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PD는 "BTS 공연의 총제작비는 대외비지만 K팝 역사상 최대 규모는 확실하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2019년 6월,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노래 ‘디오니소스’의 웅장한 도입부가 흐르자 6만명의 함성이 터졌다. 그리스 로마 신전을 재현한 무대. 높이 8m의 표범이 무대 양쪽에서 몸을 일으키며 포효하면 BTS와 댄서들이 등장한다. 비틀스·마이클 잭슨·퀸·마돈나가 공연했던 웸블리 스타디움에 한국 가수가 최초로 입성한 순간이었다.

콘서트를 연출한 ‘플랜A’ 대표 김상욱(43) PD는 2013년 250석 규모였던 BTS의 데뷔 쇼케이스부터 2019년 6만석 웸블리 스타디움까지 6년여간 BTS 콘서트를 연출해왔다. 2018년 8월부터 1년 2개월 동안 진행된 ‘러브 유어셀프’와 ‘스피크 유어셀프’ 투어는 미국 뉴욕 시티필드·LA 로즈볼·런던 웸블리·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 등 세계 곳곳의 스타디움을 돌며 30개 도시에서 206만 관객을 동원했다. 투어는 아메리칸 뮤직어워드(AMA)의 ‘올해의 투어’에 선정됐고, 버라이어티지는 “그림처럼 완벽한 무대”라고 극찬했다.

김 PD는 10년간 연출한 공연 뒷이야기를 최근 ‘케이팝 시대를 항해하는 콘서트 연출기’로 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장은 2019년 5월 미국 LA 로즈볼 스타디움. ‘스피크 유어셀프’의 포문을 여는 무대였다. “워낙 이목이 쏠린 공연이었잖아요. 심장이 정말 터질 것처럼 뛰었어요. 6만명의 함성을 듣고 있으니 머리가 하얘졌어요. 어떡하지? 내가 정말 6만명한테 보여주는 공연을 만들고 있다고?”

2019년 '스피크 유어셀프' 스타디움 투어를 시작한 LA 로즈볼 공연. 오프닝 곡인 '디오니소스'에선 높이 8m 표범 풍선이 무대를 웅장하게 만든다. /하이브

◇미국 조명 디자이너 등 스태프들도 다국적

-전설적 스타들이 공연했던 웸블리 경기장에 들어선 순간 어떤 느낌이었나요.

“웸블리가 스타디움 투어의 다섯 번째 공연장이었어요. ‘오, 여기가 TV에서 보던 웸블리구나!’ 딱 10초 감탄했어요. 그러곤 ‘자 됐고, 일 시작합시다’ 그랬죠(웃음).”

-그날 공연은 순조로웠나요.

“멤버 지민씨의 솔로 곡 때 사고가 났어요. 지민씨가 지름 2m 큰 비눗방울 안에 앉아있다가,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면 비눗방울이 톡 터지면서 등장하는 장면이었죠. 비눗방울처럼 보이는 투명 우레탄 비닐을 뒤에서 확 잡아당기면 마치 터지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런데 잡아당기는 줄이 끊어지면서, 비눗방울이 ‘쉬익’ 하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지민씨 위로 찌그러지는 거예요.”

-듣기만 해도 식은땀 나는데요.

“하필 전 세계 생중계되는 날이었어요. 현장에 6만 명, 생중계로 보는 사람이 14만명. 어림잡아도 20만명이 본 거죠. 하… 진짜 죽고 싶었어요. 무대 팀이 재빨리 들어가 비닐을 걷어내고, 지민씨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나와서 끝까지 잘 마무리해줬죠.”

-연출팀이 다국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조명과 영상을 맡은 디자이너 팀이 미국에서 왔어요. 한국 디자이너가 쓰는 색이랑 미국 디자이너가 쓰는 색이 아주 미묘하게 다르거든요. 같은 분홍색을 써도 톤이 달라요. 기획사인 빅히트에선 비욘세나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미국 팝스타 콘서트 느낌을 내고 싶어 해서 미국 디자이너들을 섭외했죠.”

