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자격 미달 개 주인에 대해 한번 짖었더니 댓글이 우르르 달렸다. 맞아 맞아 하는 반응이 많았지만 역시나 개를 혐오하는 사람이나 그저 털북숭이 생명체 정도로만 여기는 사람도 여전히 많았다.
한국에서 개는 자전거와 비슷한 존재 같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자전거는 아이들의 놀이 기구 또는 어른들의 이동 수단이거나 운송 수단이었다. 어떤 재질로 만들었는지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자전거가 고급 취미 겸 운동 기구로 자리 잡기 시작한 건 2000년대 후반이다.
500만원짜리 자전거를 좁은 집 안에 들여놓고 맨날 분해해서 기름칠하는 사람이 있다. 헬멧 30만원, 고글 40만원, 자전거복 50만원, 자전거 신발 40만원, 장갑 10만원이고 각각 세 개씩 구비하고 있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아마 절반은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전거를 그저 두 바퀴 탈것으로만 본다면 그는 미친 사람이 맞는다. 그러나 자전거를 통해 인생을 새로 각성(覺醒)한 사람에게 남들의 손가락질은 전혀 무의미하다. 그는 홀로 새벽에 일어나 쫄쫄이 옷을 갖춰 입고 페달을 굴려 똑바로 나아간다. 이것은 신실한 불자의 새벽 예불과 다를 바 없다.
이 경지에 오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오늘도 중고나라에는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자전거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자전거가 늘 멋지고 항상 즐겁고 절대 주인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가, 새벽에 일어나기 귀찮고 언덕 오르기 힘들고 과속하다가 넘어져 팔 부러진 사람들이 자전거를 팔아버린다. 팔리지 않으면 지하철역 근처나 한강 자전거길에 내다 버린다.
댓글 하나가 눈에 확 띄었다. “여름이면 농촌을 지나가는 승용차에서 개를 내려놓고 도망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 고려장같이 집을 찾아올 수 없는 한적한 먼 곳에 개를 버리고 사라집니다….” 이런 개들끼리 짝을 지어 시골 동네를 떠돌다가 한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그런 개들도 머리에 빨간 리본을 매고 목에 예쁜 방울을 달고 있다.
휴가철 캠핑장에서도 홀로 남겨진 개가 종종 발견된다. 이런 개는 유기 동물 보호소로 옮겨진다. 유실·유기 공고를 했는데도 찾아가지 않거나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당한다. 개에게 수면 마취제를 주사해 깊은 잠에 빠지게 한 뒤 치사량의 근육 이완제를 놓아 심장 근육을 정지시킨다.
개가 사람을 수시로 물거나 종일 짖어 이웃에게 폐를 끼쳤을 것이다. 또는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 감당할 수 없게 됐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단지 개를 키우는 것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꼬리 흔들며 재롱 피우거나 얌전히 무릎에서 잠만 자면 좋겠는데, 아무 데나 똥 싸고 온갖 물건 물어뜯고 비싼 물건을 깨뜨렸을 수도 있다.
우리 개들은 2만년 전부터 인간들과 살아왔다. 늑대한테 물려받은 유전자와 인간에게서 길들여진 습관대로 살았을 뿐인데, 인간들은 우리를 신줏단지 모시듯 했다가 두들겨 패거나 길바닥에 내버리기도 한다. 개와 산다는 건 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떠돌아다니기보다는 사람과 살고 싶다. 이왕이면 집 안에서 살고 싶지만 마당에서 눈비 맞고 살아도 상관없다. 다만 갖고 놀다가 싫증 나면 내다 버리는 장난감이 되고 싶지는 않다.
오늘 개아범과 산책하다가 아파트 한 구석에 펑크 나고 녹슨 채 버려진 자전거 무리를 봤다. 나는 꼬리를 세우고 멈춰 서서 개아범을 똑바로 쳐다봤다. <다음 주에 계속>
토동이 말하고 한현우 기자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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