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다가 마주치는 사람들 반응은 다양하다. 아유, 귀여워 하며 미소 짓는 사람, 만져봐도 돼요? 하고 묻는 아이들, 몇 살이냐 간식 줘도 되냐고 묻는 개아범 개어멈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저것이 집 안에서 사람과 함께 산다는 개란 동물인가 하는 표정의 사람, 바로 옆을 지나면서도 방금 뭔 털 뭉치가 지나간 것 같은데 하는 얼굴의 사람들도 있다.

개도 사람 표정을 모두 읽는다. 그리고 그 표정에 맞춰 행동한다. 개를 개무시하는 사람에게 반갑다고 달려드는 개는 없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나한테 똑바로 뛰어오면 무섭다. 무서울 때 개는 꼬리를 말아 넣고 눈을 깔기도 하지만, 사납게 짖거나 이빨을 드러내기도 한다.

개와 함께 살려면 개를 알아야 한다. 유튜브에 어떤 아파트 단지에서 한 아저씨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야아아!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하라아아!!” 하고 소리치고, 곧이어 어디선가 개가 맹렬하게 짖는 영상이 있다. 마치 아저씨와 개가 목청 대결을 벌이는 듯한 이 영상은 무려 540만번이나 조회됐다. 아저씨가 짖는, 아니 소리치는 게 너무 특이한 나머지 음악으로 리믹스까지 됐는데, 개아범은 가끔씩 그 ‘개 짖는 소리 리믹스’ 영상을 보며 미친 듯이 웃는다.

원래 영상에서 개 짖는 소리보다 아저씨 목청이 더 크게 들리긴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나는 ‘안 나게 하라' 아저씨 편이다. 개가 짖는 데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분리 불안이 심한데 집에 혼자 남겨졌다든가, 무서운 기억이 있는 냄새나 물건을 접했다든가, 주인이 항상 하던 행동과 다른 행동을 한다든가 말이다. 짖는 개에게 짖지 마, 라고 해봐야 개는 더 크게 짖을 뿐이다.

송기숙 소설 ‘개는 왜 짖는가’에서 개는 신문기자인 주인공더러 기사를 쓰라고 나쁜 놈을 향해 짖는다. 주인공은 마지못해 기사를 쓰지만 신문사 분위기를 살핀 뒤 어차피 실리지 않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원고를 버린다. 대신 그는 술을 진탕 퍼마시고 주사를 부린다.

인간이 인간 노릇을 하지 못하면 짐승이 꾸짖는다. 성경에도 사람에게 입을 열어 따지는 나귀가 등장한다. 발람이란 자가 신의 뜻을 거역하자 천사가 나타나 발람이 탄 나귀를 가로막는다. 영문을 모르는 발람이 나귀를 세 번이나 때리니까 천사가 나귀 입을 연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세 번이나 때리냐, 너는 나를 평생 타고 다녔잖아, 내가 오늘처럼 한 적이 있냐, 하고 나귀가 호통치자 발람은 그제야 천사를 알아본다. 인간이 모자라면 개가 짖고 나귀가 말을 한다.

엊그제 산책길에서 어떤 개어멈이 풀어놓은 몰티즈가 아장아장 걷던 아이에게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아이 엄마가 깜짝 놀라 아이를 들어 올렸는데 개어멈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 호호호호! 아이 엄마가 화를 내며 따지는데도 개어멈은 계속 웃으면서 얘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는 둥 개소리를 했다. 저런 인간들 때문에 ‘개빠’라는 말이 생겨났다. 개빠들은 목줄도 안 하고 개똥도 안 치운다. 안 치운 개똥은 사실상 사람이 싸지른 똥이다.

미국에서만 매년 500만명가량이 개한테 물린다고 한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TV 프로그램은 ‘세상에 물지 않는 개는 없다’로 바꾸는 게 좋겠다. 개는 자기보다 약한 어린아이나 작은 개를 물기도 한다. 그래서 몇 년 전 12㎏짜리 개가 세 살 여자아이를 물었을 때 ‘개통령’이라는 개 훈련사조차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개는 안 문다는, 그 입 제발 다물라. 확 물어버리기 전에. <다음 주에 계속>

토동이 말하고 한현우 기자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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