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발(發) 방사능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13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능 오염수를 2023년부터 약 30년 동안 태평양에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 대만 등 인접 국가가 우려와 반대를 표명했다. 그린피스 등 전 세계 환경 단체들은 물론, 일본 내에서도 반발 여론이 터져나왔다. 우리 정부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방류 계획 발표 다음 날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일본을 제소하는 걸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강경 대응하는 분위기다.
여기서 질문 하나. 만약 일본 정부가 방사능 오염수를 태평양이 아니라 동해로 배출하겠다고 나섰다면 어땠을까. 우리나라는 물론, 동해를 마주하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격렬하게 반발했을 것이 자명하다. 태평양에 방류되는 후쿠시마 오염수는 곧바로 동해에 유입되진 않는다. 구로시오 해류·캘리포니아 해류 등을 타고 미국과 캐나다 연안을 거친 뒤 태평양을 크게 일주한 뒤 동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일주 기간만 해도 최소 2~3년은 걸리고, 그동안 바다에서 희석된 오염수가 동해로 유입될 땐 여느 바닷물과 다를 바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동해라면 다르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까지 곧바로 방사능 영향권에 들어갈 우려가 있다.
흥미롭게도, 불과 20년도 안 된 과거에 이런 사건이 동해 상에서 실제 일어났다. 다만 그 주체가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였다. 1993년 러시아 정부가 구(舊)소련 시절인 1966년부터 30년 가까이 울릉도 근해 등 동해 상에 막대한 양의 핵폐기물을 몰래 버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같은 해 10월 환경 단체 그린피스가 동해 상에서 러시아 선박이 핵폐기물 버리는 현장을 영상으로 촬영해 공개하면서 국제 문제로 비화했다. 한·일·러 3국은 공동으로 조사단을 꾸려 동해 상의 핵폐기물 무단 투기 실태 및 그 영향에 대해 대대적 조사를 실시했다. <아무튼, 주말>이 3국 조사단이 발표한 중간 및 최종보고서와 전문가 분석을 토대로 당시 사건과 이번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를 비교하며 그 위험성을 짚어봤다.
핵폐기물을 동해에 마구 버렸다고?
3국 조사단의 보고서 내용을 종합해보면 과거 러시아의 핵폐기물 투기는 이번 후쿠시마 방류 계획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러시아 정부가 자체 조사를 통해 밝힌 무단 투기 핵폐기물은 크게 액체와 고체 핵폐기물로 이뤄져 있었다. 액체 폐기물은 주로 핵잠수함이나 핵추진 군함 등에 탑재된 원자로를 가동할 때 쓰인 냉각수 및 잔존 액체 등이었다. 고체 폐기물 중에는 퇴역한 핵잠수함에서 해체한 원자로 2기가 포함돼 있었다. 러시아 해군은 이 원자로를 납으로 만든 금속 용기에 넣어 바다에 버렸다.
러시아가 30년 동안 버린 핵폐기물의 총 용량은 총 586조4500억베크렐(Bq). 베크렐은 방사능 물질 용량을 측정할 때 쓰는 단위로 1베크렐은 1초에 방사성 하나가 방출되는 양이란 뜻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태평양에 방류할 예정인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능 물질의 양은 860조베크렐.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사능 물질 양이 훨씬 많아 보이지만 문제는 그 안의 성분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오염수를 화학처리해서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등 강한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겠다는 계획이다. 화학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삼중수소가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이다. 한국물리학회에 따르면 삼중수소는 세슘 같은 방사성 물질과 달리 피부를 관통해 인체에 침투할 순 없다. 하지만 물 등에 함유된 삼중수소를 일정량 이상 섭취하면 인체에 해로울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100배 이상 희석해서 방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란 표현 대신 ‘처리수’란 표현을 고수하는 이유다.
반면 러시아가 동해에 버린 핵폐기물은 대부분 이런 처리를 거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자로는 납으로 밀봉하는 데 그쳤고, 다른 고체 핵폐기물은 컨테이너에 넣어서 바다에 던졌다. 액체 핵폐기물도 비슷했다. 그린피스가 포착한 영상을 보면 러시아 선박이 일반 드럼통에 담긴 액체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모습이 나온다. 당시 3국 조사단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러시아 정부가 핵폐기물이 함유한 구체적인 방사능 물질 및 종류에 관한 정보를 밝히지 않았지만 투기 형태로 보았을 때 적절한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며 “바다에 버려진 핵폐기물 대부분에 세슘, 스트론튬 등 유해한 방사성 물질이 다량 포함돼 있었을 것이라는 게 조사단 내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고 말했다.
방사능 오염수 얼마나 위험한가
핵심은 이런 무단 투기로 동해가 얼마나 오염되었는가 검증하는 일이었다. 동해는 지형상 육지로 둘러싸인 내해(內海)나 다름없어서 오염 우려가 높았다. 3국 조사단은 1994년 3월부터 1995년 9월까지 2차례에 걸친 공동 조사를 통해 동해 표층수와 해저퇴적물, 새우 등 어류까지 광범위하게 방사능 오염 정도를 측정했다. 조사엔 국제원자력개발기구(IAEA)도 참여했다.
조사 결과 러시아의 무단 투기로 인해 심각한 방사능 오염이 일어났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동해 일대에서 광범위한 표층수 및 퇴적물, 어류 샘플을 채취해 검증했지만, 다른 해역과 비교해 방사능 물질 농도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 조사단의 최종 결론이었다. 또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있어났을 때도 일본 정부가 원전 오염수 일부를 방류했지만, 인근 해역에서 방사능 오염 징후가 발견되진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과학적 논리의 핵심이 ‘희석’이라고 지적한다. 바다에 유입된 방사능 물질의 양에 비해 바닷물의 양이 워낙 많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핵폐기물을 투기하지 않는 한 인체에 유해한 수준으로 방사능 오염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주대 해양생명과학과 정석근 교수는 “과학적으로 보면 일본이 120만t의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해도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100km 정도만 흘러가면 그 농도가 1000만배 가까이 희석된다”며 “이를 수십 년에 나눠서 방류한다면 그 위험은 그만큼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제로라는 뜻은 아니다. 방사능 물질은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생물의 체내에 축적되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는 과학적으로 아직 규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지난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 모인 전문가들도 “오염수에 대한 국내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선 시·공간적으로 꾸준히 오염 우려 현장에 대한 관측이 필요하다”며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저장탱크에 담긴 오염수 전량을 탱크 하나하나 전수 조사해서 정확하게 방사능 농도를 측정한 뒤 그 정보를 주변국에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핵심은 반대가 아니라 검증
과학적으로 오염 위험이 크지 않으니 오염수 방류를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당장 일본만 해도 러시아 무단 투기가 밝혀졌을 때 이에 항의하는 최전선에 섰다. 러시아를 외교적으로 압박해 3국 공동 조사를 성사시켰다.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도 국제사회 여론을 움직여 오염 위험이 적은 핵폐기물이라도 해양 투기를 완전히 금지하는 조처를 취하도록 이끌었다.
우리 정부 역시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같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승소 여부도 장담할 수 없는 반대 조치에 매달리는 것은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IAEA 등을 통해 일본이 오염수의 화학처리를 적절히 하는지 여부 등을 검증하고 그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김지희 선임연구원은 “일본과 양자 외교 채널을 통해 정보를 제공받는 것보다 국제기구인 IAEA를 통해 정보를 제공받고, 이곳을 통해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과정을 감시하는 데 참여하는 게 일본에 훨씬 효과적인 압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