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있는 IT 개발자 교육 학원 ‘코드스테이츠’는 올해 초 인공지능(AI) 개발 관련 강좌를 개설했다. 무려 1200여 명이 신청했다. 강사가 실습을 지도하고,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수강생 한도는 60여 명 수준. 1140여 명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코드스테이츠 김인기 대표는 “일부 인기 강좌는 돈을 아무리 준다고 해도,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강사가 부족해 다 받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저녁, 서울 강남에 있는 IT 교육기관 코드스테이츠에서 소프트웨어 강사 김홍식씨가 20여 명에게 온라인 강의를 하는 모습. 직장인을 포함한 200여 명이 수강을 신청했지만, 여건상 20여 명만 뽑혔다.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취업 시장이 사상 최악 수준으로 얼어붙었지만, 한편에서는 구인난(求人難)에 허덕이는 곳도 있다. 바로 정보기술(IT) 분야다. 대기업·중소기업 할 것 없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웹사이트를 만들고, 인공지능(AI) 분야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개발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인공지능(AI) 관련 업무를 하던 상무가 쿠팡으로 옮겨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덕분일까. IT 개발자가 되겠다며 학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청년 구직자뿐 아니라 기존에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IT 개발자가 되겠다며 나서고 있다.

서울에 있는 한 중견기업에서 건축 설계 업무를 하는 3년 차 직장인 박모(28)씨는 지난 9일 퇴근한 뒤, 저녁 8시에 자신의 방에 있는 컴퓨터를 켜고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에 접속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언어인 ‘자바스크립트’ 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이날 수업에는 20여 명이 참여했다. 현재 직장을 다니면서도 IT 개발자가 되겠다는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작년 12월부터 매주 두 차례, 저녁 7~8시부터 2~3시간씩 이어진다. 박씨는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는데, IT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작년 12월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원래 관심도 있었고, 최근 IT 개발자에 대한 수요가 커진다는 얘기도 있어서 결심했다”며 “올해 연말이면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퇴사하고 IT 개발자로 완전히 변신할 예정”이라고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부의 직업훈련 지원을 받아 정보통신 분야 교육훈련기관에서 강의를 들은 사람 수는 3만8500여 명이다. 2019년(3만3900여 명)보다 4600여 명이 늘었다. 황정우(28)씨는 채용 전문회사(헤드헌터)에서 IT 개발자를 구하는 회사와 IT 개발자를 연결해주는 업무 등을 하다가 자신이 직접 IT 개발자가 되겠다며 뛰어들었다. 작년 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선릉에 있는 IT 학원에 등록해 하루 14시간씩 공부한다. 그는 “IT 개발자 채용 업무를 하다 보니 내가 직접 뛰어들어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문모(29)씨는 구청에서 건축 관련 민원을 처리하는 공무원이었는데, 지난해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클라우드개발팀으로 직장을 옮겼다. 공무원으로 일하던 시절 우아한형제들이 개설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을 공부했다. 문씨는 “일을 해보니 꽤 재미도 있고, 비전도 있다고 생각돼 공무원을 관뒀다”고 했다.

그러나 IT 교육기관 가운데는 지원자를 다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 11월 IT 교육기관 ‘엘리스’는 50여 명의 수강생을 모집하려고 공고를 냈는데, 450여 명이 지원했다. 이 회사에는 30여 명의 강사가 활동하는데, 일부는 삼성전자나 네이버, 카카오 등에서 일하는 현직 IT 개발자여서 강의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재원 엘리스 대표는 “IT 개발자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전문 지식과 현장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수강생들을 가르칠 만한 자격이 되는 강사가 부족해 지원자 모두를 수용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IT 개발자 부족 현상은 당분간 계속돼 기회가 많겠지만, 무작정 뛰어드는 것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코드스테이츠 김인기 대표는 “높은 연봉을 받으려면 비교적 오랜기간 경험을 쌓고, 깊이 있는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며 “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가야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10년 차 IT 개발자 임모(37)씨는 “이 일은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좌절하지 않고 끈기있게 달라붙어 해결하는 사람이 잘하는 경우가 많다. 몇 년간 고생을 해 실력을 쌓아야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