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기내 방송을 듣고 감격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나다. 1982년 미국 유학을 떠나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한 시간 뒤 도착할 예정입니다’라는 방송을 듣고 울컥하고 말았다.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 뒤로도 몇 번 한국행 비행기를 탔지만 도착 전 기내 방송은 항상 감격스러웠다. 두 번째 에세이집 출간으로 귀국했던 지난달 25일 들었던 방송은 더 남달랐다. 왠지 모를 자긍심, 코로나 방역을 훌륭하게 해낸 모국에 관한 긍지가 느껴진 것이다. 이런 마음은 입국 절차를 밟으며 커졌다. 비행기 타기 전 유전자 증폭(PCR) 검사의 음성 결과를 확인하고 체온을 재는 것은 물론, 군 인력까지 투입해 입국자 휴대폰에 자가 격리 앱 설치를 돕도록 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과할 정도로 꼼꼼한 측면도 있었다. 한국에 직계 가족이 있다는 사실과 격리 중 머무를 숙소에 관한 내용을 서류로 제출해야 했다. 외국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만약 감염자가 왔다 하더라도 그들을 일정 기간 격리함으로써 국민이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모든 절차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한국이 방역 선진국이라는 데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른 나라의 인구 10만명당 코로나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보라. 선진국으로 불리던 미국(10256/184명), 영국(7737/190명), 독일(4472/109명), 그리고 일본(655/12명)의 상황은 지난 14일 기준 이렇다. 반면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확진자와 사망자는 338/4명이다.
나와 아내 그레이스는 ‘기꺼이’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2주 자가 격리를 했다. ‘백신을 맞고 PCR 음성 판정까지 받은 우리가 격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방역을 위해 고생하는 분들이 있다. 백신을 맞은 우리가 비행기에서 감염돼 한국인들에게 옮길 수도 있으니까.
격리가 종료되는 시점인 7월 9일 낮 12시가 오기만을 기대하며 남은 시간을 견뎠다. 소셜미디어 친구들에게 ‘9일 12시가 되자마자 두부 들고 집 앞으로 찾아오라’고 농담도 했다. 코로나 검사를 위해 나간 것을 제외하면 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내 생애 가장 답답했던 2주였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 격리 종료 한 시간 전 정부가 중대 발표를 했다. 코로나 거리 두기 규칙을 4단계로 격상한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장 엄격한 조치였다. 며칠 동안 확진자 수가 계속 증가한 데 따른 조치였다. 하루에 1200명 이상 감염되는 추세는 얼마 있지 않아 2000명, 4000명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는 추정도 나왔다.
한국의 방역 성공에 가장 큰 몫을 한 건 국민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정부의 거리 두기 규칙을 잘 따랐다. 미국에는 정부가 요구하는 방역 규칙을 무시하거나 마스크 착용도 거부하는 이가 많다. 격리와 모임 인원 줄이기, PCR 검사와 백신 접종. 이 모든 것을 정부가 시민의 자유를 빼앗는 것으로 여기는 미국인이 많다. 그러니 어찌 한국에 와서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나.
진짜 놀라운 광경은 거리 두기 4단계가 실행되기 직전에 펼쳐졌다. 만약 미국에서 오는 월요일(12일)부터 2인 이상 모임을 금지한다는 발표가 나왔다면, 전날 주말 전국의 모든 식당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와 아내가 10일 방문한 식당엔 우리밖에 없었고, 다른 예약은 모두 취소돼 식당 주인은 곧 문을 닫을 거라고 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자영업자들일 것이다. 한창 장사를 해야 할 저녁 시간, 2인 이상 손님을 못 받는다니. 수입은 크게 줄 것이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아예 문을 닫는 업체도 많아질 것이다. 최근 한국 정부의 방역 조치는 그래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질병청은 6월 말쯤까지도 거리 두기 규칙을 개편해 7월 첫 주를 이행 기간으로 두며 6인까지 사적 모임을 허용하려 했다. 하지만 확진자가 늘자 기존 거리 두기 2단계(4인 허용)를 유지하다 지난 9일 개편된 거리 두기 4단계(2인 허용)로 곧바로 격상했다. 그간의 추이만 보면 급격한 확진자 증가는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국내 신규 확진자 수는 벌써 6월 25일 600명이 넘었고, 6월 30일엔 750명 이상이었다. 그때 더 빨리 움직였다면 지금과 같은 심한 규제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K 방역의 가장 안타까운 점 하나를 꼽으라면, 거리 두기 단계가 확진자 수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점이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는 사람 중에는 무증상 감염자도 있을 것이고, 증상이 가벼운 이도 많다. 중증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도 방역 규칙을 조절할 때 주요 변수로 고려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코로나 사망자 수만 따지면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코로나 상황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
성공적인 방역, 그리고 국민의 살림살이 중 뭐가 더 중요할까? 정답은 “둘 다”다. 급증하는 코로나 확진자 수를 무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계속 경제 활동을 억누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방역 규칙도 균형을 잡아 여러 형태의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