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도권 지역에 본사를 둔 공공기관 팀장 정모(46)씨 옆자리에는 인턴 사원 A씨가 앉아 있다. 올해 26세,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던 중 올해 이 회사 인턴으로 뽑혔다. 그런데 정씨 눈에 A씨가 하는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종일 인터넷을 보거나 영어 책을 펴놓고 토익 공부를 한다. 오후 6시가 되면 칼퇴근 한다. A씨 사무실에 있는 정직원은 6명인데, 누구도 그가 무엇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정씨는 “정부에서 인턴으로 뽑으라고 하니 사무실에 배치했는데, 뭘 가르칠 것도 없고, 인턴도 배우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출퇴근을 하는지만 확인한다”고 말했다. 이 기관은 현재 A씨와 같은 인턴 20여 명을 뽑아 여러 부서로 배치했다. 인턴 한 명이 매달 받는 월급은 약 200만원. 올해 최저임금이 약 191만원(월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적은 액수도 아니다.
인턴 눈치를 봐야 한다는 푸념도 나온다. 인턴들이 회사 내부 사정이나 기밀을 밖에 폭로할까 우려하기도 한다. 정씨는 “인턴들이 일을 제대로 배우거나 경험할 기회가 된다면 우리가 불편을 감수하겠지만, 무작정 뽑아 배치만 해놓으니 (인턴 직원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부를 감시하는 사람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고 했다.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기관이 채용한 인턴은 2만3000여 명. 인턴 직원을 바라보는 공공기관 직원들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문재인 정부서 대거 등장한 인턴
지난 6월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공공기관이 좋긴 좋구나’라는 글이 올라왔다. ‘내가 일하는 공공기관의 일부 직원이 커피를 구매한 영수증을 조작했다’ ‘직원들이 법인 카드로 밥을 먹었는데, 실제 식사한 사람보다 많게 인원을 조작한 영수증을 제출해 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 걸리지 않도록 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익명으로 올라온 글이지만, 적지 않은 직원은 인턴 직원이 올린 글로 추정하고 있다. 한 공공기관 직원은 “이 글이 공공기관 직원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이래저래 (인턴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했다.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이 기획재정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한 해 채용된 공공기관 인턴은 1만5500여 명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2년 차인 2018년에는 2만3000건으로 증가했다. 여기에는 얼어붙은 고용 지표를 조금이라도 올려보겠다는 정부의 계산이 깔려있다. 고용 동향 통계에는 1주에 1시간이라도 돈을 받고 일했다면 취업자로 잡히기 때문에, 인턴을 채용하면 취업률과 고용률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턴 채용에 따른 인건비도 만만치 않다. 인턴 채용을 하는 상위 다섯 공공기관은 지난해 인턴을 채용하느라 평균 약 74억원씩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인턴이 들어오면 일손이 늘어난다. 그러면 기존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 직원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반응이 많다. 짧은 기간 제대로 일을 맡기기 어려울뿐더러, 안 그래도 업무가 많은데 인턴을 신경 쓸 여력도 없다는 것이다. 특히 채용과는 무관한 체험형 인턴은 취업 준비생에게 직무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자는 취지인데, 대개 3~6개월 정도 근무하다 떠난다. 열심히 일하는 인턴도 많지만, 일부는 “어차피 뽑히지도 않을 건데 뭐 하러 열심히 하느냐”는 경우도 많다. 영남 지역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박모씨는 “인턴 직원에게 외부 기관 몇 곳에 전화를 걸어 우리 회사가 주최하는 행사를 안내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왜 잡일 시키느냐고 반응했다. 공기업 직원이 갑질 하느냐는 식이었다. 그냥 신경 쓰지 말고 그분들이 나갈 때까지 조용히 있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문화 분야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손모씨도 “어차피 그 기관에서 나를 뽑아주지도 않는 데다가, 제대로 된 교육과정도 없었고 일도 시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월급이나 받고 이력서에 경력 한 줄 걸치도록 하자는 생각으로 임한 사람이 꽤 많다”고 했다.
