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귀신, 부적도 몰라본다’ 하였다. 여기서 ‘부적’이란 특정 공동체가 공유·인정하는 ‘문화’의 하나다. 타자에게 ‘미신’이지만 해당 공동체에는 소중한 문화다. 타자인 서구인이 동양 문화를 바라보는 데도 일정한 ‘무식’이 전제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서구 중심주의(eurocentrism)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다. 전자는 서유럽이 걸었던 역사 과정을 정상적인 것으로 보고 그 밖의 것은 후진적으로 본다. 후자는 서구인의 우월적 관점에서 바라본 동양에 관한 지식 체계를 말한다.
그런데 문화에 관한 한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 땅의 풍토와 역사 속에서 형성된 문화는 각각의 존재 가치가 있다. 풍수 역시 서구 지식에 세례받은 이들에게 ‘미신’으로 무시당하고 멸시당한다. 일찍이 시인 김지하 선생은 이를 통렬히 비판하였다. “풍수학에 대한 현대 한국 지식인들의 혐오감은 매우 뿌리 깊습니다. 이것은 첫째 그 지식인들의 서양 지향 학문 체질에 달려있으며, 유행하는 서양학의 지배력에 그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반성해야만 합니다.”(‘생명학’)
일찍이 무라야마 지준은 “한국의 문화는 옛날부터 그 땅에 살며 생활해온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에 그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사상과 신앙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라고 했다. 그는 그 가운데 하나로 풍수를 꼽았다. 풍수가 한반도에서 십 수세기 동안 한국 민속 신앙 체계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해왔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아주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조선의 풍수’)
좌파의 풍수 멸시는 당연하다. 그들의 원조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서구 학문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서구 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 관점에서 보면 풍수는 분명 미신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뿌리를 둔 북한도 풍수를 봉건 도배의 미신으로 부정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다고 우파 지식인들이 전통문화에 따뜻한 애정을 갖는 것도 아니다. 서구 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것은 좌파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좌우 진영 지식인들에게 무시당하고 잊힐 뻔한 한국 풍수의 전통을 살려 놓은 학자가 이병도(1896~1989) 교수와 배종호(1919~1990·연세대 철학과) 교수다. 특히 두계 이병도 선생의 ‘고려시대의 연구’(1947)는 고려의 전 역사를 풍수를 바탕으로 서술한다. 고려는 국교가 불교였지만 동시에 풍수였다. ‘고려시대 연구’는 ‘풍수로 보는 고려사’이지만, 단순히 문헌을 해석하고 정리해서 된 책이 아니다. 풍수지리에 대한 내재적 접근, 풍수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실천을 통해 집필했다.
두계 선생은 풍수를 “산과 물의 감쌈에 의해 기가 흩어지는 것을 막고, 그로 인해 생기를 받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 조건으로 “주산이 아름답고, 내룡이 웅장하고, 청룡·백호가 잘 감싸고, 안산이 공손하며, 수구(水口)가 잘 조여야 한다”고 하였다.(‘고려시대의 연구’)
용인에 자리한 두계 선생의 음택(묘 자리)도 자신의 풍수 이론에 부합하였다. 유학자이면서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종회 선생은 풍수에 관해서도 독보적이다. 김종회 선생은 두계 선생의 음택을 ‘삼천분대연화(三千粉黛蓮花)’, 즉 삼천 개의 연꽃잎(묘를 감싸는 주변 산들)이 꽃심[花心: 무덤 자리]을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라 평한다. 뭇 신하[주변 산]가 이곳을 향해 절을 하는 군신봉조(群臣奉朝)라고도 한다.
한국인의 신앙이자 관학(官學)이었던 풍수를 바탕으로 두계 선생은 우리 역사를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풍수 체계를 따랐다. 진실로 한국적 ‘풍수학자’였다, 역사학자 이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