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준석이다!” 지난 24일 저녁, 2030세대로 보이는 100여 명이 대구 수성구에 있는 지하철 범어역 2~3번 출구에 모여들었다. 남녀 비율은 8대2 정도.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준석(36) 전 최고위원을 만나러 온 사람들이었다. 이준석이 현장에 도착하자 일부 남성이 외쳤다. “반드시 당대표가 돼서 남녀 불평등 바로잡아 주세요!”

최근 국민의힘 당대표 예비경선에서 지지율 51%(일반여론조사)를 찍으며 컷오프를 1위로 통과한 이준석. 그의 인기 요인 중 ‘젠더(性) 이슈’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여성할당제, 여성 징병제, 군 가산점제 등 양성 평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남성 대변자’를 자처하며 말 대포를 쏘아댔다. 반응은 극단으로 엇갈린다. 페미니즘에 억눌렸던 2030 남성 상당수는 격렬하게 지지한다. 지난 22일 한길리서치 설문 조사 결과, 남성 지지율이 35.7%로 2위인 나경원 전 의원(20.7%)보다 15%포인트가량 높았다. 반면 “표를 얻기 위해 남녀를 가르는 나쁜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매섭다.

25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에서 국민의힘 1차 전당대회가 열렸다. 당 대표로 출마한 이준석 후보가 비전발표를 하고 있다. 2021.05.25 국회사진기자단

◇‘정치인’ 이준석의 승부수... 남성 대변자?

이준석은 26세에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는 점, 서울과학고·하버드대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이후 국회의원이 되려고 했지만, 연거푸 실패했다. 그를 발탁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입지가 좁아지나 싶었지만, 만회할 뜻밖의 기회가 생겼다. 젠더 문제에 적극 목소리를 내면서 다시 뜨기 시작한 것. 관련 발언 수위가 세질수록 지지 세력은 결집했다.

이번 경선에선 정당의 공천과 내각, 직장에서 청년과 여성 몫을 일정 부분 보장하는 ‘할당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할당제가 합당한 자격을 갖춘 청년이나 여성이 아니라 내부 사람을 밀어 올리는 도구로 악용돼 실력 있는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는다”는 게 그의 논리다. 한 인터뷰에선 “여의도 정치권 주변에서 활동하는 여성과 청년만 유리하게 만들어 실력 있는 일반인 청년과 여성의 정치권 진입을 막는다. 보통 청년은 스펙을 쌓으려 노력하는데, 낮 2시에 여의도 와서 회의하는 이상한 청년들이 할당제를 받는다”고 꼬집었다. 또, 문재인 정부 사례를 들며 “여성 할당제를 실력 없는 측근 인사를 밀어 올리는 도구로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이도 있지만, 구조화된 차별을 간과한 것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서혜진 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할당제는 우리 사회의 의사 결정 구조가 구성원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만든 제도”라며 “할당제 반대 논리로 말하는 ‘능력’이라는 것도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사회가 낳은 현상인가 전략가인가

이준석이 본격적으로 젠더 문제에 대해 발언한 것은 2018년 11월에 터진 ‘이수역 사건’이다. 서울 동작구 이수역 부근 술집에서 여성 2명과 남성 3명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는데, 일부 여성이 이를 “여성 혐오로 인한 폭력”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이준석은 “젠더 프레임으로 엮어, 한 성별이 한 성별에 대한 비난을 조장한 것”이라 반박했다. 2019년 초엔 남성 혐오 등으로 논란을 빚은 여성 커뮤니티 ‘워마드’를 향해 “2019년을 워마드 종말의 해로 만들어 주겠다”며 대립했고, 올 들어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페미니즘을 강요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면 여성 혐오냐”는 등의 설전을 벌이면서 주목받았다. 이준석은 본지 통화에서 전략적으로 자신을 ‘안티 페미 전사’로 자리매김한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수역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 남녀 문제가 크게 잘못돼 가고 있다는 생각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MBC 100분 토론’ 등 시사 토론 프로그램 제작진은 성별 문제를 다룰 때마다 이준석을 패널로 섭외한다. MBC 관계자는 “정치인 대부분이 민감한 남녀 문제를 발언하는 데 몸을 사리지만, 이준석은 자기 언어로 자기 생각을 잘 얘기하고 섭외에 적극 응한다”고 했다. 젠더 이슈를 말해줄 ‘희소성 있는 스피커’가 된 셈이다. 정치 평론가 차재원(부산가톨릭대 겸임교수)씨는 “정치권에서 10년 이상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남성이나 청년 문제에 대해 자기만의 논리를 갖고 얘기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먹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30대 여성 직장인 백모씨는 “성별 갈등을 교묘히 이용해 인기를 얻으려는 것 아닌가. 마케팅 반, 본인 생각 반인 듯하다. 영리하지만, 갈등 해결에 도움은 안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28일 오후 대구 수성구 삼성라이온즈파크를 찾아 야구 경기를 보고 있다. 2021.5.28/연합뉴스

◇“가려운 데 긁어준다”vs “편 가르는 트럼프 같다”

이준석은 왜 먹힐까. 20~30대 남성들은 “우릴 위해 목소리 내주는 정치인을 이준석 말고는 찾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20대 직장인 유모(27)씨는 “우리 또래 남자 중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이가 많은데, 이준석이 대놓고 역차별·남혐 같은 이슈를 말하니 원내에 자기 대변인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라며 “2030 여성들이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별로 없으니 류호정, 장혜영 같은 정의당 의원이나 원외 정당인 여성의당을 지지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했다. 회사원 김모(28)씨는 “이준석은 페이스북에서 ‘키배(키보드배틀)’도 뜬다. 실제로는 ‘하버드 출신 엘리트’지만 보이는 건 ‘게임 좋아하고 지하철 타고 소셜미디어 열심히 하는 형’인데, 그 형이 가려웠던 부분을 긁어주니 열광하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얄팍한 인기 영합주의”라는 비판 목소리도 거세다.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포퓰리스트처럼 전체주의 발언을 한다. 개인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20대 남성'으로 뭉뚱그려 집단화한다”며 “현재 20대 남성이 겪는 일자리 등의 문제는 자산 불평등 같은 다양한 경제·사회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것인데, 남녀 싸움으로 단정하고 남성을 자신의 세력으로 삼는다”고 지적했다. 여대생 한모(22)씨는 “특정 이슈를 남녀 간 대립으로 전선을 확대하는 모습이 마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층과 비지지층을 갈라 이들의 갈등을 이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그의 행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젊은 남성들도 있다. 직장인 유모(27)씨는 “TV 토론에서 여성 징병제 관련 얘기를 하는데 논리가 빈약해 실망했다”며 “정교한 논리적 근거 없이 2030 남성의 감정에 기대 직진하는 모습이 위험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