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주말뉴스부장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글을 쓰기 전 반드시 냉욕과 면도를 했다고 합니다. 온몸을 얼음처럼 찬 물에 씻고 수염을 말끔히 깎아야만 작업에 돌입했다고 하지요. ‘봄의 제전’ ‘불새’ 등을 작곡한 발레곡의 거장 이고리 스트라빈스키는 곡이 잘 써지지 않으면 물구나무서기를 했다고 합니다. 거꾸로 서면 뇌가 맑아졌기 때문이라네요. 또 있습니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아침 9시부터 1시간 일간신문을 정독한 뒤에야 연구실로 들어갔다고 하고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내리 6시간 글을 쓴 뒤 오후에는 달리기를 꼭 했다고 합니다. 모두 똑같이 24시간을 사는데 왜 어떤 이들은 더 많은 걸 이룰까 궁금했던 무명 작가가 인류의 위대한 창조자로 꼽히는 사람들의 일상과 의식을 조사해 엮은 ‘리추얼(Daily Rituals)’이란 책에 소개된 내용들입니다.

예술가는 아니지만, 글밥을 먹고 사는 제게도 소소한 리추얼이 있습니다. 엉킨 실타래처럼 글이 잘 풀리지 않는 날엔 반드시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합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도시의 간판들을 읽어가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광화문에서 통인동, 삼청동으로 한 바퀴 걷다가 교보문고에 들를 때도 많습니다. 책 냄새를 실컷 맡으면 머릿속이 가지런해지거든요.

코로나가 온 세상을 덮은 뒤로는 리추얼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지난해 타계한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겁니다. 특히 영화 ‘미션’의 주제곡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신의 손길이 어루만지는 듯 불안한 마음을 가다듬기 딱 좋은 곡이지요.

저만이 아닌가 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 매일 12시간씩 일한다는 어느 간호사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병원에서의 고된 노동 후 지쳐 돌아온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영혼의 양식”이라고 썼더군요. 44세 트럭 운전사가 남긴 댓글도 뭉클합니다. 하루 16시간씩 엿새를 꼬박 일한다는 그는 열아홉 살 때부터 트럭 운전사로 일했는데, 지난 25년간 매일 밤 자신을 위로해준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썼습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주제곡 등 모리코네의 애수어린 선율이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건 이탈리아인이었던 그가 10대 때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의 참상, 극심한 굶주림을 겪었기 때문일까요.

오늘 1면에 초대한 ‘할 수 있다’의 아이콘 박상영 선수는, 자신이 제일 잘했던 경기를 떠올리며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리추얼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