피’여서 ‘미안 커피’였지만, 어느새 ‘맛있어서 미안’이란 별칭이 붙었다는 이야기만큼이나 서리태라테가 고소하고 맛있었다.
◇소년의 데생 공부 장소였던 광한루원
미술관과 멀지 않은 곳에 소년 김병종이 학교 마치기 무섭게 그림 그리러 달려갔다는 광한루원이 있다. ‘춘향전’에서 춘향과 이도령이 만났다는 광한루를 비롯해 어른 팔뚝만 한 잉어들이 사는 연못, 못 속에 떠 있는 듯한 세 개의 섬(삼신산), 오작교 등이 모여 누원을 조성한 곳이다. 1444년 전라감사 정인지가 경관을 감상하다가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부가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하고 감탄했다는 데서 광한루라는 명칭이 생겼다. 당시 건물은 정유재란으로 소실됐고, 현재 건물은 인조 16년에 복원한 것이다.
지금은 입장료 3000원을 받지만, 그때는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는 정원이 다 소년의 것이었다. 큰 고목에 화판을 세워놓고 눈에 보이는 건 모조리 스케치했다. 아쉽게도 그때는 누구 하나 격려해 주는 사람이 없었단다. “고놈 참 잘 그리긴 하는데…. 그러다 굶어 죽는다”고 핀잔만 주었다. 그 소년이 자라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세울 줄은 몰랐을 것이다.
조금 더 광한루를 즐기고 싶다면, 인근에 자리한 화인당에서 전통 한복을 빌려 입어도 좋다.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 명장이 직접 디자인한 한복을 입을 수 있다. 셀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도 있어, 색다른 추억을 남길 수 있다. 한복을 입으면 광한루원 입장도 무료다.
광한루원 북문 인근에는 전통 한옥 숙박단지 남원 예촌이 있다. 남원엔 제대로 된 숙박 시설이 부족할 것이란 편견을 깨는 곳이다. 최기영 대목장(중요무형문화재 74호)이 설계부터 완공까지 책임졌고, 숭례문·창덕궁·경복궁 등에 기와를 얹은 이근복 번와장(翻瓦匠·중요무형문화재 121호)도 참여했다. 시멘트·스티로폼·화학단열재 등 인공 소재를 쓰지 않고 황토·한지·소나무·대나무 등 자연 재료로 전통 방식을 따랐다. 춘향테마파크 내 춘향가는 김병종이 단골로 묵는 숙소. 하룻밤 10만원 내외로 깔끔한 온돌방을 즐길 수 있다.
◇최명희와 혼불, 가을의 서도역
“사과 냄새가 시고 향기롭게, 그러나 서글프게 섞여 있는 시월의 햇발을 받고 앉아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여러 가지가 고맙기만 합니다.”
대하소설 ‘혼불’의 무대인 남원시 사매면에 조성된 혼불문학관에는 최명희가 김병종에게 1980년 가을 보낸 편지가 전시돼 있다. 편지는 김병종이 2018년 기증했다. 그는 “손 편지가 사라지는 요즘 시대에 오탈자 하나 없이 또박또박 단아하게 써진 문장이 다시 봐도 감동을 준다”고 했다.
두 사람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해 1월 최 작가는 단편소설 ‘스러지는 빛’으로, 김병종은 희곡 ‘지붕 위에 오르기’로 신춘문예에 나란히 입상했다. 최 작가의 외가가 남원이라 쉽게 친분을 쌓았다.
혼불문학관에는 편지뿐 아니라 최명희가 생전 사용한 만년필, 커피잔, 원고지 등도 전시돼 있다. 혼불이 언어로 보여준 호남지방의 세시 풍속, 관혼상제 등도 디오라마(축소 모형)로 자세히 설명한다.
혼불 1권이 나왔을 때였다. 최 작가가 화가의 작업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어쩌면 신문에 월평(月評) 하나 써주는 사람이 없죠?” 최명희의 힘없는 목소리에 김병종이 직접 잡지에 글을 실었다. “소설이라면 이 한 권으로 족하다.” 이 글을 읽고 최 작가는 어린아이처럼 기쁨에 겨워했다고 한다.
혼불문학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혼불의 시작점인 구 서도역이 있다. 2002년 전라선 개량 공사로 철거 위기에 처했지만, 지역 주민과 문화계의 반발로 남원시가 보존을 결정했다.
1932년 개통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역사 이기도 하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제물포역’으로 등장했던 곳도 바로 이 서도역이다. 유진초이(이병헌)와 고애신(김태리)은 이곳에서 여러 차례 만나고 헤어진다.
화가는 가을의 서도역만큼은 특히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지리산 자락 아래, 폐철로를 따라 단풍 든 나무와 국화꽃…. 이보다 아름다운 가을 풍경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가가 남원 오면 맨 처음 달려가는 밥집
남원에서는 예로부터 식(食)과 무(舞), 악(樂)이 하나로 여겨졌다. 식당에서 가야금 병창 듣는 일이 어렵지 않았고, 춤사위를 곁들이는 곳도 많았다. 한창때 남원의 요정에서는 반찬이 마흔일곱 가지가 나와, 서울서 고속버스 타고 내려오면 점심 한 끼만 해도 차비가 빠진다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음식 인심도 후하다.
남원시 어현동에 있는 원님 밥상은 이런 남원의 음식 문화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사라진 남원의 유서 깊은 한식집 ‘명문장’ 후손이 하는 곳으로, 소리꾼과 춤사위는 없지만 음식 인심과 손맛은 그대로 남아 있다. 화가 김병종은 남원에 올 때마다 이곳에 들러 밥을 먹고 간다. 지리산 자락에서 나는 제철 재료로 만든 건강한 한상 차림은 든든한 보약을 먹는 듯하다. 이날 상 위에는 굴비 조림, 산더덕, 감 장아찌, 곤달비 무침, 묵 잡채, 두릅 장아찌, 토하젓, 곱창김 등이 고루 올랐다. 한정식 한 상은 4인 기준 14만원부터 20만원까지 재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굴비를 메인으로 하는 굴비 정식은 1인 3만원이다.
화가가 두 번째로 즐겨 찾는 집은 구 남원역 앞 순흥식당. 김치찌개 한 메뉴만 판매하는 곳으로, 남원시청 직원이 “촬영차 남원에 오는 유명 배우들도 꼭 들러 먹고 가는 맛집”이라고 귀띔한다. 김치찌개를 중심으로 두부조림·계란말이 등이 옛날 할머니 집에서 보던 동그란 양은 밥상에 차려져 나온다. 1인분 7000원으로 가성비가 좋다.
순흥식당 인근 명문제과는 ‘백종원의 3대천왕’ 등 맛집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번호표 받고 줄 서서 먹는 지역 명물이 됐다. 생크림 슈보로, 꿀아몬드, 수제햄빵 등이 유명하다.
‘남원에 왔으니 그래도 추어탕’이라고 생각한다면 천거동의 새집 추어탕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