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말 8초’는 여름휴가가 집중되는 시기다. 항상 바쁜 듯한 정치인들도 7월 말~8월 초쯤 휴가를 떠난다. 정치인들의 휴가는 단순한 휴식이 아닌, 재충전과 정국 구상에 몰두하는 시기. 일각에선 “한가롭게 웬 휴가냐”는 비판도 나오지만, “정치인들에게 휴가는 필수”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코로나·대선…“녹록지 않은 휴가철”
문재인 대통령은 8월 첫째 주로 예정돼 있던 휴가를 연기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코로나와 폭염으로 인한 국민 고통 앞에 웬 대통령의 휴가 타령이냐고 질책하실 국민이 계실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2019·2020년에도 각각 일본 수출 규제와 중부지방 집중 호우 때문에 휴가를 취소한 바 있다.
대선 주자들도 휴가를 아예 쓰지 않거나 외양만 휴가인 휴가를 다녀왔다. 여권 주자 중 여론조사 지지율 1위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7월 30일 하루 휴가를 냈는데, 이 휴가에 주말(31·1일)과 도정 일정(2일)을 붙여 대구·울산·부산·창원·전주·예산·대전을 잇달아 방문했다. 현직 단체장이라는 제약 때문에 경기도 밖 이동이 자유롭지 않자, 휴가를 써서 전국 순회 일정을 소화한 것이다.
야권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5일부터 나흘간 휴가 일정을 잡았는데, 정홍원 전 국무총리를 만난 첫날을 제외하곤 계속 자택에서 머물러야 했다.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해 자가 격리를 했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은 ‘소셜미디어 정치’에 주력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책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를 읽는 모습, 반려동물들과 함께 있는 사진 등이 올라왔다.
양당 대표들은 8월 둘째 주에 각각 닷새간의 휴가를 떠났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홀로 강원도 속초의 한 사찰로 향했다. 단식과 독서를 위해서다. 몇 년 전부터 건강을 위해 종종 단식을 하는 송 대표는 작년 여름에도 남해의 한 암자에 묵으며 단식을 했었다. 송 대표 측 관계자는 “잠깐 멈춰서 몸과 마음을 비우고 에너지를 채우는 것”이라고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경북 상주에서 개인택시 양수 교육을 받았다. 이 대표는 2019년 택시 업계와 승차 공유 서비스 업계가 갈등을 빚자 해법을 찾기 위해 택시기사 자격증을 따고 두 달간 법인택시를 몰았는데, 이때 한 ‘택시 업계의 고충을 직접 듣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휴가 기간 교육을 받았다.
◇독서·운동부터 성형·배낭여행까지
대통령의 휴가는 업무의 연장선이다. 수시로 업무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린다. 대통령이 가는 곳, 읽는 책 모두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여름휴가를 강원 평창과 경남 진해에서 지냈고, 이듬해엔 충남 계룡대를 찾았다. 첫 휴가 직전 북한의 도발이 있었지만, 문 대통령은 국내외 안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예정된 휴가를 진행했다. 2018년 휴가 때는 방북 취재 사진집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 등을 읽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취임 후 첫 여름휴가 때 경남 거제시 저도를 찾았다. 백사장에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씨를 쓰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 유명해졌다. 그는 당시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의 이곳에 오게 되어서 그리움이 밀려온다”고 했다. 그 외에는 휴가를 대부분 관저에서 보냈는데, 휴가 직후에는 장관이나 참모진을 바꾸는 인사를 단행하곤 했다.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은 휴가 중 독서를, 김영삼·노태우 전 대통령은 조깅과 골프 등 운동을 즐겨 했다. 몇몇 대통령은 당 소속 의원들에게 휴가비 명목으로 이른바 ‘오리발’이란 격려금을 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리발이란 이름은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민다’에서 나왔다는 설, ‘100만원짜리 수표 5장’이란 뜻이 담겼다는 설이 있다.
다소 이례적인 휴가를 보낸 정치인들도 있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지난해 여름휴가 때 안검하수(눈꺼풀 처짐) 교정 시술을 받았다. 대선을 앞두고 외모 정비를 한 것이다. 남경필 전 경기지사는 재임 시절 여름휴가를 내고 스페인 등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곤 했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는 총리 시절 휴가 때마다 건강검진을 받고 지방 탐방을 했다.
과거엔 해외로 여름휴가를 가는 정치인도 꽤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을 1년여 앞둔 1996년 8월 괌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6박 7일간의 휴가를 마친 그는 귀국길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태평양을 바라보며 민족과 국가의 갈 길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고 했다. 한 여권 인사는 “요즘엔 외유는커녕 망중한도 어렵다”며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정치권에 대한 곱지 않은 국민의 시선과 빨라진 대선 시계 때문에 쉴 수가 없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치인들이 휴가 가는 것을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있고, 정치인들도 ‘휴가도 없이 불철주야 일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 낡은 문법을 답습한다”며 “창조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사유와 성찰의 시간은 필수적이다. 특히 대선 후보들은 온전히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