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슬로(Maslow)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누구나 다섯 가지 욕구를 지닌 채 태어난다고 한다. 가장 기초적인 욕구가 ‘생리적 욕구’라면, 그 다음은 ‘안전 욕구’를 추구한다. 이것이 어느 정도 만족되면 ‘사랑과 소속 욕구’를, 이어서 ‘존경 욕구’를 지나 마지막으로 ‘자아실현 욕구’를 순차적으로 만족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중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존경 욕구에 해당한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어쩌면 인간의 존경 욕구를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주목받고 인정받으면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스트롯2’ 결승전에 진출한 양지은, 홍지윤, 김다현, 김태연, 김의영, 은가은, 별사랑은 이미 존경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한 사람들이다. 그토록 많은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최종 7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결승전 1라운드인 ‘신곡 미션’에서 그들이 보여준 자신감은 대단했다. 신곡이라 조심스럽고 어색할 수 있을 텐데도 자신감 넘치는 소리와 몸짓으로 멋진 무대를 보여줬다.
그런데 결승전에서 우리 눈을 사로잡은 무대가 있었으니, 바로 ‘미스터트롯’ TOP6(임영웅, 영탁, 이찬원,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의 축하 무대였다. 1년 전 같은 자리에서 긴장과 떨림 속에 경연을 펼친 그들이니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이들은 ‘날 보러 와요’(원곡 방미)와 ‘나야 나’(원곡 남진)를 불렀다. 흰색 정장을 맞춰 입고 율동하며 노래하는 여섯 남자의 모습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고 보니, ‘나야 나’라는 곡이야말로 인간의 존경 욕구를 가장 잘 드러낸 노래가 아닌가 싶다. 양인자가 작사하고 차태일이 작곡한 ‘나야 나’는 2008년 남진이 불러 히트했다. 노랫말에서 허세 내지 객기를 부리는 화자(話者)를 만난다. 바람이 부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듯” 그저 지나치기 서운한 화자가 목롯집에 들어선다. “나 한 잔 자네 한 잔 권커니” 술을 주고받던 화자는 말한다. “한번은 내 세상도 오겠지.” 비록 지금 내 모양은 추레하기 그지없으나 언젠가 한번은 내 세상이 올 수도 있으리란 희망과 기대의 언술이다. 술에 얼큰히 취한 화자는 계속해서 객기를 부린다. “아자, 내가 뭐 어때서, 나 건들지 마, 운명아 비켜라, 이 몸께서 행차하신다, 때로는 깃털처럼 휘날리며 때로는 먼지처럼 밟히며, 아자 하루를 살아냈네.”
허세 또는 객기가 넘치는 화자를 우리는 이미 남진의 또 다른 노래에서 만난 적이 있다. 비록 대중의 인기를 얻지 못하면서 조용히 사라지긴 했으나, 남진의 데뷔곡인 ‘서울 푸레이(플레이) 보이’(문여송 작사, 한동훈 작곡, 1965년)가 그것이다. “나는 미친 척하지만 서울 푸레이 보이, 냉수마찰 목욕하고 비누 냄새 풍기면은 로켓 타고 달나란들 못 갈까, 나는야 서울 푸레이 보이”라고 외치는 2절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나야 나’나 ‘서울 푸레이 보이’에서 만난 그 사람을 1930년대 대중가요에서도 만날 수 있다. 비록 결은 조금 다르지만, 김다인이 작사하고 김송규(김해송)가 작곡해 김해송이 노래한 ‘개고기주사’(1938년) 속 화자가 그다. 일종의 코믹송에 해당하는 ‘만요’인 ‘개고기주사’ 속 화자는 가진 것은 없으나 제 멋에 겨워 사는 남자다. “떨어진 중절모자에 빵꾸(구멍)난 당꼬바지”를 입은 노래 속 화자는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여름에 동복 입고 겨울에 하복 입고 옆으로 걸어가도 내 멋”이라고 말하는 객기의 소유자다. 심지어 “안경을 팔에 쓰고 냉수에 초쳐 먹고 해 뜨면 우산 써도 내 멋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댁더러 밥 달랬소, 아, 댁더러 옷 달랬소, 쓰디쓴 막걸리나마 권하여 보았건디, 이래 봬도 종로에서는 개고기주사, 나 몰라 개고기주사를, 뭐야 이건”이라고 한술 더 뜨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개고기주사’의 역사도 오래되었다. ‘중종실록’에 따르면, 1534년 참봉(현재 9급)이었던 이팽수가 ‘승정원 주서(정7품)’에 올랐는데, 그가 당시의 실력가인 김안로(1481~1537)에게 개고기를 뇌물로 바쳐 승진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개고기를 뜻하는 ‘가장’을 넣어 그를 ‘가장주서(家獐注書)’라 불렀고, 이후에 ‘개고기주사’가 되었다. 그러니 노래 속 ‘개고기주사’는 애초에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
객기든 허세든 ‘개고기주사’에서 ‘나야 나’에 이르기까지 노래 속 화자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객기와 허세를 부리는 모습에 혀를 쯧쯧 차다가도 괜스레 마음이 짠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지 만용일지라도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자신감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더라도 나 자신만은 나를 인정하고 다독이며 위로해줘도 좋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때로 위축되고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면 거울 향해 크게 외쳐줘도 좋으리라. “아자! 괜찮아. 나 정도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