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발간된 ‘샘터’ 12월호를 읽다가 울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아빠가 쓴 아들 이야기 때문입니다.
앞을 못 보는 아빠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들은 말도 많고 웃음도 많은 아이로 자랍니다. 그런데 여섯 살 무렵부터 과민한 행동을 보입니다. 바닷가에 갈 때면 더욱 예민해집니다. 아빠가 물 쪽으로 걸어가기만 해도 기겁하며 뛰어와 아빠 손을 잡아당깁니다. 앞을 못 보는 아빠가 파도에 휩쓸릴까 걱정하는 것 같아 아빠는 안심을 시킵니다. “아빠 수영 엄청 잘해. 동메달도 땄어.” 그러자 아들이 울먹입니다. “아빠가 물에 빠져 정신을 잃은 꿈을 꾸었어.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아빠는 너무 무거웠어. 나는 아빠를 끌어낼 수가 없었어.” 그 말에 아빠의 가슴이 무너집니다. “그랬구나. 아직 어린 네가 아빠의 안전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며 살아왔구나.”
오늘 ‘월가에서 온 편지’ 첫 회를 써주신 신순규(54)씨 이야기입니다. 아홉 살에 시력을 잃었지만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MIT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박사를 수료한 뒤 25년 넘게 미국 월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증권 애널리스트입니다. 시각장애인 최초로 공인재무분석사(CFA) 자격증을 취득했고,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이란 에세이집도 펴냈습니다.
장애를 이긴 불굴의 의지도 대단하지만, 가정을 일궈 남편이자 부모로 살며 그가 깨닫는 일상의 통찰이 더 감명 깊습니다. 앞의 ‘샘터' 이야기는 다음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걱정하는 이유로 불행해지거나, 부모가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것들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세계는 부모나 환경, 현실을 초월한다…. 결국 나는 부모라는 입장에서 쓸데없는 근심, 괜한 죄책감, 이유 없이 미안한 마음만 앞세우며 살아온 건 아닐까. 부모는 아이들이 보다 넓고 깊게 경험하며 자기 앞의 삶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인생의 친구 같은 역할만 해도 좋을 것이다.’
세계적인 동화작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오릅니다. “나는 교육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에 반대한다. 어른들의 꾸중과 칭찬을 통해 아이들은 깨닫지 않는다. 경험과 고통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자란다.” 아이들의 세계를 존중하고 믿어주며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란 뜻일까요?
새봄 연재를 시작한 신순규 애널리스트의 글에서 월가 소식과 더불어 ‘눈 감으면 더 잘 보이는 감동’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