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거나하게 취해 느지막이 돌아오셨다. “어디서 이렇게 늦게까지 잡수셨수? 숫제 고주망태가 되셨구려.” 늦는 영문도 모른 채 초조해하던 어머니께서 톡 쏘아붙이셨다. “허허, 우리 마나님께서 단단히 골이 나셨네. ‘대머리 사위네’서 한잔했지. ΟΟ이 부르니 안 나갈 수 없잖아.” 어머니의 화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심산으로 너털웃음 짓는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은근슬쩍 잡으셨다. ΟΟ은 가친의 손위 처남 아호인데, 오빠라면 꼼짝 못 하는 어머니의 속을 읽으신 아버지의 되치기 묘수였다.
“전화는 뒀다 뭐 하시게요. 연락도 안 하고. 기다리는 사람도 생각하셔야지.” 다행히 목소리 톤이 다소 낮아졌다. 평소 늘 가정적이신 아버지는 사실 약주 때문에 늦는 날이 많지 않았기에 팽팽했던 기 싸움은 곧 끝이 나고 어머니는 “그래, 무슨 얘기들 하셨는데요?” 하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궁금해하셨다.
‘대머리 사위네’는 허름한 선술집으로 머리가 벗어진 영감님이 운영하다가 연세가 들어 사위가 물려받았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샐러리맨들이 오며 가며 들르는 주점인데, 정식 상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선친은 항상 그렇게 부르셨다. 이마가 훤한 당신도 머지않아 필경 대머리 소리를 들을 텐데, 하는 생각에 형제들이 뒤돌아 키득키득하곤 했다. 벌써 반세기가 훌쩍 넘은 케케묵은 얘기로 ‘대머리 사위네’가 어떻게 변했는지, 아니 아직 남아있기나 한지 알 길이 막연하다.
‘대머리 사위네’라….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상대방을 놀리는 말로 들릴지 모르나 당시에는 별다른 악의 없이 손님들이 주인의 생김새나 별명 등으로 가게 이름을 대신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정신없이 바쁜 중에 어쩌다 틈이 생기면 가까운 종로 4가의 ‘곰보 냉면’에 마을버스를 타고 가 별식을 즐겼다. 번잡한 시장통 좁은 시계 골목 안에 있는 집으로 동네에서는 꽤 알려진 맛집이다. 냉면도 맛깔스럽고 두어 대 두툼한 갈비가 들어있는 갈비탕도 국물 맛이 달다. 생각하면 가게를 시작한 분이 곰보 아주머니가 분명할진대 갈 때마다 두리번거려도 얼굴이 얽은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아 의아했다. 곰보는 지금은 사라진 천연두를 앓고 난 뒤 얼굴에 흔적이 남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곰보 냉면’이라고 하면 퍽이나 인상적이고 정감이 있어 결코 나쁘게 들리지 않는다.
서울 중구 장충동은 족발의 거리다. 큰길을 따라 늘어선 족발집들이 서로가 원조라고 우긴다고 들어 알고 있다. ‘뚱뚱이 할머니네’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붙였는데 족발을 팔았던 분의 풍채가 넉넉했던 모양이다. 예전에 그냥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부르던 이름이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별호가 된 것이다. ‘뚱뚱이 할머니’ 역시 비만이라는 좋지 않은 뜻보다는 푸근함이 녹아있어서 족발의 맛을 더해준다.
남편 잃은 아낙네가 운영하는 음식점을 흔히 ‘과부네’라고 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지금도 충청도 어딘가에 ‘쌍 과부네’라는 한식 음식점이 있다는데, 왠지 죽장에 삿갓 쓴 나그네가 호롱불 깜박이는 주막에서 걸쭉한 탁주 사발을 들이키는 장면이 떠오른다.
어머니께서 늘 다니시던 동네 시장에는 ‘네네집’이라는 식품 가게가 있었다. 마음씨 좋은 주인아저씨가 손님들 물음에 웃으며 항상 ‘네, 네’ 하고 대답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가게는 ‘내시집’이라는 조금은 민망한 이름으로 불렸는데 허우대가 크고 등이 구부정한 연세 지긋한 주인장께서 구한말 궁(宮) 에서 일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가게의 특징이나 위치 때문에 만들어진 상호도 있다. 음식점 안이나 근처에 오동나무가 있으면 ‘오동나무집’이라 했는데 마찬가지 연유로 ‘버드나무집’, ‘앵두나무집’, ‘은행나무집’도 있고 뜰에 우물이 있어 ‘우물집’이라 불렸다. 조선 시대 방범을 위해 세운 이문(里門) 안에 있어서 ‘이문옥’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식당은 아니지만 자하문(창의문) 건너 동네를 ‘자문밖’, 새로 생긴 문(신문, 新門) 안에 있다 해서 붙여진 신문로의 ‘새문안교회’도 마찬가지 이치다.
‘물레방아집’ 하면 놔서 키운 토종닭을 푹 삶아 낸 뽀얀 국물의 백숙이 떠오르고, ‘굴다리집’에서는 서민의 단골 메뉴인 돼지국밥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대소를 막론하고 상점마다 간판이 없는 상점이 없다. 기발한 발상의 재미있는 이름도, 생소한 외래어 이름도 있고 번쩍번쩍한 간판을 내걸어 행인의 눈길을 끌려고 하는 곳도 많다. 보고 있노라면 세련되고 깔끔한 맛은 있으나 인간미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릴 적 동네 구멍가게나 전통시장 속 상점에는 상호나 간판이 없었다. 홍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고 그저 알아서 찾아오는 손님을 맞을 뿐이었다. 세월이 쌓이고 소통을 위해서 손님들 사이에 불리던 소박한 별명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옥호로 굳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투박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재미있는 상호가 생기는 과정이 이러했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구시가 속 노포를 생각하며 옛 정취에 빠진다. 그런 음식점에 가면 없는 재료에도 감칠맛을 내시던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누가 구닥다리 아니랄까봐, 끈끈한 서로의 정을 주고받던 세상이 그립다.
서울대 신경외과학 명예교수·'마음 놓고 뀌는 방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