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3시간 반이 걸리던, 때로는 피곤이나 짜증으로 하루를 시작하거나 끝냈던 출퇴근이 30여 발짝 앞으로 변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내가 뉴욕시 다운타운, 911 기념관 앞에 자리 잡고 있는 회사 빌딩에서 마지막으로 근무한 것은 작년 3월 6일 금요일이었다. 심해질 것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에서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을 결정한 회사는 우리 자산운용팀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다음 주부터, 그러니까 작년 3월 9일 월요일부터 두 그룹이 재택근무와 회사 근무를 번갈아 함으로써, 회사 근무를 하는 직원의 수를 50%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일주일도 되지 않아 꼭 출근해야 하는 직원을 제외한 전 직원이 재택근무를 하는 쪽으로 결정을 바꾸었다. 그래서 전 직원 중 약 96%가 아직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아무리 빨라도 내가 사무실로 돌아가는 것은 올해 여름이나 초가을이 될 듯하다.

그렇다면 매우 짧아진 출퇴근 시간을 직원들은 어떻게 쓰고 있을까? 하루 일을 시작하고 끝내는 시간이 그리 달라지지 않은 사람도 많고, 출퇴근이라는 콘셉트가 흐려져서 집에서 일을 하는 건지, 직장에서 사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동료들도 있다. 나는 투자나 경제를 주제로 하는 잡지의 오디오 버전(예를 들어 주간지 ‘더 이코노미스트’)나 팟캐스트를 듣는 것으로 여유 시간을 쓰곤 한다. 이 중 내가 가장 관심 있게 듣는 프로그램은 월 스트리트 저널과 김렛(Gimlet) 미디어가 공동 제작하는 더 저널(The Journal)이라는 팟캐스트다. 돈, 사업, 그리고 권력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이 프로그램에서 나는 자주 새로운 것들을 배운다. 가끔은 삶에 도움이 되는 지혜도 얻는다.

지난주, 더 저널은 세계에서 제일 큰 영화관 체인 회사인 AMC Entertainment와 그 회사의 대표이사 애덤 애런(Aron)에 대해 다루었다. 팟캐스트를 통해 어떻게 개미 투자자들이 이 회사를 살리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는지 알게 되었다. 지난 1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건, 그러니까 게임스톱의 어마어마한 주가 상승으로 세상에 알려진 개미 투자자들의 혁명적 반격에 관련된 기업 중 하나가 바로 AMC였다. 코로나 때문에 영화관들이 오랫동안 문을 닫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것이다. 큰 손실을 보게 된 AMC의 주식이 공매도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안전했을 리 없었고, 따라서 게임스톱 주가를 150배 올린 월가 일반 투자자들의 힘이 AMC 주가에도 날개를 달아주었다. 1월 마지막 주, AMC의 주식이 3배나 뛴 것이다.

나는 영화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화면을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취향이 아내나 아이들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랑 이야기나 뻔한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 집에 나뿐이다. 아들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즐기고, 아내와 딸은 추리 영화나 로맨스 코미디를 좋아한다. 그래도 코로나 전에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봤다. 선택권은 거의 자녀들의 차지였다. 아빠가 보자는 영화를 본 것은 약 6년 동안 두 번뿐이었으니까.

우리가 사는 뉴저지 지역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결코 싸지 않다. 표 값과 스낵 값을 합치면 한 명당 25달러에서 30달러가 든다. 콜라가 6달러라니? ‘왜 우리가 이런 돈을 내며 영화를 보나’ 하는 의문을 제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스타워즈나 마블 시리즈부터 가끔 한국에서 오는 영화들(예를 들어 ‘부산행’)까지 봐야 할 영화는 계속 나온다. 영화는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가족 나들이이기도 하다. 아내와 딸이 좋아하는 쇼핑이나 인기 있는 식당에서의 외식보다 저렴하기도 하고. 결국 나는 영화의 경제적 힘을 경험을 토대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비싼데도 계속 올라가는 영화표 가격을 받아들이는 소비자가 나뿐이었을까.

지난 11개월 동안 AMC는 생존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야 했다. 매달 약 1억 달러의 현금 손실을 보면서, 기업의 현금 여유분이 6주에서 12주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을 다섯 번이나 겪었다고 했다. 채권 시장에서 작년에 약 10억달러를 조달할 수 있었으나, 그것이 지속될 거란 보장은 없었다. 채권자들은 파산을 권했다. 어떻게 보면 회사를 구하기 위해, 또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파산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주주들은 투자액의 100%를 잃었겠지만.

애덤 애런은 주주들과 직원들도 다 같이 살 수 있는 길을 고집했고, 아주 드문 자금 조달 방법인 ‘At the Market offering’을 선택했다. ATM이라고 불리는 이 전략은 기업이 새로 발행한 주식을 현재 증시에서 거래되는 가격으로 파는 방법을 말한다. 코로나 타격으로 주가가 매우 낮았지만, 그는 싼값에 AMC 주식을 파는 것이 기업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엔 파산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긴 AMC의 주식을 살 투자자들이 없을 거라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하지만 첫 ATM에서 AMC는 9900만달러를 얻을 수 있었고, 몇 번 더 같은 방법으로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그런데 올해 1월, 개미 투자자들이 AMC를 지원하고 나섰다. 갑자기 뛴 주가 덕에 AMC는 6주 만에 약 10억달러를 불리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파산의 유혹을 거부하고 ATM이라는 시스템을 준비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성공에 행운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행운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서 안 적은 없었다. 끈기를 갖고 포기하지 않는 것, 주위 사람들의 조언이나 참견에 흔들리지 않는 것, 다른 이들이 쓰지 않는 방법을 과감하게 쓰는 것, 최고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는 것. 이런 노력을 한 이에게 찾아온 행운을 보면서, 행운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

※위 칼럼의 투자 관련 내용은 신순규 애널리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BBH의 입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