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안병현

“이대남(20대 남성) 대변인.”

지난 한 달여간 한국 정치판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국민의힘 이준석(36) 신임 당대표의 별명이다. 그는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기간 내내 나경원, 주호영 등 쟁쟁한 당내 중진들을 압도하며 지지율 1위를 달렸다. 30대라는 나이, 한 번도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 없는 원외 인사라는 점에서 이준석의 부상은 파격이었다. 이런 ‘이풍(李風)’의 핵심에는 청년층, 특히 20대 남성의 절대적 지지가 있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20대 지지율이 50~60% 수준이고 20대 남성은 70%를 넘나들었다. 국민의힘 안팎에서도 “이번 경선 이변을 보면 이준석의 이대남 잡기 전략이 효과가 있었다는 방증 아니냐”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이준석의 멘토 역할을 한 하태경 의원 역시 20대 남성들과 관련한 이슈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런 흐름이 보수 정당에 적대적이었던 청년층을 끌어들인 혁신처럼 비쳤다. 여기에 전통적 지지층인 60대 이상 노년층까지 이준석을 ‘보수의 구원투수’처럼 받아들이면서 대세론이 완성된 모양새다. 이번 당대표 경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이 20대 남성 지지층 굳히기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실제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국민의힘 지지율의 진짜 문제는 20대 남성이 아니라 20대 여성이다. 지난 몇 년간 보수 정당을 지지했던 20대 여성 대다수가 이탈한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 20대 남성을 등에 업은 이준석 돌풍이 지금 당장은 보수의 외연 확장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보수를 기존 이미지에 더 가두게 만드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대 여성만 한 자릿수 지지율

2013년 이후 한국갤럽 정당 지지율 조사(매년 4월 기준) 추이를 보면 국민의힘 지지층 중 20대 여성의 이탈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20대 여성의 새누리당 지지율은 27%에 달했다. 하지만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3%까지 폭락한 뒤 지금까지 한 자릿수(8%)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성별과 연령대를 통틀어 국민의힘 지지율이 한 자릿수인 것은 20대 여성층이 유일하다.

민주당은 어떨까. 2013년 당시 20대 여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27%로 국민의힘과 똑같았다. 지금은 33%로 오히려 높아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 소속 거물 정치인들의 성추문 사건이 연이어 터졌는데도 20대 여성 지지율은 국민의힘을 압도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20대 남성 지지율은 국민의힘과 민주당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다. 재보궐선거 전후로 20대 남성들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25%에서 28%로 소폭 올랐다. 민주당은 17%에서 16%로 약간 낮아졌다. 20대 남성들의 양당 지지율 격차가 12% 정도 나는 셈인데, 20대 여성의 지지율 격차(25%)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이준석을 필두로 국민의힘이 “20대 남성들이 예전과 달리 보수화하고 있다”는 가설에 기대 지지를 호소하고 있지만, 정의당·열린민주당 등 범진보 계열 지지까지 합치면 20대 남성들이 특별히 보수화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20대 남성의 새누리당 지지율이 39%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20대 남성의 탈보수화 추세가 여전하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당내에서도 20대 여성 지지율이 오랫동안 복구되지 않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이대남에게 올인한 이준석의 경선 전략이 바람을 일으킨 건 맞지만 그 여파로 20대 여성들이 우리에게서 완전히 등 돌릴 수 있다는 우려도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똑같은 꼰대”

20대 여성들의 국민의힘 이탈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가 지난달 당대표 예비 경선 여론조사다. 당대표 출마자 8명을 5명으로 추리기 위해 당원은 물론, 일반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오직 20대 여성만 응답자 정수를 채우지 못해 결과 발표를 하루 미뤄야 했다. 당내에서 “여론조사 응답조차 거부할 정도로 20대 여성의 반감이 강하다는 방증”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의 각종 성추문에도 20대 여성이 국민의힘으로는 돌아서지 않는 원인으로 “그들이 볼 땐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기득권 남성들로 이뤄진 집단이란 점에선 차이가 없다”는 점을 꼽는다.

재보궐선거 이후 민주당 의뢰로 여론조사 업체 엠브레인이 실시한 양당 이미지 조사를 보면 국민의힘은 ‘돈과 권력을 중시하는 50대 후반~70대 꼰대 남성’처럼 보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민주당은 ’40~50대의 독단적이고 겉과 속이 다른 무능한 남성'이었다. 연령대에 차이만 있을 뿐이지 20대 여성이 보면 크게 다를 게 없는 이미지다. 재보궐선거 때 오세훈 시장 지지 연설을 해서 화제가 됐던 여대생 신모(21)씨는 “재보궐선거는 고(故) 박원순 시장 문제 때문에 치러진 심판이었기 때문에 20대가 국민의힘을 지지한 것 같다”며 “이 대표가 민주당이 보궐선거 진 이유가 페미니즘 때문이라고 하거나 20대 남성이 역차별 받는다고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모습은 좀 과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갤럽 지지율 데이터에 따르면 탄핵 이후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다가 거기서도 실망한 20대 여성 대부분은 무당층이 되거나 정의당·녹색당 등 더 진보적인 정당 지지로 이동하는 추세다. 청년 세대 문제를 다룬 베스트셀러 ‘세습 중산층 사회’를 쓴 조귀동 작가는 “지금 이준석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남녀 대결 구도는 결국 서울 명문대 출신으로 괜찮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일부 청년 사이에서만 격렬하게 일어나는 것이고, 실제 20대 남녀의 정당 지지 양상은 다르다”면서 “인터넷 여론만 보고 이대남 표심을 잡느니 마느니 하는 순간 20대 여성 표심은 와장창 깨져 나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경희대 김민전 교수는 “이 대표가 여성할당제 폐지 같은 공약을 정말로 실행에 옮긴다면 20대 여성들은 국민의힘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라며 “당장 남녀 갈등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일부 남성의 지지를 얻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남녀 모두를 포용하는 정책을 내놓아서 예전 같은 지지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