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종영 며칠 전, 서울 광화문에서 전수경과 전혜원을 만났다. 이 날 30분 일찍 도착한 전혜원은 멀리서 걸어오는 전수경을 보자 ‘엄마’를 외치며 달려가 안겼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만난 지 1년도 안 된 피도 뭣도 아무것도 안 섞인 여자, 얼마나 소중해서 제 딸 개처럼!”

이 대사에 사이다 한 잔 안 들이켠 시청자 있을까. 아빠 내연녀 찾아갔다 끌려나온 딸이 “욕도 아깝다”며 소리치는 말. 적반하장으로 아빠가 딸을 때리려는 순간, 바람 피운 남편에게 욕 한 번 안 하던 아내가 처음으로 남편 뺨을 내리친다.

최고 시청률 17.2%로 지난 8일 종영한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 2(이하 결사곡)’ 속 이 장면을 찍을 때, 한국 뮤지컬의 디바이자 32년 차 배우 전수경(55)은 신인 전혜원(23) 앞에서 진짜 엄마처럼 울었다. “엄마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안 그러셔도 되거든요. 그런데 진짜처럼 제 앞에서 울고 계시니, 더 화나고 몰입이 되더라고요.”

전수경이 이유를 설명한다. “연기할 땐 상대방의 눈빛, 떨림, 호흡 이런 것에 영향받는 게 너무너무 커요. 시청자 입장에서 결과물은 비슷하게 보여도, 힘든 짝을 만나면 배우는 속으로 되게 어렵거든요. 혜원이가 연기를 굉장히 잘하지만, 그래도 경험이 많지는 않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맞춰준 거죠.”

브라운관 밖에서도 천상 엄마와 딸이다. 드라마 종영을 며칠 앞두고, 서울 광화문에서 전수경과 전혜원을 만났다. 이미 촬영은 다 끝난 상태였지만, 서로 호칭은 여전히 ‘엄마’와 ‘혜원이’. 30분 일찍 도착한 전혜원이 멀리서 걸어오는 전수경을 먼저 발견하곤, ‘엄마’를 외치며 달려가 안겼다.

◇1% 논란 의식했지만, 99% 임성한 믿어

–두 배우 모두 임성한 작품은 처음인데, 막장 논란이 부담스럽지 않았나.

전수경(이하 경): “내 나이대 여배우들은 대개 극 중심에서 벗어난 역할을 많이 한다. 결사곡에선 내가 연기한 이시은을 비롯해 김동미(김보연), 소예정(이종남)등 중장년 여성이 극 중심에 있어 너무 좋았다. 1% 정도 논란을 의식했지만, 99% 작가님을 믿고 선택했다. 배우로서 엄청난 카타르시스와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을 많이 창조해주셨다. 현실감 있으면서도 극적이고, 세세한 감정까지 대사로 풀어내신다.”

전혜원(이하 원): “신인 입장에선 대단한 작가님 작품에 들어간다는 것에 그저 ‘우와,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대본 연습을 하는데, 대사량이 많고 감정이 폭발하는 부분이 많아 그제야 ‘큰일 났다’ 싶더라. A4 용지로 6장짜리 대사도 있었다.”

–어떻게 준비했나.

원: “작가님 말투를 입에 붙게 하려고 대본을 구구단 외듯이 계속 읽었다. 작가님이 도치법을 많이 쓰시는데, 나도 모르게 현장에서 도치법으로 묻게 되더라. ‘먹었어, 밥?’ 하고(웃음).”

‘결사곡’에서 전수경은 화장기 없는 얼굴로 등장했다. 전수경은 “결사곡 이후 조금만 꾸며도 사람들이 예쁘다고 해줘서 좋다”며 웃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극 중 시은이는 대충 틀어올린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다. 배우로서 쉽지 않은 도전이었겠다.

경: “임성한 작가님은 작품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 ‘처음엔 순한 역할로 시작했다가 도시적으로 바뀌나?’ 생각했을 정도다. 그런데 되게 내추럴하면서도 소박하고, 다양한 감정 연기를 해야 하는 역할로 불러 주셔서 감사하고 행복했다. 겉보기엔 내가 화려해 보이고 그런 역도 많이 맡았지만, 실은 아니다. 겁도 많고, 머리 묶을 때 고무줄 대신 젓가락을 비녀처럼 꽂는 게 실제 내 특기다. 그런데 대본에 그게 적혀 있었다. 이건 헤어 팀도 해줄 수 없고, 본인이 해야 잘할 수 있거든(웃음). 작가님이 사람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이 날 인터뷰에서 전혜원은 극중 묶고 나오는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발랄한 테니스 스커트를 입었다. 드라마 속 향기와 달리, 음료수는 “무조건 단 거!”를 외치는 풋풋한 20대였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향기(전혜원의 극 중 역할)는 오디션을 통해 발탁됐다.

원: “대개 오디션은 연기 보여 드리고 30~40분 정도면 끝나는데, 4시간이 걸렸다. 작가님 요청에 따라 머리를 묶었다가 풀기도 하고, 즉석에서 아역인 지아(박서경)·우람이(임한빈)와 합을 맞춰 보기도 했다. 내가 동글동글한 게 작가님이 생각하신 향기의 모습과 비슷해서 그랬던 게 아닌가 한다.”

–모녀로서 합은 어땠나.

