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를 맛있게 마셔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제임스 조이스가 기네스에 대해 한 말을 듣고 마음이 바뀌었다. 조이스는 기네스를 맥주가 아니라 아일랜드의 와인이라고 말했다. 이건 꽤나 극찬이다. 그는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화이트와인은 찌릿찌릿한 게 전기 같고, 레드와인은 비프스테이크 같다고 했다. 술을 지극히 좋아하지 않고서야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이 말은 재미있어서 곱씹게 된다. 화이트와인의 맑고 화사한 청정미를 전기에 비유한 것도 웃기고, ‘비프스테이크에는 레드와인’이 공식처럼 말해지지만 레드와인 자체를 비프스테이크에 비유하니 신선해 그렇다. 이 말대로라면, 화이트와인을 마시며 전기를 마시고, 레드와인을 마시며 비프스테이크를 마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얼마나 술을 좋아했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싶지만 조이스는 이십 대 중반까지는 입에 술을 한 방울도 대지 않았다. (과장일지는 모르겠지만 조이스를 다룬 책들에 그렇게 쓰여 있다.)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아버지는 명석한 두뇌에도 불구, 자식이 열이나 있는데도 불구, 술에 빠져 모든 걸 망쳐버린 사람이었다. 직장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만취해 아내(그러니까 조이스의 어머니)의 목을 조른 적도 있다. 그래서 조이스 가족은 빚에도, 또 아버지의 정신적 학대에도 시달려야 했다. 조이스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술독에 빠진 삶을 살았다.

더블린 출신의 대문호 제임스 조이스는 평소 기네스를 즐겨 마셨다. /조선일보 DB

장남이었고, 어머니를 유난히 사랑하고, 연약한 마음을 가진 조이스는 자기마저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술을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가족을 병들게 했던 자신의 아버지처럼만은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마시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에게는 신앙이었으니까. 그랬는데, 신앙이 사라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신앙이 사라졌으니 새 신앙이 필요했던 것일까?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달랠 게 필요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가 펴낸 소설에서 계속해서 썼듯이 피를 타고 유장하게 흐르는 알코올 DNA 때문에 어쩔 수 없던 것일까?

알 수 없다. 모두 다일 수도 있고, 모두 아닐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그는 계속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달랐다. 술에 잡아 먹혔던 아버지와 다르게 자신의 인생을 걸고 자기가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한 일을 했다. 소설을 쓰는 것 말이다. 읽어본 사람은 드물지만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드물다는 <율리시스>가 그것이다. 이 소설은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에 대해 길게도 쓰였다. 1922년 나왔는데, 시간적 배경은 1904년 6월 16일이다. 제임스 조이스 애호가들은 이날을 기념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6월 16일에 직접 소설의 배경인 아일랜드 더블린에 가기도 한다. 더블린에 비행기를 타고 가서 등대와 펍, 식당에 앉아 소설 속 인물이 되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이 날이 블룸스데이(Blooms day)다.

나는 블룸스데이에 더블린에 간 사람을 알고 있다. 더블린에서는 6월 16일에 이런저런 모임들이 펼쳐지는데, 그는 치열한 예약을 뚫지 못했다. 그래서 6월 15일인가 6월 17일인가에 하는 모임에 갔다고 했다. 커다란 원탁(12인용이라고 했었나?)에 앉아 음식들을 먹으며 <율리시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고. 아마도 <율리시스>에 나오는 음식들이 나왔을 텐데 그는 소설을 제대로 읽지 않아서 민망했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그 자리는 제임스 조이스와 율리시스 전문가를 자처하는 전 세계의 ‘율리시스 오덕’들이 모인 자리 아닌가. 그의 옆에는 홍콩에서 날아온 남자가 앉아 있었고, 유일한 아시안이었던 둘은 서로를 보면서 몇 마디 나눴다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문학 너드(nerd)’로서 사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고.

이 글을 쓰다가 처음으로 nerd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영어사전에는 바보나 얼간이 등으로 되어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며 “바보치곤 단수가 매우 높은 바보”라는데 이 말이 더 웃기고, 슬프다. 그는 그 상황이 웃기고 슬퍼서 계속 술을 마셨다고 했다. 그러니까 기네스를 말이다. 오로지 제임스 조이스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한자리에 모인, 영어를 외국어로 쓰는 사람들은 어색하게 몇 마디를 하고 기네스를 마셨다고 한다. 마치 블룸스데이의 공식만찬주이기라도 한 것처럼 기네스는 원탁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듣던 순간을 기억한다. 내게는 그다지 특별한 적 없던 기네스가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전했다. 아일랜드에서 마시는 기네스는 한국서 마시던 기네스와는 매우 다르다며, 이런 맥주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특별함이 흘러넘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그러니까 틈만 나면 기네스를 마셨다고 한다.

올해는 나도 6월 16일을 기념해보려 했다. 천 페이지가 넘는 이 책, <율리시스>를 다 읽지 않았지만 말이다.(100장 정도 읽었을까?) 그런데 그날은 정신이 없었고, 그래서 며칠이 지난 어제에야 뒤늦게 나만의 블룸스데이를 치렀다. 내가 갖고 있는 두 종의 <율리시스> 번역본을 들춰보고, 책장을 넘기면서 기네스가 어디 나오나 찾아보고, 더블린 지도도 좀 보다가 기네스를 마셨다.

그냥 마실 수는 없었다. 기네스는 운송 거리에 비례해 맛이 현저히 떨어지는 술이라는 걸 알고 있는 데다가, 정작 조이스는 기네스보다 와인을 좋아하지 않았던가라는 생각에 둘을 섞었다. 스파클링 와인과 기네스를 말이다. 실제로, 샴페인과 기네스를 동시에 잔에 따라 마시는 칵테일이 있다. 이 칵테일의 이름은 블랙벨벳. 이 술을 마시기 전에 나는 생각했었다. 기네스와 거품과 샴페인의 거품이 서로를 휘감을 테니 얼마나 부드러울까라고.

그래서 어제도 따랐다. 샴페인은 아니고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샴페인은 꽤나 비싸서 이탈리아산 프로세코나 스페인산 까바 같은 스파클링 와인으로 나는 블랙벨벳을 만들고 있다. 첫 모금을 마시면, 스파클링 와인이 이렇게 강력한 술이었나 싶을 정도로 기네스의 향과 색은 약하게 느껴진다. 구수한 보리맛을 스파클링 와인의 화사한 향이 뒤덮고, 포도의 산미까지 더해져 기네스는 잡아먹힌 듯도 한데 역시나 끝맛은 기네스가 밀려온다. 기네스의 씁쓸한 보리맛이 입 안에 남는데, 이 강건함이 좋았다.

블랙벨벳을 마시고 있으면 더블린의 펍에서 직접 따라주는 기네스는 대체 어떤 맛일지 매우 궁금해진다. 더블린 현지에서 마시는 ‘아일랜드의 와인’에 또 다른 와인을 타서 마시는 블랙벨벳은 대체 얼마나 부드러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