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어느 연말 우리 편의점에서는 핸드크림, 보디로션 같은 미용용품들이 갑작스레 팔리기 시작했다. 품절되자 “폼클렌저나 스킨로션이라도 없나요?” 묻는 손님들까지 줄을 이었다. 평소 진열대 한구석에 비혼족(非婚族)처럼 눌러앉아 내 가슴을 까맣게 태웠던 녀석들이 느닷없이 ‘없어 못 파는’ 인기를 누린 것이다. 왜 그랬을까? 서울 잠실 일대에만 해당하는 특급 건조주의보라도 내렸던 것일까?

/일러스트=안병현

알고 보니 이랬다. 우리 편의점 인근 어느 기업이 ‘1 임직원 1 어린이 지원 사업’을 하는데, 보육원이나 소년원에 있는 청소년과 회사 임직원을 일대일로 연결해 편지와 선물을 보내는 봉사활동이 있었다. 연말에 아이들에게 선물 보내려고, 갑작스레 몰려온 것이다.

백신은 대체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코로나19 사태가 1년 넘게 계속되는 요즘도 불가사의한 일이 있다. 전반적인 편의점 매출은 줄었는데 휴대전화 급속 충전기 판매는 늘었다. 예전엔 사흘에 하나 팔릴까 말까 하던 녀석들이 최근엔 하루 한두 개씩 팔린다. 이유를 모르겠다. 전 국민 충전 대회라도 열린 것일까? 덩달아 이어폰 판매까지 늘었다. 역시 이유를 모르겠다. 우울한 시국에 실컷 노래나 들어야겠다고 각자 이어폰이 필요하게 된 걸까? 전 국민 듣기 대회라도 열린 것일까? 충전기·이어폰 판매 증가는 재택근무와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셜록 홈스의 추리력을 발휘해 조심히 추측해 본다.

치약 칫솔 여행용 세트도 그렇다. 과거에는 휴가철 앞두고 세트류 판매가 늘곤 했는데, 코로나19 이후로는 이것도 연중 잘 팔린다. 전 국민 양치질 대회가 열린 것도 아닐 테고, 이건 ‘거리 두기’와 우선 관련 있지 않을까 싶다. 사무실에서 함께 사용하던 치약에도 거리를 두면서 서로 각자의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지내는 것에도 배경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겠지. 자기 입냄새가 스스로 괴롭기도 하겠지. 치카치카 쓱싹쓱싹, 예전보다 열심히 양치질을 하는 것이다. 물론 나만의 엉성한 추론일 따름이다.

때로 ‘저 손님이 저걸 왜 사갈까?’ 싶은 경우도 있다. 편의점에서는 얼음만 들어있는 컵을 판매한다. 거기에 커피나 음료를 부어 마시는데, 그걸 하루 12개씩 사가던 손님이 있었다. 다른 건 사지 않고 오로지 얼음컵만 샀다. 그것도 대용량, 소용량 가운데 꼭 대용량 컵으로 고른다.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얼음컵 12개 판매 금지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용량 얼음컵에 종합부동산세가 매겨진 것도 아닐 테니 우리는 그저 묵묵히 판매할 뿐. 얼음이 치명적 위험 상품인 것은 더더욱 아니니.

저녁에 맥주 사면서 참치캔을 늘 함께 구입하던 손님이 있었다. 맥주와 오징어, 땅콩, 게맛살, 크래커의 연결은 일반적이지만, 맥주와 참치캔이라니! 물론 그것도 제법 괜찮은 안줏감이다 싶지만 내 음주 상식으로는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아 어느 날은 오지랖을 발휘해 물었다. “맥주에 참치를 드시면 맛있나요?” 별 희한한 사람 다 보겠다는 듯 나를 잠깐 가볍게 쏘아보던 손님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내가 먹을 게 아니라 옆 골목 길냥이들 줄 거예요.” 아, 그렇게 깊은 뜻이!

하루 두세 개, 많을 때는 열 개가 넘는 택배를 매일 부치던 손님도 있었다. 택배 물품 크기가 손바닥보다 작아서, 도대체 저게 뭘까, 혹시 마약이나 독극물은 아닐까, 별 기괴한 상상을 다 했는데 알고 보니 메모리칩이었다. 그 손님은 컴퓨터 회사에서 애프터서비스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었다. 이 밖에도 복권 살 때마다 우유를 같이 사는 손님이 있고(그 조합은 또 뭘까?), 반짇고리가 갑자기 여러 개 팔려 나가는 날이 있으며(전국 바느질 대회라도 열린 걸까요?), 수많은 과자 가운데 양파 맛만 집중적으로 사가는 손님도 있다. 무심히 팔면 되지만 ‘왜 그럴까?’ 고개를 갸웃하는 일들이 있다.

전북 전주 어느 편의점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 손님을 구한 일이 최근 화제다. 손님이 편의점에 들어와 청테이프와 소주를 찾았는데, 얼마 전 번개탄이 없느냐고 묻고 돌아간 손님이었다. 일단 소주만 판매한 뒤 경찰에 신고해 위급한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냥 팔아도 되는 일에 ‘왜 그럴까?’ 돌아봤던 알바생의 혜안(慧眼)이 한 생명을 건진 것이다. 편의점 본사는 그를 인턴 사원으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근무 평가에 따라 정규직이 될 기회까지 준단다. 이런 건 박수! 대통령의 ‘승은’ 입은 사람들을 단박에 정규직 만들어 준 어느 공기업보다는 훨씬 현명하고 공정한 선택 아닌가.

오늘도 나는 편의점에서 한껏 추리 세계를 펼친다. 방금 바나나에 볶음김치 사간 손님은 왜 그런 걸까? 줄곧 참치마요 김밥을 즐기던 손님이 최근 제육불고기로 선택을 바꾼 이유는 뭘까? 늘 함께 오던 커플 손님은 왜 요즘 각자 따로 오는 것일까? 궁금하면 물어보는 것이 상책이지만 홀로 상상하는 재미도 즐겁다. 바나나에 김치 올려 먹으면 독특한 맛이 난다고 하던데…. 혹시? 그 커플이 최근에 혹시? 여러분도 각자의 추리를 펼쳐보시라.

/봉달호 작가·'매일 갑니다, 편의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