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에 갔다가 열다섯 살이나 됐다는 몰티즈 할아버지를 만났다. 개 나이 열다섯을 사람으로 치면 70대 중반 내지 80대 초반쯤 된다. 몰티즈 옹을 데려온 개아범·개어멈은 의사 선생님한테 혼나는 중이었는데 무슨 수액을 정량대로 맞히지 않고 마음대로 줄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의사는 몰티즈의 신장 기능이 나빠져서 오줌을 만들어내기 힘들어졌다면서, 이 병이 나을 수는 없고 조금씩 나빠지다가 언젠가 신장이 멈추면 개도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몰티즈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는데, 어떤 초월의 경지에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안면 근육이나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고 힘들어 보였다.

개 주인들은 몰티즈가 약을 먹기 싫어해서 온갖 방법을 써봤는데도 잘 안 된다며 주둥이가 길쭉한 약병 같은 걸 찾고 있었다. 다른 개 주인들이 다이소에 가면 있다는 둥 소아과에 가서 약병을 얻어보라는 둥 한마디씩 보탰다. 그러나 몰티즈 주인 부부는 “아이고, 그런 거 다 써봤죠. 다 물어뜯고 약을 뱉어내서 안 돼요”라고 말했다.

수의사는 몇 번에 걸쳐 몰티즈가 그리 오래 살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헛된 희망을 심어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몰티즈는 털도 듬성듬성 빠졌고 눈빛도 총기를 잃어가는 중이었다. 그가 유일하게 활발해진 건 약을 먹이려고 하자 이빨을 드러내며 고개를 돌릴 때였다. 그러던 몰티즈가 어느 순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내 나이 이제 6개월 반, 인간으로 치면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는 나를 보고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갑자기 미안해져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몰티즈는 밥도 잘 안 먹고 간신히 물과 약만 먹는다고 했다. 그도 한때 주인 무릎에서 재롱을 피우고 집 안을 뛰어다니고 비둘기를 잡겠다고 쏜살같이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겠지. 이제 그는 주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생의 마지막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애견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인간들은 개에게 온갖 영양제를 먹인다, 보양식을 해준다 하며 법석을 떤다. 개들이 마당에 살면서 인간들이 먹고 남은 밥 찌꺼기를 먹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개들은 오래 살지 못했다고 한다. 개들이 15년 안팎을 살게 된 요즘, 인간들은 개가 암이나 당뇨나 심지어 치매에 걸릴까 봐 걱정한다. 몰티즈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서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사춘기가 오는 모양이다. <다음 주에 계속>

토동이 말하고 한현우 기자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