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라면, 그 선거의 꽃은 돈이다.”

정치판에 돌아다니는 격언 중 하나다. 이 말대로 선거는 하나부터 열까지 돈이다. 현수막 같은 홍보물 제작부터 선거운동원 식대까지 기본만 챙겨도 수천만 원이 든다.

분기마다 수십억원씩 국고보조금을 받는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같은 거대 정당들은 이런 돈 걱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14일 공개한 4·7 재·보선 선거비용 지출 내역에 따르면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전 중소기업벤처부 장관과 국민의힘 오세훈 현 서울시장은 각각 32억여원, 28억5600여만원을 썼다고 신고했다. 정당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지출 규모다.

하지만 이런 지원 없이 맨바닥에서 선거를 치르는 군소 후보들의 실정은 다르다. 이들은 대부분 소속 정당이 없거나, 있어도 국회의원 1명 없는 원외정당인 경우가 많아 국고보조금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 역시 선거에 나서면 기탁금 5000만원을 내야 하는 것은 물론, 그와 별도로 선거운동을 하면서 수천만원을 쓰게 된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군소 후보들은 크게 자신의 돈을 들여 선거를 치른 국가혁명당 허경영(오른쪽 사진) 같은 후보와 소속 정당이나 지지자들의 후원을 받은 기본소득당 신지혜 같은 후보들로 나뉘었다. / 조선일보 DB

이번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가장 적은 돈을 쓴 후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선거 중간에 오 시장과 단일화하면서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1395만원을 썼다고 신고했다. 그다음으로 적게 쓴 신자유민주연합 배영규 후보도 2519만원을 지출했다. 하지만 거대 양당 후보 외에 그 누구도 득표율 10%를 넘지 못해 선거 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한다. 양당 체제가 굳어진 한국 선거판에서 군소 후보들이 선거철마다 이런 식으로 돈을 날리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럼에도 선거철이면 꾸준히 나오는 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돈을 조달해 선거를 치르는 것일까. <아무튼, 주말>이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섰던 군소 후보들의 선거자금 내역을 들여다봤다.

선거는 내 돈으로 치른다

지난 선거에서 보유 재산으로 72억원을 신고해 후보 중 1위였던 국가혁명당 허경영 대표는 선거 비용도 많이 썼다. 총 11억4030만7596원을 지출했다. 박 전 장관과 오 시장을 제외한, 군소 후보 중 1위였다. 특이한 건 이 많은 선거 비용 대부분을 본인 돈으로 댔다는 점이다. 허 대표는 11억1000만원가량의 본인 자산을 선거 비용으로 지출했다고 선관위에 신고했다. 차입금은 없었다. 또한 허 대표가 열광적인 지지자들이 있는 걸로 유명한데도 개인 후원회를 통한 자금 지원도 없었다. 허 대표는 선거 때 현금과 은행 예금으로 약 14억5000만원을 보유했다고 신고했다. 이 돈으로 선거 비용을 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가혁명당 관계자는 “대표님의 재산 중 많은 부분이 지지자들을 상대로 한 강연 수입이니 큰 틀에서 보면 지지자들의 후원이 있었던 것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온전히 자기 돈으로만 선거를 치른 후보도 있었다. 신자유민주연합 배영규 후보와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동희·이도엽 후보다. 셋 중 정 후보가 5252만원, 이 후보는 3784만원을 선거 비용으로 지출했다. 하지만 정 후보와 이 후보는 자신의 재산 신고액이 선거 비용 지출액보다 컸던 반면, 배 후보는 재산으로 1000만원을 신고한 게 전부였다. 그의 공탁금과 선거 비용을 합하면 약 7500만원이니 6500만원은 다른 곳에서 끌어온 셈이지만 신고 내역에 차입금 항목이 없었다. 신자유민주연합 관계자는 “후보자 본인이 지지자들로부터 차용증을 써주고 빌려온 돈으로 선거를 치른 것으로 안다”며 “사비로 선거를 치른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무소속 신지예 후보가 유튜브로 후원금 모금을 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선거는 남의 돈으로 치른다

반면 남의 돈으로만 선거를 치른 후보들도 있었다. 기본소득당 신지혜 후보, 미래당 오태양 후보와 여성의당 김진아 후보다. 오 후보의 경우, 출마 당시 재산을 0원으로 신고했기 때문에 선거에 쓸 개인 자산 자체가 없었다. 반면 김 후보는 재산이 2억4510만원이었지만, 이 돈을 선거에 쓰진 않았다. 또한 김 후보는 서울시장 후보 중 후원회를 통해 선거 비용을 조달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선거에 쓴 총 8934만원 중 96%(약 8580만원)를 후원금으로 채웠다. 김 후보의 경우 양성평등을 기치로 내세운 덕분에 여성 개인 후원자들의 후원금 참여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하게 페미니즘을 선거 슬로건 중 하나로 내세운 무소속 신지예 후보 역시 선거 비용(1억6736만원)의 88%(1억4736만원)를 후원금으로 조달했다. 김 후보에 이어 후원금 비율이 둘째로 높았다. 특히 신 후보는 개표일 당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선거 비용이 모자란다”며 지지자들로부터 후원금 모금을 독려해 11시간 만에 약 5000만원을 모금했다. 특이한 것은 선관위가 공개한 선거비용 지출내역에 신 후보가 선거 기간 중 받은 후원금 중 5100만원가량이 남았다고 나온 점이다. 신 후보는 “그 금액은 기탁금 등 선거비용 외의 정치자금으로 지출했다”며 “선거비용만 놓고보면 후원금이 남은 것 같지만, 선거비용 외의 지출까지 합하면 잔액은 1만2000여원”이라고 말했다. 선관위에서 공개하는 내용은 선거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선거비용에 한정되기 때문에 그 자료만 보면 후원금이 남은 것 같이 보이지만, 선거 과정에 드는 비용 전체를 놓고보면 후원금을 모두 썼다는 설명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선거 비용 및 정치자금 회계보고서 등을 집중 조사해 선거 비용 축소·누락, 이면계약을 통한 리베이트 수수, 정치자금 사적 및 부정 용도 지출 등 불법 행위 발견 시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