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5월,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 소속 판사들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314호 객실에 들어섰다. 이곳이 과연 국가정보원이 이용했던 ‘안가’(정보기관이 사용하는 안전 가옥)인지 여부 등을 가려내기 위해서였다.

사연은 이랬다. 한 건설사 대표가 원세훈(70) 전 국정원장 재직 시절 그에게 거액의 현금을 줬는데, 그 장소가 롯데호텔 내에 있는 국정원 안가였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원 전 원장은 “이 객실은 단순히 VIP 고객을 위해 음식을 파는 곳이다. 만약 국정원 안가가 아니라면 내가 돈을 받았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재판부가 직접 롯데호텔로 나가 현장 검증을 한 것이다.

조성은씨가 지난 8월 11일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에 있는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박지원 국정원장을 만난 뒤 올린 사진. 일부 야당 인사는 이 호텔에 국정원 안가가 있다고 주장한다. /페이스북 캡쳐

약 석 달 뒤 재판부는 롯데호텔 3314호가 국정원 안가로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장기간 임대된 기록이 없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다만 돈을 줬다고 주장한 건설사 대표가 롯데호텔 3314호를 국정원 안가로 여길 만한 이유는 있다고 인정했다. 원 전 원장이 3314호에 미리 올라가 있었고, 원 전 원장이 검찰조사에서 과거 서울 시내 다른 호텔에 있는 국정원 안가에서 이 건설사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고 인정한 적이 있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뉴스가 터지면 종종 등장하는 것이 국정원 안가다. 최근에는 이른바 ‘검찰 고발 사주’ 의혹에 국정원 안가가 언급됐다. 박지원 현 국정원장이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씨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음식점에서 만났는데, 이 호텔에는 국정원에서 늘 사용하는 안가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캠프 김용남 대변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굳이 그 호텔에서 식사하기로 정한 이유가 국정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안가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정보기관에 밝은 인사들에 따르면, 국정원 안가로 호텔이 주로 사용된 것은 박정희 정권 이후라고 한다.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 안가가 여러 곳 있었는데, 주요 호텔로 점차 대체됐다는 것이다. 한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안가는 말 그대로 안전한 가옥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안전의 의미는 보안상 안전하다는 의미다. 외부에 노출되거나 감시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롯데호텔 외에도 서울 강남권에 있는 J호텔, I호텔 등이 안가로 이용된 이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예전에 국정원 관계자가 오라고 해서 서울 시내 한 호텔에 가봤는데, 객실에 침대는 없었고, 큰 책상이 있었다. 뒤늦게 알아보니 그곳이 안가였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특정 다수가 드나드는 호텔이 안가로 사용되는 이유로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국정원 건물이 서울 시내로부터 꽤 떨어져 있다는 점이 꼽힌다. 중요한 요인을 만나야 하는데, 먼 곳까지 오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국정원 건물로 사람들을 초대할 경우 시설이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서울 시내 유명 호텔에는 워낙 많은 사람이 오가고, 누가 몇 층에 올라가는지 거의 알기 어렵다는 점, 동선을 감추기가 쉽다는 점 등이 고려된다”고 말했다.

호텔 안가는 수시로 옮긴다고 한다. 오랜 기간 이용하다 보면 노출되기 쉽고, 고발 사주 사건처럼 외부에 노출될 경우 더는 안가로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호텔과 계약 기간이나 조건도 상황에 따라 바꾸고, 정기적으로 보안 검사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 외에도 여전히 일반 단독주택이 안가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사람들이 매우 긴밀하게 회의하거나 보안에 더 신경 써야 하는 경우, 단독주택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한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짧은 기간 특정 인사를 접견해야 할 경우에는 호텔을 쓰지만, 중요한 요인을 오랜 기간 보호하거나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할 경우에는 일반 단독주택을 쓴다. 일반 단독주택은 호텔보다는 경비에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든다. 서울 강남권 등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