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에 사는 장수진(32)씨는 집에 작은 노래방을 차렸다. 빔프로젝터로 방 벽면에 가사를 띄운 다음, 마이크를 앰프에 연결해 하루에 30분씩 노래를 부른다. 앰프에는 노래방 분위기를 내주는 미러볼(조명)도 달려 있다. 장씨가 ‘홈 노래방’을 꾸미는 데 쓴 돈은 약 30만원. 주로 장씨가 노래를 부르지만 11세, 8세 두 아이도 단골이라고 했다. 장씨는 “원래 육아 스트레스를 코인 노래방에서 풀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노래방에 가기 불안해져 아예 집에 노래방을 만들었다”면서 “매일 노래를 부를 수 있어 돈이 아깝지 않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로 노래방이 문을 닫으면서 집에 노래방을 차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저렴한 블루투스 마이크를 휴대전화에 연결해 노래를 부르는 이들부터 아예 업소용 반주기와 조명을 집에 들여놓는 이들까지 다양하다.
◇ 관련 앱 이용자 8개월새 3배 늘어
직장인 강선주(28)씨도 최근 블루투스 마이크와 조명을 이용해 간이 노래방을 만들었다. 강씨가 이용하는 서비스는 SM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노래방 애플리케이션 ‘에브리싱’. 월 3300원을 내면 IPTV로 음원 반주를 들으며 노래할 수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TV에 마이크를 연결해 노래를 부른다는 강씨는 “점수를 볼 수 없는 걸 제외하면 노래방과 별 차이가 없는 데다, 노래하는 장면을 찍어 다른 이용자들과 공유할 수도 있다”면서 “소음만 조심하면 굳이 노래방에 안 가도 될 정도”라고 했다.
홈 노래방에 관한 관심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온라인 쇼핑몰 지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올해 2월 21일까지 마이크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88% 늘었다. 또 노래방 조명 및 미러볼은 18%, 노래방 책은 31% 늘었고 방음 및 방진재는 160% 늘었다.
관련 업계도 호황이다. 2019년 출시된 블록체인 노래방 서비스 ‘썸씽’은 최근 다운로드 6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20만 명 수준이던 사용자가 8개월 만에 3배 늘었다. TJ미디어가 노래 반주를 올리는 유튜브 채널 ‘TJ노래방’의 구독자는 최근 100만 명을 넘어섰다. 윤종신의 ‘좋니’ 등 인기 가요는 조회 수가 600만 회에 달한다.
◇ ‘홈 노래방’ 활황에 노래방은 울상
반면 노래방 점주들은 울상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동주 의원이 한국신용데이터의 자료를 바탕으로 코로나 전후 매출 변화를 분석한 결과, 2020년 노래연습장 매출은 2019년에 비해 41.1% 줄었다. 정부의 행정명령을 받은 14개 업종 중 유흥업소(42.1%)에 이어 둘째로 매출 타격이 컸다. 노래방을 `고위험시설`로 분류한 방역 지침 영향으로 지난해 코인 노래방은 100일 넘게, 일반 노래방도 두 달여간 영업이 정지됐다.
상가정보연구소가 행정안전부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폐업한 노래연습장은 2137곳으로 2007년 이후 14년 만에 최다였다. 온라인의 중고 장터에는 노래방 반주기나 앰프, 조명 등을 헐값에 처분한다는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코로나 전만 하더라도 앰프와 반주기, 모니터 세트가 개당 100만원 넘는 가격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이전의 5분의 1에 불과한 20만원 내외에 형성돼 있다. 일부 업주는 고정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낡은 반주기를 ‘무료 나눔’하기도 한다.
세종시에 사는 정민서(31)씨는 얼마 전 폐업한 노래방 점주로부터 노래방 기기와 앰프를 무상으로 받아 집에 설치했다. 음원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아 2017년 이후 노래는 없지만, 정씨는 “노래방에 가지 않고도 노래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홈 노래방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노래를 부를 수 있고, 랜선을 통해 모르는 이들과 경쟁할 수도 있다”면서 “코로나가 끝나도 기성 노래방에 대한 수요가 회복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