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들은 아는 부부 이야기다. 나는 부부를 안다기보다는 부인을 아는데, 부인이 남편 이야기를 곧잘 하기 때문에 남편도 아는 사이 같다고 생각이 드는 부부다. 부인은 나의 친구로, 그녀의 남편은 어쩌다 한 번 본 게 다다. 스치며 본 그는 내성적이지만 온화한 사람 같았는데 부인의 말은 달랐다. 마음에 불이 있다고 했다. 괴이하고, 또 괴이하다나?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거지로 살고 싶다거나 종탑의 종지기로 취직하고 싶다는 말을 진지하게 한다며, 부인은 내게 답답함을 호소해 오곤 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해준다. “사람이 원래 다 그렇지 뭐. 안 이상하면 사람이겠어? 그런데 특히 이상하네.”
최근에 들었던 이야기도 괴이했다. 그는 돌아오는 자기 생일에 선물로 레더호젠을 사주면 안 되겠느냐며 요청했다고 한다. 응? 나는 이 ‘레더호젠’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라면 같이 못 살아.”라고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그러고는 수습해야 하니까 “너는 내가 아니니까.”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게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무엇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는 레더호젠이 뭔지 모르겠어서 레더호젠을 검색해보았다고 한다. 어땠어? 구리던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레더호젠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친구라는 건 좀 난감하니까.
“레더호젠 때문에 이혼한 부부도 있어.”라고 나는 말했다. 그러고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단편소설 ‘레더호젠’에 대해 이야기했다. “레더호젠 때문에 이혼한 부부 이야기야.”라고. “거기도 남편이 사달라고 했대?”라고 친구가 물었고, “그런 거지.”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는 왜 사달라고 했느냐고 친구가 물었다. “거기까지는 안 나와. 부인이 그걸 사면서 남편에 대한 미움이 끓어올라. 그래서 이혼해.” 친구에게 물었다. “레더호젠을 입고 옥토버페스트에 가겠다는 거지?” 친구는 어떻게 알았느냐며 놀라워했다.
옥토버페스트란 한마디로 맥주 광신도들의 대회합이다. 성지순례인 동시에 카니발이랄까. 10월에 열리는 페스티벌이라는 뜻을 가진 것 같지만 딱히 10월도 아니고 9월부터 시작이다. 9월 셋째주 토요일부터 10월 첫째주 일요일까지, 장장 2주쯤이다. 독일 바이에른 주의 뮌헨에서 열리는 이 대회합에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지구 멸망의 날이라도 맞은 것처럼 온 세상의 맥주를 다 마셔버리겠다는 기세로, 장장 열흘 넘게 달리는 것이다. 어디서 마시는가 하면, 텐트다. 맥주 텐트. 맥주 회사들이 거대한 맥주 텐트를 설치하는데 한 텐트 당 7000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왜 이렇게 옥토버페스트와 레더호젠에 대해 알고 있는가 하면···. 잊지 못할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레더호젠으로 가득한 백화점에 간 적이 있다. 7월의 베를린에서였다. 서베를린 지역에 있는 카데베(KaDeWe) 백화점에서였는데, 왜 갔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오직, 기억나는 건 레더호젠뿐. 어림잡아 백 벌 이상의 레더호젠이 무슨 전차군단처럼 옷걸이에 걸려 있는 걸 보고 현기증이 났다. 뒷걸음질을 쳤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강렬한 순간이었다.
생각해보시길. 남성용 멜빵 반바지가 백 벌 넘게 걸려 있는 풍경을···. 저건 무슨 미학일까? 그 미학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하루키의 단편소설 ‘레더호젠’을 떠올렸다. 그리고 저 옷을 사다가 남편을 버려버리기로 한 그 부인의 심정에 격하게 공감했던 것이다.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저걸 단체로 입고 옥토버페스트에 가는 거구나… 축제는 9월부턴데 두 달 전부터 레더호젠을 장만하는구나···. 돈오(頓悟)의 순간이었달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레더호젠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보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축제 의상 중 하나다. 남자용 멜빵 반바지(성인용입니다!)이고, 맨살에 입기도 하며, 심지어 가죽이나 스웨이드로 된 재질도 있다. 성인 남자가 맨살에 스웨이드로 된 멜빵 반바지를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건, 주지훈이라도 별로다. 독일 보그에서 주지훈을 모델로 쓴다면 모르겠지만, ‘굳이 왜 레더호젠을?’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 사람들과 옥토버페스트 추종자들은 저 벌칙 의상 같은 옷을 단체로 입고 맥주를 퍼마시는 것이다. 벌칙 의상을 입은 서로의 해괴한 모습에 낄낄거리며 맥주를 마시는 거다. 레더호젠을 입고서는 고독하거나 내성적일 수 없다. 나는 그래서 친구의 남편처럼 내성적인 사람이 레더호젠을 입고 그 무리에 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친구는 말했다. “내성적이긴 하지. 술 마시기 전까지는.” 맞다, 얌전하신 그분은 술을 마시고 아파트 화단에 누워 있거나 택시 기사와 싸우고 경찰서에 가신다고 했었지.
나는 또 물었다. 코로나는? 일단 사서 고이 간직했다가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바로 뮌헨에 갈 거라고 했다고 한다. 옥토버페스트 내내 퍼마시기 위해 말이다. “그분이?” 내가 알기로 그분은 내성적이기도 하거니와 사람이 많은 곳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너무 외롭대. 사람들이 그립대. 7000명이 있는 텐트에 점으로 존재하고 싶다나?”
어지러워져 눈을 감았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지러워’라거나 ‘아, 현기증’이라고 하는 습관이 있는데, 요즘은 그 말도 하기 귀찮아 눈을 감아버린다. 한마디는 해야겠어서 했다. “사랑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