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이맘때엔 보신탕집 앞에 인간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이젠 보신탕 간판도 보기 어렵다. 애교와 귀여움으로 중무장한 나를 개아범이 잡아먹지는 않을 것이므로, 나는 안심해도 될 것이다.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은 역사는 무척 오래됐으며 지금도 아주 사라지진 않았다. 보신탕은 88올림픽을 전후해 ‘꺼림칙한 음식’이 됐고, 2010년대 들어 애완견 키우는 인구가 크게 늘면서 아예 금기 음식처럼 됐다. 먹으러 갈 때 알리지 않고 먹고 난 뒤 티 내지 않는, 먹었으나 먹지 않은 음식인 셈이다.

일러스트=김도원

2001년 한 프랑스 배우가 보신탕을 원색적으로 비난했을 때만 해도 한국인들은 푸아그라가 더 잔인한 음식이라며 기분 나빠하는 쪽이었다. 영국에선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없애달라는 의회 청원이 올라왔고 서울에서 시위를 벌인 외국인도 있었다. 그러나 외국인의 도움은 더 이상 필요 없어 보인다. 보신탕은 야만이며 몰상식이고 죄악이라는 목소리가 이미 한국을 뒤덮고 있다.

몇 년 전 한 대학의 청소 용역업체 직원이 구내에서 키우던 유기견이 사라져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학생들은 “청소부가 잡아먹었다”고 항의했고 결국 그 직원은 사표를 썼다. 몇 달 전엔 한 음식 배달 앱에 보신탕집이 올라와서 또 소동이 일었고 이 식당은 목록에서 빠졌다.

한국인의 오랜 풍습이라곤 하지만 먹을 게 넘쳐나는 시대에 남의 눈치 봐가며 굳이 보신탕을 먹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미 보신탕은 한국 주류 문화에서 밀려났다. 소설가 김훈도 ‘개’의 초판을 내던 2005년엔 흰순이가 동네 사람들에게 잡아먹히는 것으로 묘사했지만, 올해 낸 개정판에서는 흰순이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으로 바꿨다.

그렇다 해도 ‘개고기를 먹는 건 야만’이라는 단호함 앞에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국사에서 보신탕은 백성의 가난과 허기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 개들의 거룩한 희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잣대로 과거의 맥락을 재단해 경멸하는 건 쉽고 화끈하다. 그런 것이 어디 보신탕뿐이랴.

고려 문인 이규보의 화두를 곱씹으며 삼복(三伏)을 날 생각이다. 한 친구가 “몽둥이로 개 잡는 광경이 너무 비참해 앞으로 개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고 하자 이규보는 “이(虱)를 화로에 태워 죽이는 게 너무 마음 아파 앞으로 이를 잡지 않기로 했다”며 “달팽이뿔을 쇠뿔처럼, 메추리를 붕새처럼 보아야만 도(道)를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나도 이제 고양이를 호랑이처럼, 잠자리를 용처럼 생각하며 정진(精進)해야겠다. <다음 주에 계속>

토동이 말하고 한현우 기자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