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 바이러스 창궐에 시국이 하수상하여 그런가, 요즘은 책이 통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날은 또 왜 이리 찜통인지요. 예전엔 금쪽같은 주말을 어찌 보낼까 시시콜콜 계획을 세웠는데, 요즘은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습니다.
이런 푸념을 하자, 누군가 “당신이 일중독이어서 그렇다”고 핀잔을 줍니다. 주말엔 그저 ‘멍때리기’로 일관하는 게 정신 건강에 제일 좋다면서요. 대놓고 멍때리는 게 어려우면 그저 웃기라도 하라며 시중에 떠도는 유머를 카톡으로 보내줍니다.
그중 하나. 한국인들은 모든 것이 밥으로 통해서, 혼낼 땐 “너 오늘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쟤 진짜 밥맛 없지 않냐?”, 나쁜 짓 하면 “너 그러다 콩밥 먹는다”, 멍청할 땐 “야, 이 밥팅아!”, 고마울 땐 “나중에 밥 한번 먹자” 한답니다.
‘외국인이 본 한국인의 특징’은 딱 제 모습이라 웃음이 터졌습니다. 소파가 있어도 바닥에 앉아서 소파에 등을 기댐, 배불러 죽겠다고 하면서 계속 먹음, 버스가 멈추기 전에 일어나서 카드 찍음, 웃을 때 옆사람 등짝을 마구 때림, 죽고 싶다면서 돌아서서 홍삼 먹음.
최근엔 낙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TV조선에서 방영 중인 ‘결혼작사 이혼작곡-시즌2’입니다. 임성한, 김순옥류의 이른바 ‘막장드라마’는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요. 2주 전 우연히 재방송으로 보게 된 ‘결사곡’에 홀딱 반해서는 시즌1부터 정주행하는 중입니다.
욕하면서도 보는 게 막장이라더니, ‘결사곡’은 여러 가지로 매력 있는 드라마더군요. 불륜, 배반, 복수라는 막장 요소를 두루 갖췄지만 황당무계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 주변, 아니 내게도 일어날 법한 신랄한 현실 풍자 드라마로 읽힙니다. 전혜원부터 김응수까지 배우들 연기력도 어찌나 뛰어난지요.
지난주 ‘악녀’ 김보연의 연기는 진정 아카데미급이어서 배꼽을 쥐고 웃다가 눈물까지 찔끔 흘렸습니다. 짝사랑해온 의붓아들(이태곤)이 젊은 여인과 바람이 난 걸 알고 며느리(박주미)보다 더 분개하며 폭발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이것이 진정한 막장!”이라며 환호했지요.
막장에 열광하다니, 한심하다고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유명한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에게 “당신 소설엔 왜 죄다 비정상에 시한폭탄 같은 사람들만 등장하나? 우연투성이 막장드라마 아닌가?” 물은 적 있습니다. 요나손이 답했지요. “우리는 모두 비정상이고 시한폭탄 같은 존재들이다. 삶 자체가 우연의 연속이고 현실은 내 막장 소설보다 훨씬 더 황당하다.”
이번 주말, 결사곡을 기다리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