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듯한 중국 음식점에서 갖은 요리를 만끽할 때까지는 좋았다. 화기애애하게 진행되던 회식이 마무리될 즈음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복통이 속절없이 밀려왔다. 평소 근엄한 선생이 배를 움켜잡고 숨 넘어가듯 바닥에 널브러져 데굴데굴 굴렀는데, 결국 제자들 손에 이끌려 난생처음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됐다.

일러스트=안병현

초음파 검사 결과 담낭 안에 얌전하게 자리 잡고 있던 돌멩이가 기름진 음식에 맞서 요동 치며 난리를 부린 담석증으로 밝혀졌다. 금방 또 말썽이 날 테니 수술이 좋겠다고 한다. 싫으나 좋으나 전문가 의견을 따르는 게 상책 아닌가. 마약성 약을 썼는지 극심한 산통은 어느 정도 진정됐는데 정신이 몽롱했다. 멍청히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날카로운 메스로 명치에서 배꼽까지 쫙 가르고 배 속으로 손이 들락날락하는 외과 수술 장면이 떠올라 겁이 나 죽을 지경이었다.

체면 불고하고 담당 외과 전공의를 불러세워 단도직입적으로 수술 후 얼마나 아프냐고 물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렇게 아프지 않다는 설명이 아닌가. 복강경이 들어갈 조그만 구멍만 뚫기 때문에 며칠 좀 거북하기는 해도 심한 통증이 없고 수술 시간도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단다. 반신반의했다. 마침내 이튿날 외과 의사들이 50년 넘게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고이 간직해 온 속살(?)을 헤집고 들어가 쓸개를 단칼에 싹둑 잘라 버렸다. 마취에서 깬 후 거짓말같이 진통제 도움 없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이틀 자고 수술을 받은 사람 같지 않게 보무도 당당히 환한 얼굴로 귀갓길에 올랐다.

몸 밖에서 체내의 장기를 손바닥 보듯 훤히 들여다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눈부시게 발달한 의학과 기술의 기막힌 궁합이 만들어낸 참 좋은 세상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의사가 환자 몸을 이리 만지고 저리 굴리고, 여기저기 사방 두드려 보고, 청진기로 들어도 보고, 망치로 때려보고, 그래도 모자라 얼마나 많은 아프고 위험한 검사를 했던가. 그나마 어렵게 얻은 엑스선에 비친 그림자로는 무슨 병인지는커녕 병 유무를 알기 어려운 경우도 허다했다. 서로 자기 진단이 옳다며 콘퍼런스 시간에 동료 의사끼리 잡아먹을 듯 핏대를 세우며 다투기도 참 많이 다퉜다. 눈 감고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으로 희미한 그림자 해석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위장관 질환 진단에 위 내시경이나 대장 내시경의 쓰임새는 이제 일반인들에게 상식이다. 과거 역겨운 물약을 입이나 항문에 쏟아붓고 찍은 위 사진, 대장 사진을 이용하는 진단 방법과는 사뭇 다르다. 내시경의 결정적 흠이었던 기계를 밀어 넣는 불쾌감도 수면 내시경을 이용하면 넘지 못할 장애물이 아니다.

복강경을 이용한 치료도 활발하다. 웬만한 수술은 배를 크게 열지 않고 복강경을 이용한다. 수술 후 심한 통증에서 해방됨은 물론이고 감염 등 합병증 감소, 빠른 회복, 흉터를 남기지 않는 장점도 있다. 비뇨의학과에서는 요도로 넣은 방광경으로 오줌보를 훤히 밝히고 필요한 조작을 한다. 관절경으로 관절 내부를 눈으로 보면서 여러 가지 질환을 치료하고 소위 ‘디스크’ 등 척추 질환에도 내시경 수술이 활발하다. 기관지경 역시 기관지나 폐 질환 진단과 치료에 없어서 안 될 도구로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뇌종양을 내시경으로 수술한다는 사실을 몇 사람이나 알고 있을까. 과거에도 간단한 뇌실 내 질환 등 극히 일부에서 뇌 내시경을 사용했지만 요즘 들어 콧구멍을 통한 뇌종양 내시경 수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뇌는 두부처럼 약해서 과감하게 헤집고 들어갈 수 없는 조직이기 때문에 가능하기만 하면 가느다란 내시경을 통한 수술이 안성맞춤이다. 수술 기술과 기계가 발달하면서 뇌 질환에 대한 내시경 수술이 앞으로 더욱 확대될 텐데 이쯤 되면 가히 내시경 만능 시대에 접어들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내시경 치료가 바야흐로 가장 까다롭다는 뇌 수술까지 이르렀으니 조만간 사람의 정신세계를 샅샅이 꿰뚫어 보고 마음의 병을 진단하는 기상천외 내시경이 혜성처럼 등장하지 않을까. 얼토당토 않은 허튼 얘기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오면 환자에 앞서 먼저 사회 지도층 인사의 가슴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양심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이른바 ‘관심경’은 겉만 번지르르한 허풍선이를 족집게로 집듯 찾아내서 사회악을 근절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 확실하다. 특히 양심에 시커먼 털이 빼곡한 위정자를 가려낸다면 투표할 때 잘못된 선택을 미리 막을 수 있다. 천여 년 전 후고구려의 궁예는 엉터리 관심법으로 나라를 망쳤지만, 정교하게 만들어질 미래의 관심경은 틀림없이 훌륭한 지도자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나아가 관심경에 예리한 칼과 집게를 달아 양심을 더럽히는 가슴 속 독버섯을 감쪽같이 도려내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선남선녀들만이 사는 무릉도원이 눈앞에 펼쳐지지 않겠나.

아이 참, 나잇살이나 든 늙수그레한 작자가 더운밥 먹고 할 일 없이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이고 있으니 노망이 들어도 단단히 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허무맹랑한 공상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터. 관심경이 아니더라도 작금의 풍진세상이 하루빨리 태평성대의 길로 접어드는 계기가 마련되길 쓸개 빠진 사람 역시 학수고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