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생각 중인 애들은 지금 학점 빡세게 들어놔야 하는 건가?’

‘지금 군대에 있으면 열나 억울해지는 거 아닌가?’

지난해 11월 한 서울의 한 사립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코로나 시대, 온라인으로 대학 수업이 펼쳐진 후 학점을 높게 받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면서다. 상대평가로 학점을 주던 시절에는 경쟁이 치열해 조금만 삐걱해도 학점이 수직낙하 했다. 그만큼 학점 받기가 힘들었고 스트레스도 컸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대학들은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제대로 된 평가가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상대평가를 없애고 절대평가를 적용했다. 대학가에서는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이런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친다면, 몇 년 후 펼쳐질 취업 전선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교육부가 최근 그 결과를 공개했다. 교육부 대학알리미 자료를 분석해보니, 성적을 공개한 491개 대학교(폐교 등 일부 학교는 제외)에서 2019년 전공 과목을 수강한 전체 학생(1·2학기 포함·중복 있음) 수는 모두 1150만1518명. 이 가운데 최고 학점인 ‘A+’를 받아간 학생은 전체의 약 20%인 228만7960명이었다. 그런데 한 해 뒤인 2020년에는 1173만1927명이 전공과목을 수강신청해 368만5263명(31%)이 ‘A+’를 받아갔다. 1년 새 ‘A+’를 받은 학생이 10%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다. 교양과목도 마찬가지다. 2019년에는 20%(629만여명 가운데 125만여명)가 ‘A+’를 받았는데, 2020년에는 그 비율이 33%(619만여명 가운데 206만여명)로 올랐다. 반면 ‘C’학점(전공·교양 포함)은 22.4%에서 7.8%로, ‘D’학점은 3.1%에서 1.7%로 줄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서 경영학 과목을 가르치는 K 교수는 “2019년에는 전체 학생 가운데 20% 정도만 A학점 이상을 줬지만, 작년에는 40%를 줬다”고 말했다. 대면 수업을 하면 발표도 시키고, 토론이나 짧은 퀴즈, 각종 과제를 주면 학생들 간 변별력이 생겼는데, 온라인 수업으로 사실상 시험 하나에만 의존하다 보니 평가할 방법이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K 교수는 “학생들 실력이 향상된 것은 절대 아닌데, 가르치는 범위 내에서 공부하고 시험만 보면 되니 학생들이 학점을 잘 받아나갈 수밖에 없다”며 “평소 토론 수업에서 한마디도 안 하던 학생들이 대거 A학점 이상을 받아갔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최모 교수도 “코로나 이전만 해도 A학점과 B+학점 경계선에 있는 학생들은 상대평가 정책 때문에 B+를 줄 수밖에 없어서 늘 미안하고 안타까웠는데, A학점을 늘려서 줄 수 있다 보니 그런 학생들은 대부분 A학점으로 올려줬다”고 했다. 졸업 후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서라도 학점을 올려줄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연세대 한 교수는 “절대평가가 사라지면서 다른 대학 학생들이 높은 학점을 받아가는 데 반해, 우리 학생들이 낮은 학점을 받으면 취업률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 사이 코로나 시대에 최대한 학점을 따놔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고려대 3학년인 한모씨는 학점 평균이 2019년 1학기 3.9에서 2020년 1학기 4.3으로 올랐다. 그는 “솔직히 코로나가 없었던 2019년에 100을 노력했다면, 2020년에는 60을 노력해도 학점이 아주 좋았다. 대면 수업으로 전환되기 전까지는 최대한 많은 수업을 하는 게 나중에 유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학생은 “작년에는 교수님이 수업 전부터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대학 생활도 못하고 힘들게 다니니까 학점이라도 후하게 주겠다’는 식으로 말했고, 온라인상으로 시험 감독도 제대로 안 되다 보니 학점 인플레이션이 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학점 인플레이션이 모든 학생에게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혜택을 보지 못한 학생들은 불만이 크다. 지난 4월 군에서 제대한 이모(24)씨는 “입대 전까지는 정말로 힘들게 학점을 받았는데, 제대해 보니 동기들 가운데 4.5점 만점에 4.0 이상을 맞은 친구가 수두룩하다. 나만 뒤처진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더 큰 화제다. 로스쿨 진학에는 학점이 중요한데, 학점 인플레이션 혜택을 본 지원자와 그렇지 않은 지원자가 경쟁하는 게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국대 김태기 명예교수는 “나중에 똑같은 4.0 학점을 받은 학생이라도 코로나 이전인지 이후인지에 따라 학생들이 구분하는 세상이 올 수가 있을 것 같다. 더 큰 혼란이 오기 전에 학점 평가를 정상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