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강아지를 작게 만들다 못해 찻잔에 들어갈 크기로 만들려고 이상하게 교배한 결과 눈이 없는 강아지가 태어났다고 한다. ‘티컵(teacup) 강아지’라고 불리는 이 개는 방광과 자궁도 들러붙은 채 태어났다. 얼마 전 개아범과 함께 졸음을 참아가며 윔블던 테니스를 봤다. 영국은 스포츠 심판도 정장을 입는 신사의 나라구나, 생각했었는데 이 기사를 읽으며 뒷발로 머리를 달달달 긁었다.
사실 개라곤 마당에서 집 지키는 개밖에 몰랐던 개아범도 두 손에 쏙 들어오는 새끼 푸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처음 개를 집 안에 들여놓았다고 한다. 강북 변두리 애견 숍 진열장에서 꼬물대던 그 강아지를 보는 순간, ‘개는 마당에서 키우는 동물’이란 생각이 싹 사라졌다고 했다.
애견 숍 주인은 그 꼬물이가 푸들 중에서 가장 작은 토이푸들이란 종으로, 다 커도 키가 25㎝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인형처럼 작아서 이름도 토이푸들이었다. 그러면서 “사료는 하루 종이컵 3분의 2 이상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것은 그러나 강아지의 정체가 탄로 나지 않게 하려는 꼼수였다. 어느 날 동물 병원 의사가 “사료에 적정량이란 건 없다”며 “마음껏 먹게 놔두고 과식해서 구토하면서 스스로 학습하게 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그 말대로 이른바 자율 급식을 시작했더니 인형 같은 강아지는 매일 사료를 산더미처럼 먹고 백두급 푸들 씨름 대회에 나가려 해도 맞는 샅바가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다. 토이푸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그 개에게 너무 정이 들어 애견 숍에 따지고 자시고 할 이유도 사라졌다. 애견 숍에서 몇 달 뒤면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것이다.
인간들은 개를 말할 때 애완(愛玩)보다 반려(伴侶)라는 말을 선호하지만 ‘작은 개, 더 작은 개’ 하며 크기에 집착하는 걸 보면 반려는 정치적 수사일 가능성이 높다. 개아범은 그러나 나를 데려올 때 “미니비숑 아니죠?”라고 먼저 물었고 가게 주인은 머쓱하게 웃으며 “시중에 미니비숑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개아범이 크기에 민감하지 않은 건 다행이다. 다만 그가 소파에서 졸고 있을 때 내가 전속력으로 달려가 안기면 예전엔 좋아했는데 요즘은 신경질을 낸다.
오늘도 아파트에서 산책하다가 뼈다귀를 만났다. 그 별명은 내가 붙였다. 생긴 건 상어인데 크기는 멸치 같아서였다. 뼈다귀는 나만 보면 미친 듯이 짖는다. 그 주인은 나한테 덤비는 줄 알고 말리지만 사실 이런 뜻이다. “야, 일주일만 주인 바꾸자. 나도 사료 좀 맘껏 먹어 보게, 응?” <다음 주에 계속>
토동이 말하고 한현우 기자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