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 한목숨, 무엇이 두려우랴….’ ‘남아의 끓는 피, 조국에 바쳐….’
군대에 가면 군가를 배운다. 군가 곳곳에서 ‘사나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한 ‘사나이’는 ‘한창때의 젊고 씩씩한 남자’다. 그런데 여성이 남성처럼 군에 의무 입대한다면 이 노래는 어떻게 될까. ‘여장부 한목숨’ ‘여아의 끓는 피’로 바꿔 불러야 할까.
현재 우리나라 여성은 군에 가지 않아도 된다. 가고 싶더라도 간부(부사관·장교)로만 입대할 수 있다. ‘남녀평등’과 ‘공정’이 사회 화두로 떠오르면서 상황이 변했다. 여성도 징집해서 복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해 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24만여 명이 동의했다. 물론 비용과 여러 여건을 고려하면, 여성 징집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하지만 안 된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실제 이스라엘·노르웨이처럼 여성도 원칙적으로 입대해야 하는 나라가 있다. 우리도 여성이 사병으로 복무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성 병장과 남성 일병이 함께하는 군대의 미래를 <아무튼, 주말>이 예측해봤다.
◇여성 10만여 명 입대… 좋은 보직 놓고 남녀 갈등?
병무청에 따르면 지난해 군 복무 신검을 받은 남성은 28만2167명. 이 가운데 22만8982명(81%)이 현역 판정을 받았다. 이전에 신체검사 받은 사람을 포함해 지난해에는 23만6146명이 입대했다. 여성을 이 비율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기준(추계) 우리나라 20대 인구 690만여 명 가운데 여성은 324만여 명이다. 이를 가정해 계산해 보면 여성 약 25만명이 신체검사를 받고, 이 가운데 약 20만명이 현역 입대 판정을 받는다.
물론 이는 단순 계산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처럼 여성 징병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여성 복무 기간이 남성보다 짧은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은 보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남성의 복무 기간은 32개월, 여성은 24개월이다. 현재 우리나라 병사 복무 기간이 18개월(육군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여성의 복무 기간은 1년 정도로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래도 예외는 많다. 특히 출산이 변수다. 실제 이스라엘에서도 여성이 결혼했거나, 임신했거나, 아이가 있으면 병역을 면제받는다. 이런 이유로 전체 징집 대상 여성의 40~50% 정도만 군대에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고려하면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여성 10만여 명이 입대할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보직을 놓고 남녀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현역 군인은 약 55만5000명. 이 가운데 여군은 1만3449명이다. 현재 우리 여군은 전투 등 모든 병과에서 근무할 수 있다. 국방부는 보안을 이유로 여군의 병과별 비율을 공개하지는 않지만, 힘을 쓰는 전투분야 보다는 보급·군수·인사 등 비전투 분야에 배치돼 있는 여군이 더 많다. 이스라엘도 전체 병력 35% 정도가 여성이지만 보병과 포병, 기갑 등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여군은 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주로 행정이나 통신, 항공 통제 분야 등에 투입된다. 군의 한 관계자는 “행군 같은 훈련을 하다 보면 급하게 용변을 봐야 할 경우 남군은 갓길에서 쉽게 해결하는 반면, 여군은 그러기 곤란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전투병이 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각종 게시판에는 여성이 입대할 경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구체적 보직에 대한 의견이 올라온다. 대표적으로 △CCTV 화면 등을 보면서 감시하는 감시 장비 운용병 △식량이나 탄약 등 보급품을 관리하고 수송하는 보급 수송병 △군내 다양한 서류 작업을 하는 행정병 △암호를 관리하는 암호병 △환자를 응급 처치하고 간호하는 의무병 등이 그 예다. 다만 이 가운데는 남성도 선호하는 보직이 많다. 이 때문에 “왜 여성이라고 특혜를 주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여자 병장과 남자 이등병이 연애를?
부대 내 연애 문제도 관심거리다. 2016년 여성 징병제를 도입한 노르웨이는 여성 2명에 남성 4명을 한 내무반에 배치한다. 남녀 병사가 같은 내무반에서 등을 돌린 채 옷 갈아입는 영상이 주목받았다. 유교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남녀 병사가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각종 훈련을 하거나 회의에 참석하다 보면 이래저래 마주치며 생활할 수밖에 없다.
