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강서구 대저1동에서 짭짤이 토마토를 재배하는 김철규(65)·김진홍(35)씨 부자. 아들 진홍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0여년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다. 이들은 “신도시 신공항 사업에 휘둘리지 않고 토마토 농사만 안정적으로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이 토마토 운명 참 기구하지 않습니까.”

부산시 강서구 대저1동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김승배(62)씨가 푸르스름한 토마토 한 개를 들어 올렸다. 그는 2년 전까지만 해도 400㎡(120평)짜리 비닐하우스 21동에서 토마토를 기르다가 5㎞가량 북쪽으로 농장을 옮겼다. 당시 50여년 짓던 농장을 갈아엎은 건 ‘신공항’과 ‘신도시’ 때문이었다. “10년 넘게 신공항을 만든다, 신도시를 만든다며 마음을 후벼 팠지요. 이곳으로 옮겨와 토마토 농사를 제대로 짓나 싶었는데, 여기도 신도시가 들어선다고 하네요. 평생 배운 게 토마토 농사밖에 없는데, 또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 일대는 김해평야에 속한다. 낙동강 하구,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삼각주’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1950년대부터 주민들은 이곳에서 토마토 농사를 지었다. 토마토 농장들 사이로 김해국제공항이 들어서 있다.

대저동 일대에 신도시가 들어서자 농장을 갈아엎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가구가 속출했다. 신도시가 개발됨으로써 대저 짭짤이토마토의 농가수, 재배면적, 생산량 등이 4년 동안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자료=부산 강서구청

그런데 이곳 토마토는 독특하다. 토마토 고유의 새콤달콤한 맛에, 바닷물의 짭조름함이 더해지면서 특유의 맛을 내기 때문이다. ‘대저 짭짤이 토마토’ ‘짭짤이 토마토’라고 이름 붙은 이유다. 짭짤이 토마토는 다른 곳에서 재배되는 토마토보다 가격이 2배 정도 비싸다. 2.5㎏에 약 2만~3만원에 팔려나간다. 2012년에는 이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특산물로 인정받아 ‘지리적 표시제(지역 특산품에 대해 해당 지역이 원산지라는 것을 표시하는 제도)’에 등록됐다. 인기가 많아지고, 수익이 올라가자 2016년에는 442개 농가가 한 해 동안 2만여 톤을 생산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폭탄'이 떨어졌다. 농장에 신도시가 들어서자 농장을 갈아엎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가구가 속출했다. 그렇게 옮겨갔더니, 또 다른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6년 김해공항이 확장된다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모든 토마토 농가가 공항으로 변할 위기에 처했지만, 정권이 바뀌자 백지화됐다. 그런데 20㎞ 떨어진 가덕도에 또 다른 신공항이 들어선다는 발표가 나오자 또다시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대저농협 산지유통센터 민병존 소장은 ‘기구한 운명에 처한 토마토’라고 했다.

◇'친환경 신도시' 불똥 맞고, 북쪽으로 옮겨가

조한국(62)씨는 40여 년째 김해공항 남쪽에 있는 대저2동 일대에서 짭짤이 토마토를 재배해왔다. 2만4000여㎡(약 7200평) 부지, 비닐하우스 32동에서 한 해 동안 약 150톤을 생산해 냈다. 그런데 2018년 이곳을 떠나 대저1동으로 옮겼다. 비닐하우스가 모두 에코델타시티(친환경 수변 신도시)라는 신도시 개발 조성지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조씨는 “지금도 비닐하우스를 철거해 떠나던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에코델타시티는 부산시가 낙후된 서부 지역을 개발하겠다며 시작됐다. 낙동강 수변구역에 첨단산업, 국제물류, 연구개발기관, 주거공간 등이 들어선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이었다. 2011년 무렵부터 얘기가 나왔는데, 환경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혀 공사가 미뤄졌다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K-water(한국수자원공사)와 부산도시공사가 함께 시행을 맡았다. 그런데 이 신도시 부지 내에 짭짤이 토마토 농지 115㏊ 정도가 포함되면서, 짭짤이 토마토에 불똥이 떨어졌다. 대저농협에 따르면 약 80개 농가가 신도시 부지 내에서 토마토를 키우고 있었는데, 건설이 시작되면서 15개 농가는 완전히 농사를 접었다. 또 45개 농가는 대저동을 떠나 김해 등 다른 지역으로 옮겨 농사를 지었다. 그 외 나머지 20개 농가 정도는 북쪽에 있는 대저1동으로 옮겨 토마토 농사를 이어갔다. 옮겨간 지역은 원래 벼농사 등을 짓던 곳이라, 이들은 땅을 사들이거나 빌려야 했다.

