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나 국악 좋아하네?”
9인조 국악 밴드 ‘악단광칠’의 노래 ‘영정거리’ 공연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영상 조회 수는 113만회에 달하고, 이 댓글에 공감한 사람만 2000명이 넘었다. 2500여 댓글 대부분은 10~20대 청년들이 단 것이다.
원곡인 ‘영정거리’는 황해도에서 내려오는 전통 굿의 하나. 악단광칠은 여기에 록 음악을 연상시키는 리듬과 사운드를 접목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작년 유튜브 조회 수만 4000만회를 돌파하며 전 세계적 인기를 끈 퓨전 국악 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가 떠오르지만, 두 팀은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도 많다. 이날치가 대중에게 좀 더 익숙한 판소리를 서양 악기인 베이스 기타와 드럼으로 만든 리듬 위에 얹는 방식이라면, 악단광칠은 대금·아쟁·가야금 같은 전통악기에 생소한 전통 굿만으로 마치 서양 록 같은 국악을 들려준다.
악단광칠, 이날치뿐 아니다. 수십만, 수백만 명의 이목을 잡아끄는 국악 그룹들이 단지 퓨전이란 말로 아우를 수 없을 만큼 다양해지고 있다. 태평소·해금·거문고를 바탕으로 강렬한 록 사운드를 들려주는 밴드 ‘잠비나이’나 재즈와 팝을 국악과 융합시키는 밴드 ‘상자루’, ‘국악 아이돌’로 불리는 소리꾼 김준수처럼 타 분야 대중음악인들과 활발한 협업을 통해 국악의 외연을 넓히는 시도가 크게 늘고 있다. 무대도 다양하다. ‘여우락’ 같은 국악 축제, 국내외 대형 록 페스티벌은 물론, TV조선 ‘미스트롯’이나 KBS ‘불후의 명곡’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중과 만나는 중이다. ‘국악은 지금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황병기부터 이날치밴드까지
국악의 현대화 노력은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신(新)국악’. 근대화와 함께 밀려들어 온 서양 음악의 화음이나 악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국악 작품을 창작하려는 흐름이었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 신국악 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 황병기(1936~2018) 명인이다. 1963년 당시 27세였던 황병기가 작곡한 ‘숲’은 가야금 창작곡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1978년 창단한 김덕수 사물놀이패는 축제형 야외놀이였던 풍물놀이를, 객석에서 감상하는 실내악으로 발전시키는 도전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음악평론가 박성서씨는 “황병기뿐 아니라 이강덕, 황의종 등 다양한 국악인들이 국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며 “이들이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독창적인 국악을 만들려고 애쓴 정신이 후배들에게 이어지며 지금의 국악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했다.
국악 진화의 또 다른 분기점은 1985년 벼락같이 찾아왔다. 그해 6월 강원도 용평리조트에서 열린 MBC 청소년음악제에 20대 국악인 5명이 ‘슬기둥’이란 이름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피리, 대금 등 전통악기와 기타와 신시사이저 등 서양 악기가 어우러진 파격적인 국악을 들려줬다. 라디오로 생중계된 뒤 전국에서 편지와 전화가 쇄도했다. 당시 무대에서 민요 ‘쑥대머리’를 불렀던 추계예술대 강호중 교수는 “당시는 한복만 입고 무대에 서도 사람들이 채널을 돌릴 정도로 국악이 지루하단 인식이 지배적인 시대였다”며 “우리가 그런 파격적인 국악을 들려주니 호응도 컸지만 우리를 가르쳤던 은사님이 불러서 야단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슬기둥은 강 교수와 이준호 KBS 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등 창단 멤버들에 이어 원일, 허윤정 등 젊은 국악인들이 뒤를 이으며 재즈나 록과 융합한 실험적인 국악을 선보였다. 대표곡 ‘산도깨비’는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됐다.
인디를 넘어 K팝의 세계로
1990년대 들어 주류 대중음악이 댄스음악과 K팝으로 재편될 무렵, 국악은 물밑에서 자생한 또 다른 한국 대중음악의 물줄기와 만났다. 국악인들은 이른바 ‘인디’ 음악으로 분류되는 세계로 뛰어들었다. 슬기둥의 젊은 피였던 국악고 동기생 원일·강은일·유경화·허윤정 등이 이 시기 국악의 진화를 주도했다. 원일이 백현진·장영규와 함께 만든 ‘어어부 프로젝트’ 1집 ‘손익분기점’은 국악과 현대 음악이 어지럽게 섞인, 시대를 앞선 괴작이었다. 강은일·유경화·허윤정이 결성한 트리오 ‘상상’은 국악으로도 재즈 같은 즉흥 연주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홍대 인디 음악계에서 주목받았던 ‘아마도이자람밴드’를 이끈 소리꾼 이자람이나 가야금으로 완벽한 포크 음악의 세계를 들려준 정민아가 뒤를 이었다.