-장비들은 어떻게 옮기나요.

“고속도로에서 흔히 보이는 40피트(약 12m) 컨테이너가 전 세계 공통 표준이에요. 공연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들을 싣는데 그것도 전쟁입니다. 운송비를 아끼기 위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공간 낭비 없이 쌓아야 하거든요. 컨테이너를 그려놓고 장비들 사이즈를 재서 미리 시뮬레이션까지 해요. 짐 싸는 데만 2박 3일 걸리죠. 한국에서 가져가는 컨테이너만 아홉개에서 열 네개 정도 나와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 공연. /하이브

◇예술의전당 알바하며 본 연극·뮤지컬 밑거름 돼

김 PD는 2002년 한국 최초로 공연 스태프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드림팩토리스쿨’에 지원하며 공연계에 입문했다. 이후 음악 채널 ‘엠넷’의 공연사업부에서 일하며 2PM·2AM·원더걸스 등 아이돌부터 성시경·박진영까지 수많은 콘서트를 맡았다. 2010년 퇴사 후 콘서트 연출팀 플랜A를 설립해 BTS·씨앤블루·태연·규현 등의 콘서트와 팬 미팅 총연출을 맡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콘서트가 있나요?

“‘막내 오브 더 막내' 시절에 이승환씨 콘서트를 맡았는데요. 꽃가루나 종이 가루를 넣어서 펑 하고 터뜨리는 ‘에어샷’이라는 장치가 있거든요. 그런데 한번은 이승환씨가 꽃가루 대신 낙하산을 멘 군인 미니어처를 잔뜩 넣어서 터뜨리자는 거예요. 군인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그런데 인형이 무거워서 툭 떨어져 버리니까 그 인형 몸통을 일일이 반 토막 내서 무게를 줄였던 기억이 납니다.”

-공연계 막내는 별일을 다 하는군요.

“K팝 해외 투어가 겨우 걸음마를 시작하던 시절이라 안재욱 투어를 하고 온 선배들을 우러러봤었어요. 초창기다 보니 전부 주먹구구. 군인 인형을 만든다고 하면 책임자가 미리 테스트해보고 정리해서 공연장에 갖고 와야 하는데, 네 일 내 일 할 것 없이 여기 바쁘면 여기 도와주고, 저기 바쁘면 저기 도와주는 식이었죠.”

-아찔한 사고도 있었나요.

“한번은 출연 가수가 무대 위에서 하도 뛰는 바람에 공연 도중에 바닥이 삐걱거리는 거예요. 무대팀이 고치러 오기 전까지 제가 밑에 들어가서 나무 바닥을 받치고 있었죠(웃음). 그 후로 리허설마다 무대를 구석구석 다 밟아보고 뛰어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언제부터 공연을 좋아했나요.

“20대 후반 예술의전당 아르바이트하면서 공연을 엄청 많이 봤어요. 그땐 직원증이 있으면 남는 자리에서 공연을 공짜로 볼 수 있었거든요. 처음 내한한 ‘캣츠' 오리지널팀 공연도 7~8번 봤어요. 티켓 값 다 합치면 그 당시 받았던 봉급의 열 배는 될 거예요.”

-그때 본 공연이 연출에 도움이 됐나요.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게 확실히 도움이 됐죠. 공연 장르를 비교해보자면, 연극이 제일 깊은 서사가 깔렸고 콘서트는 제일 서사가 약한 장르거든요. 하지만 저는 항상 콘서트도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빅히트와도 그런 가치관이 잘 맞아서 오래 함께 일할 수 있었고요.”

-콘서트의 서사?

“콘서트 제목부터 곡의 배열, 곡과 곡 사이에 대화나 VCR까지 유기적인 연결이 필요해요. 중간에 뜬금없는 게 튀어나오면 안 되는 거죠. 20여곡을 끌고 갈 수 있는 서사가 깔린 공연을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무대 디자인이나 영상, 특수효과도 그 서사에 녹아들어야 되고요.”