남녀 생도가 함께 교육받는 각군 사관학교가 그런 경우다. 1997년 공군사관학교를 시작으로 여성의 사관학교 입교가 완전히 허용됐다. 초창기에는 연애가 엄격히 제한됐다. 1학년 생도 간에는 교제할 수 없고, 같은 중대 생도 간에도 사귀지 못하게 했다. 당시 육군사관학교에 다닌 한 현역 육군 영관급 장교는 “규정으로 막아도, 20대 청년의 연애 욕구가 강해서 커플이 생기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훈육요원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커플이 겉으로 큰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면 굳이 캐내서 처벌하지 않았다”고 했다. 육사는 통상 여생도(약 20명)의 절반 이상이 커플이었다고 한다.
규율이 엄격한 사관학교가 이 정도니, 남녀 병사가 함께 군 생활을 한다면 커플이 쏟아지리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 경우 지휘 계통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연애 중인 여성 병장과 남성 이등병 사이에서 지시와 명령이 제대로 먹히겠느냐는 것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법적으로 성인인 남녀의 이성 교제를 막기는 어렵지만, 군은 엄연히 지시와 명령으로 돌아가는 곳이니 여성 징집이 이뤄지면 크게 신경 써야 할 부분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사나이' 군가는 어찌 하리오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 군이 인정하는 군가는 모두 298곡이다. 이 가운데 신병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군가(육군훈련소 기준)는 총 14곡이다. 본지가 13곡(부대가 제외)을 살펴보니 ‘사나이’처럼 남성을 뜻하는 단어가 포함된 군가는 ‘육군가' ‘진짜 사나이’ ‘용사의 다짐' ‘전우' ‘진군가' ‘최후의 5분' 등 6곡이다. 여군이 많아지면 가사를 바꿔 불러야 한다. 가령 군가 ‘용사의 다짐’ 첫 구절인 ‘남아의 끓는 피’는 ‘여아의 끓는 피’로도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올해 나온 ‘육군 신군가(We 육군)’처럼 비교적 최근 만든 군가는 남성을 연상시키는 단어가 거의 없지만 과거 군가에는 남자를 의미하는 단어가 포함된 경우가 많다.
용모와 두발도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군은 여군의 차림에 대해 ‘화장할 경우 단정히 하고, 여성 군인의 머리는 군모 착용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대체로 헤어스타일은 단발이나 머리핀-망을 활용한 묶은 머리로 제한하고, 귀걸이 등은 금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대 초반 여성 병사가 대거 입대할 경우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육군은 올해 들어 여성 군인에 대한 두발·용모 규정을 완화했다. 종전에는 허용하지 않던 땋은 머리나 말총머리를 허용했고, 특정 색상에 대해선 부분 염색도 허용했다. 또 색깔이나 무늬가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매니큐어와 립스틱을 허용했다.
군 막사도 크게 변해야 한다. 국방부 규정에 따르면 병사 1인당 생활 공간(이하 행정 시설 기준)은 최소 6.3㎡(약 2평)가 돼야 한다. 특히 화장실은 남자가 대변기 1대당 18명, 소변기 1대당 18명까지만 수용하도록 설치해야 하는 데 반해, 여자 화장실은 대변기 1대당 4명까지 수용할 수 있게 지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라 막사를 건립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군 안팎에서 막사와 화장실 건립 비용 때문에 여성 징병제 실현이 어려우리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여성 전용 보급품 개발도 예측할 수 있다. 현재 남자 신병이 훈련소에 입소하면, 베레모, 전투복 등 의류 관련 42품목, 칫솔과 팬티 등 소모품 17품목을 지급한다. 여군 간부 훈련생도 대부분 같게 지급받지만, 브래지어나 팬티, 스타킹, 생리대 등 여성 용품에 대해서는 외부에서 사서 쓰도록 현금을 지급한다. 여성 입대가 현실화하면 이런 품목도 군이 직접 생산·보급하게 된다. 이 밖에 현재 각급 부대에는 베스트일레븐, 맥스큐처럼 비교적 남성이 선호하는 잡지 18종이 보급되는데, 여성 병사가 입대하면 ‘코스모폴리탄’이나 ‘보그’처럼 여성들이 좋아하는 잡지가 내무반 책꽂이에 꽂힐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