국악이 K팝과 영영 이별한 건 아니다. 2010년대 들어 새롭게 나타난 국악인들의 음악을 한 가지 키워드로 묶으면 ‘보는 음악’이다. 유튜브 시대를 만나 칼군무와 패션을 앞세운 K팝이 폭발했듯, 국악 역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요소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소리꾼 이희문과 추다혜, 신승태와 어어부 프로젝트의 장영규 등이 뭉친 밴드 ‘씽씽’이 이런 흐름을 대표한 팀이다. 씽씽은 국악의 흥에 팝 음악의 그루브를 완벽하게 섞은 음악이 전부가 아니었다. 한복을 벗어던지고 여장이나 빨간 머리 가발 등 파격적 의상을 입고 기이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미국 공영방송 NPR의 유명 음악 프로에 출연한 씽씽의 공연 영상은 조회 수가 600만회. 외국 팬들은 이들의 비주얼에 주목하며 “새로운(new wave) K팝”이라며 호응했다. 씽씽 이후 등장한 이날치, 추다혜차지스, 이희문과 허송세월, 악단광칠 등 대부분의 국악 그룹은 춤이나 의상 등 보이는 요소까지 챙기는 게 트렌드다. 이날치를 프로듀싱한 장영규는 “우리의 목표는 춤출 수 있는 판소리를 만들자는 것이었다”며 “막춤 같지만 정교한 앰비규어스의 춤과 판소리 같지만 새롭게 들리는 이날치의 음악이 시너지를 냈다”고 말했다.
K팝처럼 흥겹고 화려한 국악에 1020 세대가 열광했다. 전통 국악을 거의 접해본 적 없는 이들 세대는 선입견 없이 순수하게 음악만으로 판단했다. 이날치 등의 음악에 “국악이 아니라 그냥 좋은 팝 음악”이란 식의 반응이 많은 이유다. 게다가 복고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1020 세대는 국악을 ‘힙’한 음악으로 받아들였다. 유튜브에서 이들은 “기타도 우리 민족이었어” “조선의 재즈 클럽에 온 걸 환영하오” “문체부는 이날치 다음엔 이 팀도 데려가라”는 식의 댓글 놀이를 즐긴다.
1020 세대가 열광하는 ‘힙’한 음악
새 국악과 K팝의 공통점은 또 있다. 해외에서도 주목받는다는 점, 20대 초중반의 젊고 실력 있는 음악인들이 주축이란 점이다. K팝의 등뼈인 아이돌 가수와 국악인의 양성 시스템도 닮았다. 아이돌 가수들이 10대 초반부터 소속사 연습생으로 들어가 수년간 집중적 훈련을 받는 것처럼, 국악인들 역시 이르면 초등학생 때부터 교육을 받는다. 이날치의 멤버 4명 모두 국악고·서울국악예고를 나와 서울대 국악과를 거쳤다. ‘씽씽’의 핵심 멤버였던 이희문은 고주랑 명창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소리를 배웠다. ‘국악 소녀’로 유명한 송소희는 만 10세에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창부타령을 불러 스타덤에 올랐고, 미스트롯 시즌1에서 우승했던 송가인은 광주예고 국악과 출신이다.
아이돌 연습생들이 보컬, 춤, 신체 단련까지 전문 트레이너의 교육을 받는 것도 인간문화재나 명인 아래서 철저한 도제식 교육을 받는 국악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악단광칠의 보컬 방초롱은 “아이돌 연습생 중 가수로 데뷔하는 건 소수여서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다”며 “국악인들 역시 고교 및 대학 입시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수년간 엄청난 연습량과 심리적 압박을 이겨내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지금 국악의 변화를 주도하는 20~30대 국악인들은 성장 과정에서 K팝을 자연스럽게 듣고 자란 세대”라며 “국악의 탄탄한 기본기가 있으니 그 위에 자신들의 취향대로 여러 시도를 하면서도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