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80대 원로 두 분과 식사를 하다 깜짝 놀랐습니다. 자수성가해 부와 명예를 일군 집안 최고 어른인데도 명절날 자식들이 “아버님, 한 말씀 하시죠”라고 권해야만 덕담을 한답니다.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훈계나 하는 꼰대가 될까봐 조심한다는 것이죠. 다른 어르신은 정철승 변호사 이야기를 하십니다. 정권 비판한 100세 철학자를 향해 ‘적정 수명’ 운운한 것은 괘씸하나, 노인 세대에게도 얼마간 잘못이 있는 게 아닌가, 자신도 모르게 젊은 세대를 향해 “네, 이놈!” 하고 가르치려는 경향이 있지 않았나 돌아보셨다 합니다.
<아무튼, 주말> 지난 4일 자 커버스토리로 소개한 6·25종군 간호장교 박옥선 할머니는 MZ세대인 백수진 기자가 발굴하고 취재해서 썼습니다. 지면회의 때 백 기자가 고난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듣고 싶다고 발제해 모두가 ‘허걱!’ 했지요. 요즘 2030들은 ‘라떼’라고 하면 기겁하는 줄 알았더니 백 기자 왈, “묻지도 않았는데 고압적인 태도와 반말로 꾸짖기만 하는 어른들은 싫지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시련의 역사를 묵묵히 견디며 나라를 세워온 어른들의 용기와 지혜는 끝없는 터널에 들어선 듯 막막한 우리 세대에게 큰 위로와 응원이 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면 세대 갈등, 좌우 갈등, 남녀 갈등, 지역 갈등 같은 우리 사회의 반목 현상은 그걸 이용해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세력들이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것일 뿐, 실체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아무튼, 주말>이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버 세대와 MZ세대 모두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의향이 있다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꼰대 소리 들을까, 되바라졌다는 소리 들을까 말과 행동을 삼간 적이 있다는 응답도 대다수여서 일부 정치인들, 모사꾼들의 ‘갈라치기 공작’을 뛰어넘는 쿨한 소통이 어쩌면 가능하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지요.
MZ와 실버 세대뿐 아니라 20대 남성과 20대 여성, 586세대 상사와 2030 부하 직원, 페미니스트와 안티페미니스트, 호남과 영남 등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듯 보이는 그룹들의 소통을 위해 <아무튼, 주말>이 ‘너에게 말 걸기’ 기획을 시도해볼까 합니다. 대화가 단절돼 가는 우리 사회 소통과 화해의 첫걸음으로요.
모쪼록 축 처진 서로의 어깨 다독이며 경청하는 따뜻한 명절 되시길 빕니다. 추석 연휴로 25일자는 쉬지만, ‘서민의 문파타파’ 등 일부 기사는 조선닷컴(www.chosun.com)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김윤덕 주말뉴스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