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어느 집회에 참석해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가 고초를 겪었다. 점포에 욕설 전화가 쏟아져 가족과 직원들이 공포를 느끼고, 마침내 전화선을 끊어야 했고, 이른바 ‘평점 테러’도 이어졌다고 한다. 자신을 극단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몰려가 문자 폭탄을 보내고, 일상과 생계를 방해하며 패악질 일삼는 행위를 문재인 대통령은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긍정한 바 있다. 그 뒤로 세상은 이것을 ‘양념질’이라 부른다.

나도 몇 번 양념질을 당해봤다. 현 정부를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가 하루 수십 통 욕설과 협박 메일이 들어오고 비난 댓글이 이어졌다. 내가 쓴 책에 갑작스레 1점 평가가 붙고, 칼럼과 상관없는 다른 매체까지 비난 댓글이 따라왔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이 정도는 감내할 몫이라 담담히 생각했는데, 내가 운영하는 편의점 프랜차이즈 본사까지 항의 전화를 했다는 말을 듣고는 정신이 아뜩했다. 느닷없는 불친절 신고가 늘고, 본사 담당자한테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편의점 근무자들도 불안한 눈빛이었다. 그즈음 어느 매체에서 연재 중단 통보를 받았다.

양념질을 당하면 어떤 느낌이냐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불안하고 초조하다.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들이야 광야를 홀로 걷는 심정으로 의연하겠지만, 언론인이야 원래 그것이 직업이지만, 하루 벌어 간신히 먹고사는 나 같은 자영업자로서는 괜한 일 벌여 이런 일을 자초했구나, 후회와 자책이 든다. 내가 괴로운 건 참을 수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 밥줄 끊기게 만들었으니 밤잠을 설친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병원 진료를 받았다. 낯선 손님이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덜컥 심장이 멎는 것 같다. 이런 것을 노리고 양념질을 하는가 보다.

정말 후회 많이 했다. 그냥 우리 편의점 꼬마 손님들이랑 알콩달콩 재밌는 이야기나 쓰면서, ‘편의점엔 이런 비밀이 있어요’ 하고 흥미로운 사연이나 슬금슬금 털어놓으면서 살았으면 마냥 유쾌한 편의점 작가로 남을 수 있었을 텐데, 뭣 하려 분수에 맞지 않게 사회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글을 써서 화를 자초하는가. 내 하찮은 손가락과 미천한 판단 능력을 원망하며, 앞으로 언론사 칼럼은 쓰지 말까, 생각했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 만들려는 세상도 바로 그런 세상이리라. 내 생각이 잘못됐다면 반성하고 회의하여 사고 방향을 다듬는 것이 아니라, 밥줄 끊길까, 괜히 얻어맞지 않을까 걱정돼 입을 꾹 다물게 되는. 그리하여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여가(何如歌)만 읊거나, ‘해동 육룡이 나르샤’ 하면서 임금님 만세만 외쳐야 하는. 그런 야만 앞에 꺾일 수 없다는 생각에, 계속 글을 써야겠다는 작은 오기를 다졌다.

광주 카페 사장님 연설은 자영업자라면 대체로 공감할 내용이었다. 돌아보면 우리 국민은 얼마나 착하고 순수한가. 바다 건너 뉴스를 들으면 마스크 착용과 영업 제한에 항의해 시위와 폭동까지 벌어진다는데, 우리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중이다. 자영업자만 힘든가. 세상이 다 힘들다. 어수선한 재택근무를 이어가는 직장인들, 뚜렷한 돌봄 대책도 없는 상황에 아이들과 복작이는 부모들, 묵묵히 해고를 받아들이는 단기 근로자들, 벼랑 끝에 선 취업 준비생과 구직자들…. 그래도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는데’ 하는 착한 마음으로 모두 견딘다. 그럼에도 묵묵히, 누구나, 끝까지, 입만 다물고 있어야 하는가. 그렇게 참고 참다 터져 나온 생존의 비명 하나에도 음흉한 의도가 있을 거라고, 카페 사장의 과거가 불순(?)하다고, ‘그들’은 좌표 찍어 양념질해대기에 바쁘다.

좌표를 찍은 사람은 예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백번 양보해 수사기관의 어떤 의도가 있었다 한들, 자신의 불법과 허물로 물러난 양반이 뭐가 그리 억울한지 오늘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손을 놓지 않는다. 자기 털끝 건드린 잘못에는 ‘감히 나를 건드려?’ 하는 식으로 소송과 배상을 운운하고, 서민의 생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일에는 ‘너도 한번 당해봐라’ 하는 식으로 양념질을 안내하고 일언반구 사과나 해명조차 없다.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은 억울하고 분해도 소송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일조차 힘들고 지친다. 쪼잔한 사람에게 자꾸 대꾸하다 보니 갈수록 쪼잔해지는 느낌이다. 하루하루 살기 버겁다. 어제는 직원들 월급 주기 위해 급기야 은행 대출을 알아보러 다녔고, 딸아이는 다음 학기에도 휴학계를 내야 한다. 그럼에도 민초들은 참고 배기고 견딘다. 세상의 폭력과 야만에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버티고 지킨다.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울었지만, 시나브로 풀이 바람을 이기는 세상이 될 것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우리 풀에게는 ‘뿌리’가 있으니까. 오늘도 질긴 뿌리의 힘으로 땅을 딛고 흔들리는 착한 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울지 마라, 울어라, 이긴다. 광주 카페 사장님께도 멀리 응원의 말씀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