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돼지와 엮이는 건 무척 불쾌하고 억울한 일이다. 툭하면 개돼지로 아느냐, 개돼지로 보이느냐 하는데 자기들끼리 서로 돼지라고 욕하는 데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왜 거기 개를 끼우느냐는 말이다. 돼지는 짖지도 않고 애교도 없고 사냥도 안 하고 장애인을 안내할 줄도 모르는 짐승이다. 평생 먹다가 먹히는 게 그들의 삶이다. 성실과 애교를 겸비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족속이다.
심지어 개아범도 신문을 보다가 이것들은 완전히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구먼, 하고 혼잣말을 한다. 나는 그때마다 왈, 하고 짖지만 개아범은 손가락에 침을 묻혀 신문을 넘길 뿐이다. 개아범에 따르면 이 정권 들어 개돼지란 말이 부쩍 흔해졌다고 한다. 권력 잡은 자들이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어찌 됐든 개들의 억하심정은 깊어져만 간다.
인간들이 개돼지란 말을 쓴 역사는 무척 오래됐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 눌지왕 때 왜국에 억류된 왕의 동생을 구출해 낸 박제상이 자신을 회유하려는 왜왕에게 대꾸한다. “차라리 신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 차라리 신라의 매질을 당할지언정 왜국의 벼슬을 받지는 않겠다.” 이렇게 포효한 뒤 박제상은 화형당해 죽는다.
을사늑약 때 장지연 선생이 쓴 ‘시일야방성대곡’에도 개돼지가 등장한다.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어째 요즘 신문에서도 본 듯한 이 구절을 읽노라면 나조차 내가 누구인지 잊고 저런 개돼지 같은 놈들, 하고 송곳니를 드러내게 된다. 심지어 BTS도 “세상이 다 미쳐 돌아가네/ 우린 다 개돼지/ 화 나서 개 되지” 하고 노래했다. 이 정도니 개들이 아무리 짖어봐야 개돼지란 말이 사라지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런데 신문을 보니 개돼지와는 정반대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경찰이 최근 수사 지침서를 개정해 범죄에 희생된 동물을 ‘인간의 언어로 소통할 수 없어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는 피해자’로 규정했다고 한다. ‘범죄 신고를 접수할 때 대상이 동물이라는 이유로 경시하거나 범죄 구성 요건에 해당하는데도 반려해선 안 된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길고양이나 비둘기, 떠돌이 개에 대한 범죄가 늘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권력 맘에 안 들면 성추행 피해자도 피해 호소인이라고 하던 나라 아닌가. 내가 범죄에 당한다면 피해 호소견 대접만 해줘도 감지덕지일 텐데 선뜻 피해자로 규정한다니. 인간들은 한 입으로 이 말 했다가 저 말 하니까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는 엄마의 가르침은 역시 길이길이 남을 교훈이다.
또 개나 고양이를 물건으로 취급하던 민법을 고쳐 법의 적용 대상을 인간과 동물, 인간이 소유한 물건 세 가지로 분류하겠다고 했다. 법이 개정되면 어떤 인간이 빚을 못 갚아 법원의 강제집행을 받더라도 그가 키우던 개나 고양이는 압류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을 뒷받침한다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참으로 요지경이다. 북쪽 인간들이 탈북민 단체를 “더러운 똥개 무리”라고 불러도 찍소리 못 하고, 북한 주민 인권 운동 하는 사람을 처벌하겠다고 길길이 뛰던 자들이 느닷없이 견권·묘권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니 개가 피해자라는 둥 고양이도 가족이라는 둥 하는 말도 다 개소리일 것 같다. 나는 신문을 덮고 앞발을 길게 뻗으며 찢어지게 하품했다. <다음 주에 계속>
토동이 말하고 한현우 기자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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