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는 전모(55)씨는 지난 설날 여섯 살 손자에게 세뱃돈 대신 삼성전자 주식 2주를 선물했다. 전씨는 지난해부터 손자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어 생일이나 명절 등 기념일마다 주식을 사주고 있다. “장난감이나 옷은 한철 지나면 의미가 없어지잖아요. 꼬박꼬박 주식으로 모아주면 나중에 아이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수익률 오르는 걸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전씨뿐 아니다. 지난 설날 이후 맘카페 등에는 ‘세뱃돈 받은 걸로 아이들 주식 통장 만들었다’는 인증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전 국민 주식 열풍이 세뱃돈 풍경도 바꿔 놓은 셈이다.
◇미성년자 주식계좌수 역대 최고
직장인 이소은(37)씨는 최근 8세 아들의 세뱃돈을 주식으로 바꿔주기 위해 증권사를 방문했다. 이씨는 “원래는 아이 이름의 청약 통장에 넣어두었는데 수익률도 미미하고, 집을 사는 건 너무 먼 일같이 느껴져 주식 계좌를 만들어주기로 했다”며 “젊은 부모들뿐 아니라 손주 계좌 만들어주러 온 조부모도 많아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실제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신규 개설된 미성년자 주식 계좌는 47만5399개로 2015년부터 5년간 신규 계좌 개설 건수(32만건)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키움증권에서는 지난 1월에만 3만8000여개의 미성년자 주식 계좌가 새로 만들어졌다. 역대 최고치다. 1년 전 같은 기간(2549개)의 15배에 달한다.
미성년자 계좌 개설은 가족관계증명서 등 필수 서류를 갖춘 뒤 직접 증권사를 방문하면 할 수 있다. 물론 조부모도 가능하다. 이씨는 “예전에는 주식을 도박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최근 주식 관련 서적 등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며 “아이가 커서도 망하지 않을 회사의 우량주를 사서 묻어둘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 1월 교보문고에서는 주식 투자서가 베스트셀러 사상 첫 종합 1위를 하기도 했다.
최근 부동산과 주식 열풍으로 ‘벼락거지’ 등의 세태를 겪은 일부 젊은 부모들은 일찌감치 아이의 재테크 감각을 키우기 위해 주식 계좌를 만들기도 한다. ‘돈 걱정하지 말고 공부만 잘하라’는 베이비붐 세대 부모들과 달리, 이들은 자녀가 소액이라도 직접 금융투자를 하면서 돈에 대해 배우길 원한다. 직장인 서모(44)씨는 “학창 시절 내내 모범생으로 살면서 중견 기업에 취직했지만, 최근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돈 번 지인들을 보면서 박탈감을 느꼈다”며 “내 아이만큼은 돈에 대해 제대로 알기를 원해 주식 계좌를 만들어줬다”고 했다.
◇세뱃돈, 세금은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세뱃돈으로 자녀에게 주식을 사주는 경우 세금은 어떻게 될까. 법무법인 원 곽준영 조세전문변호사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53조에 따라 직계존속은 미성년자 자녀에게 10년 내 2000만원까지 증여재산공제가 가능하고, 세뱃돈은 같은 법 제46조에 따라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범위에서 비과세 증여재산으로 인정된다”면서 “세뱃돈까지 합쳐서 2000만원을 넘어도 그 세뱃돈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 내라면 비과세 대상이다. 다만 세뱃돈이라는 명목하에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큰 금액을 받아 자산 증식에 활용하였다면 증여세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몇십만원의 세뱃돈을 받는 정도는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범위에 들어 비과세되지만, 거액의 세뱃돈을 반복적으로 받는 경우는 이를 넘어서기 때문에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 첫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 고용부 장관 후보자 지명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별다른 소득이 없는 딸이 2억원 상당의 재산을 모은 것과 관련해 “명절에 200만~300만원씩 세뱃돈을 받았다”고 해 논란을 빚었다. 김 후보자는 뒤늦게 1454만원의 증여세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