BTS 뉴욕 시티필드 공연. 독일무대장치 업체에 의뢰해서 특수 제작한 무대 장치가 멤버들 뒤로 화려한 배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하이브

◇BTS 데뷔 쇼케이스부터 스타디움 투어까지 도맡아

2013년 데뷔 쇼케이스에서 BTS를 처음 만나고 2014년 2000석 규모의 첫 콘서트를 시작으로 해외 투어를 떠났다. 2014년에 태어난 큰아이가 올해 초등학교 입학하기까지 육아는 온전히 아내 몫이었다. 가족들도 BTS 팬이냐고 묻자 “애증의 관계”라며 웃었다. “길면 한두 달은 아예 한국에 못 들어오기도 하니까요. 애들한테는 아빠가 영상 통화로 만나는 존재였죠. 누가 ‘아빠는 무슨 일 하시니?’ 물어보면 ‘출장요’라고 했다더라고요.”

-BTS는 데뷔 초부터 남다른 점이 있었나요.

“준비가 잘된 친구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잘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죠. 다만 ‘지금보다 훨씬 잘되겠다’ 싶었던 때는 ‘윙즈’라는 앨범을 만들었을 때였어요. 콘서트를 준비해야 하니까 기획사에서 공개 전에 앨범을 미리 설명해줬는데 ‘대박이다’ 싶었죠.

-어땠길래요?

“소설 ‘데미안’에서 콘셉트를 가져온 앨범이었어요. 데미안이 불량한 친구를 만나 조금씩 타락하고 방황하다 또 다른 세계로 나가는 내용이잖아요. 순수한 세계에서부터 어두운 세계까지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따라 7명의 캐릭터와 노랫말을 만들었더라고요. 뮤직비디오에서도 데미안에 나오는 날개, 사과 같은 상징이 쓰였고요. 오랜 시간 전 세계 청소년의 사랑을 받았던 성장 스토리를 가져와 앨범 전반에 깔아놓았으니 잘될 수밖에 없겠다 싶었죠.”

-가장 좋아하는 멤버로 리더인 RM을 꼽으셨더군요.

“RM군의 랩과 가사를 좋아해요. 솔로곡 ‘LOVE’의 경우엔 RM 의견을 반영해서 만들었어요. 페스티벌 무대 돌아다니듯 자유롭게 하고 싶으니 특별한 장치 없어도 괜찮다더라고요. 그 말대로 스타디움 공연을 몇십 번 한 것처럼 여유롭게 걸어나오면서 관객들을 휘어잡더군요.”

-대형 투어를 마치고 나면 허무하지 않은가요.

“약간 허무할 때쯤 코로나 유행이 시작됐어요(웃음).”

-온라인 콘서트도 연출하셨는데 어땠나요.

“저는 온라인이 오프라인 공연의 대체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치 짜장면을 먹으면서 짬뽕 맛이 안 난다고 하는 격이죠.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연은 짜장면과 짬뽕만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짬뽕을 못 팔고 있지만, 코로나가 끝나기만 하면 현장의 아우라를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이 돌아오리라 믿어요.”

-K팝 공연의 시초부터 최첨단까지 달려오셨네요.

“최근 10년간 빅뱅·엑소·BTS처럼 메가 히트 가수들이 나오면서 ‘K콘서트’가 천지개벽이라 할 만큼 성장했죠. 돈과 시간만 있으면 미국 팝스타 못지않은 콘서트를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올랐다고 생각해요. 물론 시장 크기의 차이는 있죠. 미국에는 한번 투어 하면 스타디움 40개씩 도는 가수들이 열댓명 되는데, 우리는 이제 겨우 첫 팀이 나온 거니까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요?

“미국이나 유럽에서 요구하는 장비의 안전 기준이 있거든요. 한국 장비들은 미국·유럽 못지않게 성능이 좋은데 아직 안전기준까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 미국에서 안전 증서를 요구하면 그제야 부랴부랴 만들어야 하죠. BTS 같은 아티스트가 계속 나오고 공연 시장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변화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