◇일 배우는 직원인가, 내부 감시자인가
인턴 직원이 회사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외부로 발설할 수 있다는 점도 공공기관 직원을 불편하게 만든다. 공공기관에 들어오는 인턴 대부분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다. 이들은 ‘1일 차’ ‘2일 차’라고 기록하며 블로그나 소셜미디어에 일기 형식으로 인턴의 하루를 정리해 올리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회사 내부에서 있었던 일이 공개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실제 한 공공기관에서는 인턴이 자신의 일상을 블로그에 사진과 함께 올렸는데, 그 속에 직원들이 규정을 어긴 행위가 포함돼 징계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공공기관 관계자는 “그 인턴 직원이 전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내부 기강을 잡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인턴 직원들이 회사 익명 게시판에 올리는 글이 신경 쓰인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부 공공기관은 인턴 직원도 회사 직원이라며 이메일 계정을 부여한다. 이를 이용해 회사 관련 커뮤니티에 가입한 뒤,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는 것이다. 한 공공기관 팀장급 직원은 “우리 회사 블라인드 게시판에 한 직원이 과자와 음료를 사는 데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쓰느냐. 사무용품도 쓸데없이 흥청망청 쓰는 것 같다는 글이 올라왔다. 인턴 직원이 쓴 거로 추정돼 그때부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른 공공기관에서는 외부 인사를 초청한 행사를 위해 고급 과자를 준비했다가 남은 걸 직원들이 먹었는데, 얼마 뒤 이를 비판하는 글이 익명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했다.
‘급여’에 대한 발언도 금기다. 특히 인턴 앞에서는 ‘수당’과 ‘인센티브’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 근무시간 등을 꼼꼼히 따져 지급되는 수당을 함부로 얘기했다가 자칫 시비에 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공공기관 직원은 “안 그래도 공기업 이미지가 안 좋은데, 인센티브나 수당 얘기를 (인턴 직원이) 들으면 위화감을 느낄 수 있고, 자칫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각종 직업 관련 사이트에는 공공기관 직원만이 알 수 있는 연봉 정보가 올라오기도 하는데, 인턴이 공개했을 것이란 추측이 많다. 공공기관 팀장급 인사는 “직원들끼리 우리 직급 직원의 연봉 얘기를 했는데, 그 자리에 인턴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뒤 우리가 한 얘기가 그대로 직업 포털에 공개되는 걸 보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골칫거리? 윤리 일깨운다는 평가도
반면, 인턴 직원이 암행어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며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영남 지역에 본사를 둔 한 공공기관 팀장급 인사는 “외부자인 인턴 직원이 지켜본다는 생각 때문에 윤리의식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인턴 직원 눈치 보느라 법인 카드를 더 엄격하게 쓴다고 했다. 비수도권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김모씨는 “법인 카드로 외부인과 식사하다가 양이 모자라면 한도를 넘겨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함께 밥 먹는 인턴이 신경 쓰여서 주문을 포기한 적이 꽤 된다”고 했다. 또 다른 직원은 “법인 카드로는 식사할 때 술값을 계산하면 안 되는 게 원칙이지만 맥주 한두 병 정도는 암묵적으로 계산한 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인턴 직원과 함께 식사하다 보니 눈치가 보여 사이다나 콜라만 시킨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인턴은 직원인가, 내부 감시자인가. 단국대 경제학부 김태기 교수는 “공공기관 인턴을 했던 제자들과 얘기해보면 처음에는 큰 기대를 갖고 갔지만, 나중에는 시간 낭비였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정부의 고용 정책 실패로 인한 실업률 등 숫자를 관리하기 위해 인턴을 대거 채용하다 보니 막대한 인건비를 쏟아붓고도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범정부적으로 인턴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확실한 지침을 만들고, 공공기관 직원 가운데서 인턴을 잘 교육하는 직원에게는 인사 평가 때 가점을 주는 것처럼 인턴을 제대로 활용하는 정책을 내놔야 세금 낭비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