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선거운동 첫날이었던 지난달 25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에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뉴시스

‘노원 광운대역입니다. 12시 땡! 하고 게시했습니다.’ ’강서도 40장 달았습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25일 오전. 진보당 당원들의 단체 대화방에 서울 곳곳에 설치된 현수막 인증 사진이 올라왔다. 선거 비용을 아끼기 위해 당원들이 사다리까지 빌려 전날 밤부터 대기하고 있다가 직접 송명숙 후보의 현수막을 설치한 것. 오인환 진보당 서울시당위원장은 “대형 정당에선 설치 전문업체에 맡기겠지만, 우리 당은 재정이 부족하고 활동이 활발한 당원들이 많다 보니 직접 게시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했다. “공보물은 직접 열어봐야 하지만 현수막은 식사하거나 출퇴근하면서, 지나가면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이죠.”

◇출퇴근 시간에 눈도장...전략적으로 중요해

지난달 25일부터 서울 시내 곳곳에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렸다. 현수막을 게시하는 위치는 차량 이동과 유동 인구가 많은 역 주변 사거리, 교차로 횡단보도 등이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여러 번 선거를 치른 정당들은 ‘목 좋은 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한 현수막 설치업체 대표는 “캠프에서 현수막 다는 위치를 정해준다”면서 “그중에서도 눈에 잘 띄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선거운동 시작일 자정 전부터 사다리차를 대놓고 대기한다”고 했다.

여러 현수막 중에서도 시민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건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의 현수막이었다. ‘국가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습니다’ 같은 현수막 문구가 화제가 됐다. “통쾌하다” ”덕분에 한번 웃었다”는 공감부터 “보기 싫은데도 아침마다 봐야 한다”는 탄식까지 다양했다. “오늘 제일 많이 본 건 허경영 현수막” ”우리 동네엔 왜 이렇게 허경영 현수막만 많이 보이냐”는 반응도 나왔다.

4·7 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25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사거리에 서울시장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특정 후보의 현수막만 많을 수는 없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운동을 위한 현수막은 선거구 내 읍·면·동 수의 2배까지 가능하다. 서울시의 경우 425개 행정동이 있으므로 각 후보당 최대 850개의 현수막을 걸 수 있다.

허경영 후보 캠프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나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못지않게 많은 수의 현수막을 건 것은 사실이다. 오명진 국가혁명당 대표실장은 “후보의 재산도 많고 자발적 후원자도 많기 때문에 대형 정당과 비슷한 수로 현수막을 제작했다”면서 “현수막을 조금 더 길게 제작하고 배경을 빨간색으로 한 덕에 좀 더 눈에 띄었을 것”이라고 했다.

◇동별로 맞춤 공약 걸고 더 길게·더 눈에 띄게

국가혁명당처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군소 정당은 800여개 현수막을 제작할 여력이 부족하다. 여성의당 김진아 후보 캠프는 17개 현수막을 제작했다. 후보와 보좌관이 직접 차를 몰고 현수막을 찾으러 가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권보경 정책홍보팀장은 “핵심 타깃 지지층이 젊은 여성이다 보니 여성 1인 가구가 많은 관악구·구로구·은평구 위주로 설치했다”면서 “선거가 처음이라 초반엔 17개만 제작했는데 확실히 눈도장을 찍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뒤늦게 현수막 300개를 추가 주문했다”고 했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의 경우, 1·2위 후보 대신 군소 정당 후보들의 현수막들로 가득하다. 대형 정당은 종로구 주민의 표심을 잡아야 하지만, 군소 정당은 주민보단 직장인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서 홍보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도 현수막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박성민 대표는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홍보 수단은 TV토론이나 홍보물이 아닌 포스터와 현수막”이라고 했다. “절대 피해갈 수 없이 한 번씩은 보게 되기 때문이죠. 집으로 배달돼 오는 공보물은 개봉률도 높지 않고, 다 읽어보는 사람이 드뭅니다. 현수막은 지나가면서 보기 싫어도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하죠.” 박 대표는 “옛날에는 400여개 동에 동일한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뿌렸다면 요즘은 메이저 정당에선 동별로 맞춤형 공약을 걸어 눈길을 사로잡는다”고 했다.

불특정 다수가 보기 때문에 선거마다 현수막을 훼손하는 사건도 잇따른다. 선거운동 첫날부터 기본소득당 신지혜 후보의 현수막이 찢긴 채 발견되더니, 성 소수자 관련 공약이 담긴 미래당 오태양 후보의 현수막도 서울 마포구·관악구 등 곳곳에서 훼손됐다.

현수막을 비롯해 선거 벽보·공보물로 인해 엄청난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비판도 있다. 선거가 끝나면 후보 측에서 직접 현수막을 철거해야 하지만, 나 몰라라 하는 일부 후보들 때문에 구청 등 지자체에서 직접 나서기도 한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선거 철마다 현수막 관련해 민원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선거 끝나고 남은 현수막들은 구청에서 직접 수거해 폐기 처리한다”고 했다. 환경단체 자원순환연대에 따르면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3만여개, 1739톤의 폐현수막이 발생했고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선 1만2700여개의 폐현수막이 나올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