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안병현

‘구워 드시면 안 돼요!’ 가격표 옆에 호들갑스러운 경고 문구를 붙여 놓는다. 이걸 끝내 구워 드실 손님이야 없겠지만 관심 좀 끌어보겠다는 거다. 삼겹살 모양과 똑같은 젤리가 나왔다. 손님들이 신기하다고 자꾸 눌러보고 둘러본다. 그 옆에 있는젤리 위에는 ‘짜장면이랑 함께 드시면 곤란합니다!’ 친절한 안내문을 내건다. 단무지젤리. 노란 빛깔이 단무지랑 똑같지만 새콤달콤 파인애플 맛이 난다. 짜장면에 반찬 삼아 먹는다고 별일이야 없겠으나 굳이 권하고 싶진 않다.

말랑말랑 모양을 이루기 쉬워 그런지 젤리는 특이한 제품이 많다. 거봉젤리가 있고 바나나, 망고, 딸기, 복숭아, 온갖 과일 모양 젤리가 다 있다. 앙증맞은 마카롱젤리, 커피콩 모양으로 생긴 젤리가 있고, 손바닥만 한 상자에 들어간 밀감젤리도 있다. 지구 모양 젤리는 아이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누리며 지구에 없어 못 팔 정도였고, UFO젤리, 피자젤리, 스파게티젤리, 계란프라이젤리도 있다. 지렁이, 곤충, 콜라병 모양으로 생긴 젤리는 이제 고전에 가깝다. 여기까진 그래도 양반. 잘한다 잘한다 박수 치면 꼭 선을 넘는 녀석들이 있더라. 닭발젤리, 눈알젤리, 이빨젤리가 줄지어 나오는가 싶더니 급기야 황갈색 대변(大便) 모양 젤리까지 등장했다. 하, 뭐 하자는 건가.

편의점엔 특이한 제품들이 많다. 똑같이 생겼는데 원래와 다른 것들이 있다. 밀가루 브랜드 ‘곰표’를 기억하시는지? 그 이름 딴 곰표 맥주가 있다. 밀맥주란 점을 강조하기 위한 조합이라는 건 이해하는데 뒤이어 구두약 브랜드 ‘말표’ 이름을 건 흑맥주가 나왔다. 맥주에서 그윽한(?) 가죽 향이 느껴지는 것 같다. 말표 구두약 잔뜩 발라 지문이 닳도록 고참들 군화 닦아주던 그 시절 새벽 풍경이 겹쳐 떠오른다. 그런 구두약과 맥주의 조합이라니…. 이 밖에도 미원 맛소금 포장지와 똑같이 생긴 맛소금 팝콘이 있고, 유동 골뱅이 캔 모양이랑 똑같이 생긴 골뱅이 맥주, 시멘트 브랜드 ‘천마표’를 그려 넣은 팝콘이 뒤를 잇는다. 시멘트와 팝콘…. 하, 이건 또 뭐 하자는 건가.

아이스크림 냉동고에도 재밌는 녀석들이 삐죽 얼굴을 내민다. 초당두부 아이스크림에서는 순두부 맛이 나고, 식혜를 그대로 얼린 하드바를 먹다 보면 혀끝으로 밥알이 구른다. 아침햇살바, 초록매실바, 봉봉바, 쌕쌕바, 연양갱바, 빼빼로바, 버터링콘…. 추억의 모든 것을 다 얼릴 기세다. 이쯤 되면 숙취 해소 아이스크림은 없나 싶겠지만, 있다. 이름하여 ‘견뎌바’. 시국에 비추어 보자면, 여기서 뭘 더 어떻게 견디라는 건가? 말이 나왔으니 이름 자체가 ‘해장커피’인 편의점 커피가 있고, 초코우유로 숙취를 해결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상품도 나온 적 있다. ‘헛개로 깨–초코’. 최근에는 제주에서 나는 원료로 엄선해 만들었다는 숙취 해소 음료가 등장했는데, 이걸 마셨더니 천지연 폭포처럼 정신이 확 깨수꽈(깨셨습니까)?

라면 진열대 쪽으로 가보자. 명함 독특한 녀석들이 여기 더 많다. ‘돈벌라면’이 있고, ‘인생라면' ‘부자될라면' ‘배터질라면'이 있다. 장난이 아니라 진짜 이름이 이렇다. 자동차 보험 회사와 협업해 만든 ‘내차보험 만기라면’도 있다. 돈벌라면 뚜껑을 열면 해외주식 분말수프, 국내주식 건더기수프, 펀드 별첨수프가 나온다. 하, 디테일이 꼼꼼하구나. 젓가락은 공매도 제한 젓가락, 용기 안쪽 물 붓는 선에는 상한가와 하한가를 그려 놓지 그랬을까? 그러고 보니 국회의사당 앞에서 ‘당선될라면’ 팔면 잘 팔릴 텐데. 노량진 학원가에서 ‘합격할라면’ 팔아도 잘 팔릴 텐데. 주가오를라면, 월급오를라면, 매출쑥쑥할라면, 성적오를라면, 연애잘될라면, 코로나물러날라면, 세상바꿀라면…. 갖은 희망 그러모아 수백 가지 라면은 만들 수 있겠다. 할수만있다麵(면).

세상을 멈춘 역병 탓에 일상이 무료해 그런지 요즘 편의점엔 유독 기발한 상품이 쏟아진다. 오래됐다고 다 낡은 것은 아니고 새로 나왔다고 모두 신선한 것도 아니지만, 가짜가 진짜를 우롱하고 낡은 것이 모양만 바꿔 새것인 양 으스대는 세상에서 진짜와 새것의 의미를 돌아보곤 한다. 편의점에서 파는 상품이야 재미로 그러는 것이고 점주와 손님에게 쏠쏠한 이익과 별미라도 가져다준다지만 쓸모없는 복제품과 돌려막기 재탕들이 오늘도 시장(市長) 후보 이름으로 오르내리는 정치 뉴스를 들을 때면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라는 노랫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정세랑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주인공 은영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걸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죽은 자의 영혼이 젤리로 나타나고, 사람들 욕망과 감정 또한 끈적한 젤리 모양으로 세상을 떠도는 것이 보인다. 안은영은 비비탄 총과 플라스틱 장난감 칼을 들고 그런 젤리들을 물리치며 활약한다. 다정한 사람이 손 잡아주면 퇴마력도 상승한다.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긴가 하겠지만, 우린 가끔 그런 상상을 하며 즐거워한다. 우리에겐 물론 세상을 젤리로 보는 능력이 없고, 비비탄 총과 무지개 칼 또한 수중에 없으니, 이번 주말엔 편의점에서 ‘선 넘은’ 젤리 녀석들을 구입해 질겅질겅 씹으며 노래나 흥얼거리는 것이 어떨까? 으아아, 테~스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