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김영석

친구는 어머니 자랑을 많이 했다. 주위 반대를 무릅쓰고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는 가업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하셨고 IMF 사태로 아버지 사업체가 무너졌을 때에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노력하셨다고 한다. 친구도 힘든 20대를 보냈다. 막 사회에 나올 때 그런 일이 생겼으니 나이트클럽 종업원, 동대문 옷 장사, 액세서리 노점상, PC방 점장 등 온갖 풍파 다 겪고 편의점 점주가 되었다.

처음에 나는 친구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메모지 한 장마저 다시 접어 사용하고, 삼시 세끼를 모두 편의점에서 해결하고, 어쩌다 식당에 가더라도 현금영수증 꼭 챙기고, 할인 혜택에 포인트 적립까지 빼먹지 않고, 옷은 계절마다 한두 벌을 소맷귀 해질 때까지 입고 또 입고, 과연 작동이 될까 싶은 휴대폰에 매번 와이파이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가장 저렴한 요금제…. 또래 가운데 그렇게 절약 정신이 투철한 친구를 만난 적 없다. 모두 어머니에게 배운 습관이라 했다. 그렇게 살뜰히 모아 상가를 분양받아 이젠 어엿한 건물주가 되었는데도 자신을 위해 소비하는 일에는 철저히 인색한 습관은 여전했다. 그러다 흔히 결혼적령기라 말하는 시기도 놓쳤다.

한번은 답답해 “그렇게 악착같이 벌어 뭐에 쓰려 그러느냐” 물었다. “서울 인근에 전원주택 하나 짓고, 그곳에 어머니 모시고, 푸른 잔디 펼쳐진 넓은 마당에 커다란 개 한 마리 키우면서 사는 것이 내 꿈이야.” 친구는 웃었다.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는 표정이었다. 어머니를 말할 때 사내의 얼굴에는 언제나 경애의 미소가 가득했다.

그렇게 어머니를 모시는 일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지 않느냐, 은행에서 대출받으면 바로 실현할 수 있는 계획 아니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랬더니 친구는 “조금 더 저축해야지” 하면서 해맑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의 ‘그날’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거냐고 만날 때마다 나는 장난하듯 물었고, 그럴 때마다 친구는 “내년쯤?”이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지그시 웃었다. 내년이 되어 다시 물으면 또 ‘내년’이 되어 있었고, 그렇게 수년이 흘렀다. 친구의 얄밉지 않은 궁상도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대”라고 친구가 말했던 날, 밤새 꺼이꺼이 울며 흔들리던 어깨가 잊히지 않는다. 치료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으니 좋아하시던 음식 실컷 드시게 하고, 차분히 가족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는 것이 의사의 조언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평온한 임종이었다고 친구는 전했다. 세상 맛있는 음식 다 사드린다고 해도 어머니는 “따뜻한 쌀밥에 된장국 한 그릇이면 돼” 하면서 다정하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말을 전하면서 친구는 장례식장 바닥에 엎드려 또 한참 흐느꼈다. 어머니 영정 앞으로 향초 연기 한 줄기가 조용히 허공을 향해 올라갔다.

우리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친구 어머니가 겹쳐 떠오른다. 나랑 어머니는 딱 스무 살 차이가 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어머니는 늙지 않을 줄 알았고, 젊은 어머니라는 사실이 내내 든든했는데, 누구든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내가 아저씨가 되는 사이 어머니는 폭삭 할머니가 되었다. 요새는 깜박깜박 잘 잊고, 앓아눕는 일도 잦아지셨다. 병원의 오진이긴 했지만 작년에는 암 진단을 받고 온 가족이 어찌나 놀랐던지…. 오로지 그때만 할 수 있는 숙제가 있다. 미루면 후회하는 약속과 다짐이 있다. 그 가운데 어머니가 계신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친구는 한동안 방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소 드나들지 않는 술집을 찾고 독한 술을 마셨다. 한번은 흠씬 취해 고개 떨구고 무언가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길래 어깨너머로 살폈더니 휴대폰 문자메시지 보관함이었다. 거기에 어머니와 주고받은 문자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친구가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는 “엄마, 아침은 드셨어요?”였고 거기에는 아직 답장이 없다. 그것을 보여주며 친구는 뚝뚝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 답장을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는 날이 불쑥 찾아올지 모른다.

며칠 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냐는 질문에 무심코 “주말이고 어버이날이고 해서 고향에 내려왔어”라고 말했다가 아차 싶었다. 잠깐 대화에 쉼표를 찍은 친구가 따뜻한 목소리로 당부했다. “계실 때 잘해드려.” 아련한 한숨이 묻어있는 독백이 이어졌다. “우리 엄마도 벌써 6주기가 되셨네.” 이젠 어머니라는 이름을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친구는 담담히 말했다.

누구든 세상을 떠나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언제나 세상 저편에 있다. 친구가 그렸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한 채도 친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조용히 남았다. 그곳에 어머니가 살고 계실 것이다.

친구는 오늘도 편의점 문을 활짝 열고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손님을 맞는다. 다시 궁상맞은 그 친구로 돌아온 지는 진즉 오래되었다. 세상이 온통 초록으로 번지는데 이번 주말에는 서울둘레길이나 함께 걷자고 꼬드겨봐야겠다. 창포원 붓꽃이 보랏빛으로 가득 피어났을 것이다. 곧 꽃창포도 노랗고 붉게 반짝이겠지. 오직 이 무렵에만 만날 수 있는 귀한 꽃. 엄마를 생각할 때 우리는 목젖이 뜨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