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중구 을지로3가 노가리 골목의 노포(老鋪) ‘을지OB베어’에 철거 용역 100여 명이 들이닥쳤다. 법원의 부동산 강제 집행을 위해 모인 이들은 강제 철거를 막으려는 인근 상인 등과 몸싸움을 벌이다 두 시간이 지나 결국 철수했다. 을지OB베어는 1980년 지금의 노가리 골목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한 이 동네 터줏대감이다. 2015년 서울시는 노가리 골목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고, 원조 격인 을지OB베어는 중소벤처기업부 선정 ‘백년가게’가 됐다. 그러나 지난 2018년 건물주가 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지난해 명도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면서 가게를 비워줘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장인의 가게를 물려받아 2대째 운영 중인 최수영(66) 사장은 “건물주가 ‘만선호프’가 들어온다는 이유로 계약 연장을 거부했다”면서 “임대료를 두 배로 올려줄 수 있다고 했는데도 나가라고만 한다”고 했다. 최 사장은 또 “박원순 전 시장이 가게를 찾아 ‘살리겠다’고 했는데도 시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다”면서 “말로는 백 년 가게, 상생이라 하지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의 미래 유산이 사라지고 있다. 임대료 분쟁, 경영난, 재개발 등 이유는 다양하지만 ‘사라진다’는 현상은 같다. 시는 “사유 재산 처분에 대해서는 지자체가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선정 후 5년 안에 폐업하는 가게가 속출하는데, 미래 유산 제도 자체가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노가리 골목의 '을지OB베어' 앞에서 법원의 강제 집행을 위해 모인 철거 용역과 이를 막으려는 상인들이 대치하고 있다. 노가리 골목은 2015년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됐다. /연합뉴스

◇미래 유산 선정 8년 만에 10%가 ‘등록 취소’

서울미래유산은 시가 “개발 논리에 사라지는 유·무형의 유산을 지켜나가겠다”는 취지로 2013년 도입한 정책이다. 정치 역사, 시민 생활, 문화 예술 등 5개 분야에서 유산 총 488개가 선정돼 있다. 서울시는 서울미래유산을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온 공통의 기억 또는 감성으로 미래 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백 년 후 보물’ 중 상당수는 정책이 시작된 지 8년 만에 자취를 감췄다.

1970년대 서울 일대 개발지 곳곳을 누비며 공사장 인부들에게 우동을 팔았던 영동 스낵카는 9개월째 경기 김포시의 한 자동차 공장에 방치돼 있다. 버스를 개조해 만든 간이 식당인 영동 스낵카는 30여년 동안 자리 잡았던 강남구 한티역 인근 부지가 재개발에 들어서면서 지난해 4월 폐업했다. 사장 박윤규(63)씨는 지난해 6월 2200만원을 들여 외형 복원 작업을 끝냈지만, 마땅한 주차 공간이 없어 버스를 되찾아오지 못했다. 박씨는 “서울의 개발 역사를 간직한 버스인 만큼 시에 위탁 관리를 부탁했지만,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면서 “생활사 박물관 등을 직접 돌면서 기증 의사를 밝혔는데 전시 공간이 부족하다며 거절당했다”고 했다. 영동스낵카는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같은 해 미래 유산으로 선정된 관악구의 ‘콜럼버스 스낵카’는 지정 2년 만인 2017년 신림 경전철 공사로 퇴거 통보를 받았다. 이후 장사를 재개할 부지를 찾지 못한 버스는 폐차장으로 향했고, 단돈 40만원에 고철 신세가 됐다.

1955년 종로5가에 개업한 이래 6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서울고무상사’도 마찬가지 신세다. 미래유산에 선정된 지 얼마 안 돼 건물주와의 임대료 분쟁으로 장사를 접었다. 시는 서울고무상사를 ‘종로5가 일대의 시대적 모습을 보여주는 장소’라고 설명했지만, 그 자리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섰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8년간 폐업, 멸실, 문화재 지정 등으로 등록 취소된 미래 유산은 52개에 달한다. 선정된 미래 유산의 10% 정도다.


◇“미래 유산 선정돼도 혜택 없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책방이었던 종로구 ‘대오서점’은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지 3년여 만에 등록 취소를 요청했다. “별다른 혜택도 없는데 관리만 어려워졌다”는 이유였다. 가게가 미래유산에 선정돼도 특별한 혜택이나 지원은 없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상호를 올려주고, 홍보물을 제작해주는 정도다. 이렇다 보니 업주들은 “미래유산에 선정돼봤자 ‘지자체 돈 받는다’는 오해만 산다”고 하소연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7년부터 등록 취소된 미래유산 30건 중 23%(7건)는 사업자가 자발적으로 취소를 요청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비(市費)로 민간 사업체를 지원하는 것이 부적절하단 지적이 있어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면서 “미래유산의 수리가 필요할 때는 심사를 거쳐 2000만원을 지원한다”고 했다. 배재대 건축학과 김종헌 교수는 “미래유산에 등록된 노포들은 오랜 시간을 견뎌냈다는 자체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가게들”이라며 “이런 사료들을 보존하려는 시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