조씨의 경우 대저1동으로 옮겨간 뒤 수확량이 절반 정도 떨어졌다고 했다. 대저2동에 있던 만큼의 땅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도시 개발에 대한 기대로 인해 부동산에 나온 땅이 충분치 않았다. 가까스로 구한 땅 크기는 기존보다 6000㎡(1800여평) 줄어든 1만8000㎡(5400평). 비닐하우스도 32동에서 24동으로 줄여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 옮겨온 곳에는 지하수가 나오지 않아 농사를 짓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김승배씨도 “비닐하우스 한 개를 옮기려면 부직포나 각종 기기 등을 다시 설치해야 하는데, 2억원이 넘게 들었다”고 했다. 부산 강서구청에 따르면 신도시가 들어선 후 짭짤이 토마토 생산량은 2017년 2만톤에서 지난해 1만5000여톤으로 줄었다. 전체 농가 수도 같은 기간 435곳에서 320곳으로 감소했다.

부산 대저 짭짤이 토마토.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낙동강 하류 삼각주 평야 지역에서 재배된다. 이 일대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토양 내에 유기물이 많아 맛이 뛰어나다. 단맛과 신맛 뿐만 아니라 짠맛이 동시에 나기 때문에 ‘짭짤이토마토’로 불린다. 봄철인 3월~5월에 대부분 출하된다.

◇이번에는 ‘LH 신도시’ 폭탄 떨어져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또 다른 ‘폭탄'이 떨어졌다. 이들이 옮겨간 대저1동에 또 다른 신도시가 조성된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다. 정부가 지난달 이 일대에 첨단산업·연구·전시컨벤션 등이 가능한 연구개발특구와 함께 244만㎡(74만평) 부지에 1만8000가구의 아파트를 짓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약 37개 농가, 45㏊(약 13만6000평)의 짭짤이 토마토 농장이 또다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부산 강서구청의 설명이다.

문제는 더는 옮겨갈 땅이 없다는 점이다. 짭짤이 토마토는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돼 있기 때문에 대저 지역을 벗어나면 인정받지 못한다. 류태윤 대저농협 조합장은 “다른 지역에서 짭짤이 토마토 재배 방식을 써봤지만, 절대 이 맛을 흉내 내지 못했다. 대저동을 떠나면 이 토마토는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강서구청 관계자는 “신도시가 예정대로 건설되면, 짭짤이 토마토는 공항 인근 지역 190㏊ 정도만 남게 된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지역에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이 투기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부산시는 수도권발 LH 투기 의혹이 확산하자 부산시·부산 강서구청·부산도시공사 직원과 가족 등이 대저 일대 등지에 투기했는지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이곳 땅을 가진 사람 90%는 외지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2017년만 해도 3.3㎡(1평)당 30만~40만원이었던 땅값은 각종 개발이 이뤄지자 70만~80만원 선으로 뛰었다. 이마저도 더 큰 개발에 대한 기대 탓에 부동산에 나온 매물은 거의 없다고 한다. 대저1동에서 50여년 동안 토마토 농사를 해온 최자룡(62)씨는 “농사를 짓고 싶어도 개발에 대한 기대 때문에 팔겠다는 땅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공기업 직원이나 공무원들이 투기했다는 보도가 나오니 열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철규(65)씨가 부산시 강서구 대저1동에서 짭짤이 토마토를 재배하는 모습.

◇김해 신공항·가덕도 신공항 폭탄도 넘어야

폭탄의 끝은 신도시가 아니다. 신공항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남아 있다. 앞서 2016년 김해공항 확장 계획을 정부가 발표하면서 짭짤이 토마토 농장 일대는 술렁였다. 영남권 신공항 위치를 놓고 대구·경북과 부산 간 대립이 격화되자, 박근혜 정부가 두 공항을 다 짓지 않는 대신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대저동 일대는 사실상 모두 공항 관련 지역으로 덮일 운명이었다.

가덕도 신공항이 조성되면 짭짤이 토마토가 재배되는 곳까지 물류 가공을 위한 공장 등이 들어설 수도 있다는 게 부산 지역 물류 관계자들의 예상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가덕도 신공항이 완공되면 김해공항의 국제선이 옮겨갈 텐데, 그렇게 되면 공항 주변을 개발하자는 얘기가 나올 게 뻔하다. 또다시 짭짤이 토마토 농장은 갈아엎어야 할 운명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김해 신공항 방안은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다음 달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가덕도 신공항 건설법을 통과시키면서, 짭짤이 토마토 운명은 또다시 알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특히 정부·여당이 가덕도 신공항을 물류 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놓으면서, 짭짤이 토마토가 재배되는 곳까지 물류 가공을 위한 공장 등이 들어설 수도 있다는 게 부산 지역 물류 관계자들의 예상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가덕도 신공항이 완공되면 김해공항의 국제선이 옮겨갈 텐데, 그렇게 되면 공항 주변을 개발하자는 얘기가 나올 게 뻔하다. 또다시 짭짤이 토마토 농장은 갈아엎어야 할 운명에 처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