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나는 강아지다. 이름은 아직 없다. 혹자는 표절이라 하겠으나 나는 이 문장을 생각해 낸 뒤에 나쓰메 소세키라는 소설가를 알았다. 그리고 그의 후배인 이노우에 히사시가 ‘나는 강아지로소이다’라는 헌정 소설을 쓴 것도 알게 됐다. 하여튼 인간들은 항상 누가 옳고 그른지 가리려는 못된 습성이 있다. 내가 저작권 위반으로 소송을 당한다면 그들은 개를 상대로 법정 투쟁을 시도한 최초의 인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느긋하다.

나는 절대로 아무 데나 똥을 싸지 않는다. 인간들은 우리를 금이야 옥이야 떠받들다가도 배변 현장을 뒤늦게 발견하면 악귀로 돌변한다. 나는 전견미답(前犬未踏)의 깨끗한 곳, 기왕이면 보들보들한 곳을 골라 하강식을 거행한다. 그렇게 고르다 보니 카펫이나 침대 위가 되는 것뿐이다. 그놈의 고양이들! 반려동물계의 숙적인 그들이 인간을 그렇게 세뇌시켰다. 이미 싼 모래 위에 또 싸는 주제에 인간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

태어나서 엄마와는 딱 두 달간 같이 살았다. 아빠는 본 적도 없다. 아빠에 대해 물으면 엄마는 나중에 커서 알게 될 거라고만 말했다. 엄마는 우리 형제들에게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다. 평생 해줄 말을 두 달 안에 모두 해주겠다는 듯이 말이다. 엄마는 우리가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개는 각자 떨어져 인간과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며 인간이 어떤 동물인지 아주 자세히 설명해줬다.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 말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슬퍼하지 말고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른 채 두 달이 지나자 나와 동생들은 엄마와 헤어졌다. 우리가 도착한 곳엔 우리 또래 강아지들이 작은 유리방을 한 칸씩 차지하고 있었다.

동생들은 이곳에 온 지 사나흘 만에 주인을 만나 떠났다. 나한테도 인간들이 여럿 왔었는데 그들은 나를 본체만체하고 다른 강아지들한테 갔다. 옆방 푸들까지 주인을 만나 떠나는 걸 보며 나는 하마터면 가지지 못한 것에 슬퍼할 뻔했다.

어느 날 열 살도 넘은 치와와가 왔다. 그는 한쪽 눈에 백내장을 앓고 있는 유기견이었다. 간혹 유기견을 데려가는 인간들이 있다고 해서 왔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얘야, 인간들을 절대로 믿지 마라. 결코 길들여지지 말고 네가 인간을 길들여야 해.” 그가 다른 유기견들이 모여있는 데로 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감사해했다. 최소한 나는 아직 버려지지 않았다.

2주가 되던 날, 어떤 아저씨가 내 앞에 와서 한참 이야기를 했다. 그가 “비숑 치고는 좀 못생긴 편이네요”라고 하기에 나는 “이봐요!”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런데 입 밖으로 나온 소리는 “월!”이었다. 아저씨는 빙긋 웃었다. 잠시 후 나는 작은 가방에 실려 아저씨 차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가만있자, 너네 형이 토리니까… 너는 토리 동생이네, 토동이. 토동아아.” 나는 강아지다. 이름은 토동이다. <다음 주에 계속>

토동이 말하고 한현우 기자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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