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딸아이 학교에서 일 년에 네 번 떠나는 ‘야생의 놀이’ 활동을 준비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알림장을 읽어보니, 아이들이 숲속에 가서 간식도 먹고 게임도 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준비물은 배낭에 간식과 물통을 싸고, 반드시 장화를 신겨 보내라고 적혀 있습니다. 비가 오면 취소하는지 문의했더니, 한 치 앞을 모르는 날씨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비가 오더라도 바람막이 재킷에 모자가 있으니 걱정 말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숲속에 파인 진흙 구덩이에서 첨벙대는 장난을 마음껏 쳐야 하니, 장화만은 꼭 신겨 보내라는 것입니다. 아직 봄이라곤 믿을 수 없는 쌀쌀한 날씨에 당장 비가 내린대도 이상하지 않은 하늘. 제 몸만 한 배낭을 메고 진흙탕에서 뒹굴 아이를 생각하니 감기라도 걸려 오면 어쩌나 마음이 심란해졌습니다.

구름다리가 아찔하게 걸쳐져 있는 영국 런던의 놀이터. 위험해 보이지만 아이들은 차례와 안전수칙을 지켜가며 논다. /김민지 제공

처음 런던에 와서 아이의 어린이집을 결정하기 위해 ‘투어’ 했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한국만큼 격렬하진 않아도 영국 역시 좋은 교육에 대한 욕구가 대단한 나라여서, 신뢰할 만한 국가기관(Ofsted)이 해마다 학교들을 평가해 점수를 공개합니다. 최고 등급인 ‘Outstanding(뛰어남)’을 받은 학교는 입학하려는 아이들로 대기 명단이 꽉 차곤 하지요.

저희 동네에 마침 연속으로 최고 등급을 받은 어린이집이 있다 하여 어렵사리 약속을 잡아 방문한 날이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그날도 비가 왔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뜻밖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진흙탕에 맨발로 들어가 엉망이 된 채 놀고 있는 겁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아이들, 비를 맞으며 선생님과 함께 노래 부르는 아이들도 있고요. 이게 최고 평가를 연달아 받은 어린이집이라니! 위험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아이들을 선생님들은 어째서 두고 보는 것인지 의아했습니다. 원장 선생님 말에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어떠세요. 정말 사랑스럽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3년 뒤까지 저희 어린이집에 빈자리는 없답니다.”

이후 두 번째 등급인 ‘Good(좋음)’을 받은 어린이집들에 가보았습니다. 여전히 한국 어린이집처럼 정돈된 느낌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진 않아 아이를 보낼 마음이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어린이집들은 교육과정이나 시설, 교직원 평가에선 최고 점수를 받았지만 몇 년째 두 번째 등급에 머물러 있다는 거였죠. 기준이 뭘까 궁금해 평가 리포트를 찾아보니 ‘충격의 진흙탕 어린이집’이 최고 등급을 받은 이유는 ‘도전 의식 함양’ 부문이었습니다. ‘모든 교육기관은 아이들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교육은 아이들에게 마음껏 도전해 자립심을 기르도록 해줘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던 겁니다.

그러고 보니 영국의 놀이터도 도전과 모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계체조 기구들이 즐비한 놀이터, 공중에 설치돼 보호 장비를 착용해야 하는 놀이터, 지형지물을 이용한 놀이터까지. 종류도 다양하지만 놀이터에서 펼쳐지는 터프한 광경들이 더 놀랍습니다. 어른 팔도 닿지 않을 만큼 높은 봉들, 높은 흙더미에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 모래를 뒤집어쓴 채 즐거워하는 아이들…. 처음엔 아비규환 같지만, 잠시만 지켜보면 그 안에서 질서와 매너가 지켜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자기는 모래로 샤워를 할지언정 다른 아이에겐 던지지 않고, 주인 없는 삽이나 모래놀이 장난감은 순서를 지켜 나누어 가지고 놉니다. 기구를 이용할 땐 차례를 지키고 아무리 어린아이도 자기 차례가 끝나면 맨 뒤로 돌아가지요.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모두 이 규칙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안전한’ 환경에서 도전을 놀이 삼은 아이들은, 보기에도 아찔한 기구에 매달려 될 때까지 다시, 또다시 도전합니다.

1940년에 지금의 ‘도전적인’ 놀이터를 제안한 조경건축가 알렌(Majory Allen)은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올바르게 공간을 점령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아이들에겐 지루하지 않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줄 놀이터가 필요합니다.”

영국 교육의 기본은 아이를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충분히 알고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지요. 그리고 그 열쇠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도전과 실패에 노출되는 것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합니다. 그곳이 어른들은 피해가는 진흙탕일지언정 아이들은 뛰어들 수 있어야 하고, 높은 곳에 매달려 긁히거나 멍이 든다고 해도 꼭 그렇게 해봐야 한다고 이 사회는 역설합니다.

숲속에서 '야생의 놀이'를 하고 있는 4~5세 아이들. /김민지 제공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그다지 진흙투성이도 아니었고 감기에 걸려 콜록대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얼굴은 흥분해 잔뜩 상기돼 있었지요. 오늘 뭐 했냐고 묻기도 전에 오늘 해낸 일을 신이 나서 늘어놓습니다. 숲에서 나뭇가지로 토끼와 쥐들을 위한 집을 만들고 왔다고 하더군요. 매듭을 묶는 방법을 배웠다면서요. 선생님이 짧은 길과 긴 길이 있는데 어느 길로 가겠냐고 묻기에 모두가 큰 소리로 ‘더 오래 걸리는 길!’이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래서 다리가 좀 아프긴 했지만 오늘은 엄마랑 갔던 데보다 훨씬 깊은 숲속까지 들어가봤다고, 우리가 늘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하는 그곳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니 백조들이 모여 있는 엄청나게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고요. 그것은 여태 제가 보지 못한, 보여주지 못한 세계였습니다.

다리가 아플 줄 알면서도 힘을 내어 더 긴 길을 택한 것, 원래 다니던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발을 더 들여놓은 것. 오늘 자신이 배워온 것이 용기라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을까요? 설령 알지 못한다 해도 괜찮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말처럼, 용기는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것으로 아이 안에 존재하다가, 무엇인가가 아이를 겁먹이려는 시도를 할 때 당당히 고개를 들 테니까요. 땀이 잔뜩 흘러 꾀죄죄한 아이의 얼굴이 빛을 받아 빛나는 호수처럼 반짝여 보인 날이었습니다.

/김민지 유튜브 ‘만두랑’ 진행자·전 S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