원: “엄마·아빠(전노민)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같이 연기하고는 항상 늦은 시간이라도 카톡으로 ‘너무 잘했다’고 격려해주셨다. 아빠랑은 붙는 신이 많았는데, 이걸 맞춰보고 싶기도 하고 여쭤보고 싶기도 해서 대학로에서 공연 연습하는 아빠를 찾아가 많이 괴롭혔다. 한번은 아빠가 코피를 쏟으시더라. 엄청 피곤했는데도 나와주신 거다. 그래서 극 중에서 향기를 배신한 아빠가 더 미웠던 것 같다, 하하!”

경: “이 녀석이 예쁘고 똘똘하고, 친화력도 너무 좋다. 무엇보다 열심히 한다. 성장하는 혜원이를 보면서 참 뿌듯했다.”

◇실제 전수경이었으면 더 세게 때렸을 것

–각자가 꼽는 명장면은?

원: “아빠 내연녀 아파트를 찾아갔을 때. 그때 아빠한테 끌려 나오느라 진짜 팔, 무릎에 멍들고···. 말 그대로 온 힘을 다한 장면이었다.”

경 “시즌1에서 시은이가 남편에게 이혼하자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남편이 ‘파스가 싫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한다. 울고 싶은 마음 꾸역꾸역 참고, 일단 아이 학교는 보내야 하니까 우람이(극 중 아들)한테 씻으라 하고 계란말이 하던 때가 가장 마음 아팠다. 시즌2에선 향기 때리려는 박해륜(전노민)한테 돌아버려서 감정 폭발하는 장면. 배우 전수경으로서는 사실 더 세게 때리지 못해서 덜 후련했다(웃음).”

–시은이는 내연녀에게 물 한잔도 못 끼얹는다. 답답하지 않았나.

경: “말해 뭐해. 고구마 꿀떡꿀떡이지. 하지만 시은이가 ‘내가 이렇게 널 위해 헌신했는데, 어떻게 나를 배신해’라고 했으면, 덜 불쌍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우리 드라마에 바람 피우는 남자가 셋이나 나온다며 극적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 우리 드라마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건 향기다(웃음). 우리 땐 두 집 살림 하는 아버지들 정말 많았다. 그땐 다들 향기처럼 못 했다. 그런데 향기는 엄마를 위해 나서서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정의로운 딸이자, 엄마를 극진히 사랑한다. 실제 시은이 같은 아픔이 있는 엄마들에게 향기가 가상의 인물이지만 위로를 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극 중 전수경과 전혜원의 대화 장면. /TV조선

–극 중에서 가장 나쁜 캐릭터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원: “신유신(이태곤). 우리 아빠는 솔직하기라도 한데, 신유신은 끝까지 연기다. 박주미 선배님이 신유신을 벌레 피하듯 대할 때 너무 통쾌했다.”

경: “시즌1 때는 나도 자기 감정에 솔직한 박해륜이 신유신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바뀌었다. 박해륜이 제일 나쁘다. 우람이 클 때까지만이라도 가정은 지켜달라고 하는데, 그걸 박차고 나간다. 신유신은 어떻게든 가정은 지키려고 한다.”

–마지막 회에서 참회하는 내연녀(남가빈)를 보듬는 시은의 모습이 나온다.

경: “꿈에서 불안한 박해륜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뒤숭숭한 찰나, 남가빈(임혜영)이 정신없이 찾아온다. 일단 안정을 취하도록 도와주는 게 우선이고, 현실이라도 도와줄 것 같다. ‘언니, 동생’ 하며 지내는 건 생각해봐야겠지만, 남가빈이 참회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다.”

–드라마가 최고 시청률 17.2%, 지상파 포함해 동시간대 1위로 종영했다. 인기를 실감하나.

원: “한번은 SNS로 중년의 아버님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자신도 향기 또래 딸을 키우는데 가끔 박해륜과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그러다 드라마에서 내가 ‘사랑 같은 거 안 한다’고 울부짖는 장면에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내 딸도 커서 사랑 같은 거 안 한다고 할까 봐. 드라마가 사람들 일상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걸 느꼈다.”

경: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면서 해외에 사는 지인들도 재미있다며 인사해오고, 홍콩·싱가포르에서도 엄청 인기라더라. 결국 세계적으로 바람 피우는 상황은 다 비슷한가 보다, 하하!”

–시즌2 결말은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이란 말 그대로였다.

원: “마지막 장면은 해당 배우들만 결말 내용을 전달받고 촬영에 임했던지라, TV로 보는 나도 시청자들만큼이나 충격이었다. ‘역시 임성한’이란 말이 너무 와 닿았다.”

경: “처음 결말을 들었을 땐 머리를 뭔가로 맞은 듯했다. 정말 상상력이 풍부하시고 이야기를 잘 짜는 작가님이다 싶더라. 이 엔딩으로 시즌3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시즌3는 어떻게 전개될까.

원: “시청자들이 궁금했던 내용이 하나씩 풀려나갈 텐데, 나도 아직 정확하게 몰라서 기대와 궁금증만 가득하다. 시즌3에서도 향기의 다양한 감정 변화 연기에 한 번 더 도전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경: “‘위기의 주부들’이라는 미드가 있는데, 그 작품보다 더 유명한 드라마로 자리 잡아 시즌 4⋅5까지도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