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 의원은 금배지를 단 적이 없다고 했다. 외양보다는 실력, 치장보다는 실용을 중시하겠다는 무언의 메시지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촬영용 옷을 몇 벌 준비해야 하나요? 저희 의원님, 옷이 몇 벌 없으셔서….” 인터뷰 섭외 전화를 받고 보좌관이 옷 걱정을 했다. 평소 모습이 궁금하니 자연스럽게 나오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며칠 뒤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국민의힘 윤희숙(50·서울 서초갑) 의원은 헐렁한 옷에 ‘할머니 신발’이라고 하는 검정 컴포트 슈즈 차림이었다. “옷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잘 입어서 예뻐진다면 보람 있을 텐데, 제가 그럴 미모는 안 되잖아요?” 가차 없는 ‘셀프 디스’. 자신감이 묻어났다. “일하기 편한 옷이 최고죠. 새벽에 ‘추리닝’ 차림으로 출근했다가 바꿔 입을 때도 많은걸요.” 금배지는 단 적도 없다. 공식 석상에선 검정, 회색 조끼 두 벌로 돌려 막는다. “몸매 가리고 정장 분위기 낼 수 있는 제 나름의 술수랍니다. 하하!”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시원하게 웃었다.

윤 의원은 요즘 정치권에서 떠오르는 기대주 중 하나.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출신 경제 전문가로 21대 국회에 처음 입성해 맹활약 중이다. 연설 두 건이 무명의 초선을 단숨에 스타로 만드는 지렛대가 됐다. 지난 7월 ‘임대차 3법’ 강행 처리 과정에서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5분짜리 연설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 11~12일엔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12시간 47분)을 세워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서울 시장 후보설도 나왔다. 고성 난무하는 국회에서 모처럼 핏대 세우지 않고 품격 보여주는 실력파란 평가를 받는 그를 만났다.

임차인 연설,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으로 무명 초선에서 스타가 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윤희숙식 실용주의'의 상징 조끼를 입고 국회 의사당 앞에 앉았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독한 책벌레… 말과 글은 나의 힘

의원회관 9층, 윤 의원 사무실에 들어서자 커다란 회의 테이블, 담요를 걸친 투박한 3인용 가죽 소파가 보였다. “일할 땐 무조건 큰 테이블이 좋아요. 이거 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소파는 잠깐 눈 붙이기용이에요. 꼭두새벽에 나오다 보니 수면이 좀 부족해요.”

—대체 몇 시에 출근하시길래.

“새벽 6시 반이면 사무실에 도착해요. 보좌진은 오전 9시에 출근하고요. 혼자 있는 두 시간 반이 정말 소중해요. 생각이 고이는 시간이에요. 출근길에 들은 라디오 뉴스에서 얘기하고 싶은 사안이 있으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요. 책도 읽고요.”

—애서가(愛書家)인가요?

“1~2주에 한 번은 서점에 가 온종일 책을 봐요. 책 고르는 과정이 꼭 소개팅 같아요. 누가 추천해줘 펼쳤는데 재미없어 실망하기도 하고, 몇 페이지 읽고 이걸 계속 보느냐 마느냐 고민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책을 발견할 때도 있지요.”

—요즘도 가나요?

“그럼요. 지난주엔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어요. 코로나 때문에 의자를 치워서 두 시간 정도 서서 읽다가 왔어요.”

—사람들이 알아볼 것 같은데.

“10년 넘은 패딩 껴입고 허름하게 다니니 아무도 못 알아봐요(웃음). 특히 주말은 읽고 싶은 책에 푹 빠지는 시간이에요. 저한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내가 보고 싶은 책’과 ‘일로 봐야 하는 책’의 조화를 의미해요.”

—‘인생 책’이 뭔가요.

“신경숙의 자전적 소설 ‘외딴 방’. 산업화 시대 여공들의 치열한 삶을 다뤘죠. 경제학자들은 각종 지표를 들이밀며 성장이 얼마나 이뤄졌고 분배가 어떻게 됐느니 거창하게 말하지만, 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주어진 삶을 견뎌낼 뿐이라는 걸 생생하게 보여줘요. 거시 지표에 가린 사람들의 안간힘을 느낄 수 있는 수작이죠. 한국말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 김승옥의 ‘무진기행’도 좋아해요.” 요즘은 앤디 보인튼이 쓴 ‘The Idea Hunter(아이디어 사냥꾼)’ 원서를 보고 있다고 했다.

—연설로 스타가 됐어요. 조선일보 칼럼과 페이스북 글 등으로 글 잘 쓰는 경제 전문가로도 알려졌죠. 언어 감도가 높은 편인가요?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말’과 ‘글’이라고 믿어요. 사람 마음에 얼마나 와 닿는 언어를 구사하느냐 하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정치인의 언어는 더 중요하다고 봐요. 학자에서 정치인으로 인생 경로를 바꾼 이유이기도 해요.”

—정치와 언어의 상관관계가 뭔가요?

“대학(서울대 경제학과) 졸업하고 유학(미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갔다 와 KDI 들어가기까지 관성적으로 살았어요. 마흔에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나란 사람이 읽고 쓰고 말하면서 생각을 전파하고 다른 사람 변화시키는 일을 무척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말과 글로 타인을 변화시키는 연장선에 있는 일이 정치였어요.”

—페북 글 대부분이 정책 대안을 담아 분석적으로 길게 쓴 글이던데요.

“‘왜 그렇게 길게 쓰느냐. 나중에 결국 책잡힌다'고 조언하는 동료 의원도 있어요. 그런데 교수로 안락한 인생을 살다가 정치인이 된 결정적 계기가 지금 우리 사회에 퍼지는 생각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 것이에요.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담론을 만들고 싶었어요. 현재로선 가장 효과적 창구가 페북 글쓰기예요. 그때그때 현안이 있으면 가감 없이 제 의견을 써요. 거기에 누군가의 생각이 달리고 그 생각이 또 누군가의 생각을 자극하죠. 그러면서 담론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교수보다 정치인이 담론을 촉발하는 역할에 훨씬 효과적이더군요.”

미국 컬럼비아대 유학 시절 모습
미국 컬럼비아대 유학 시절 모습

◇하우스메이트는 서른 살 조카

—인간 윤희숙이 궁금합니다. 결혼은 하셨나요?

“싱글이에요. 언니가 지방에 있어 서울에서 직장 생활 하는 서른 살 조카랑 둘이 살아요. 방배동에 있는 ‘나 홀로 아파트(법적으로 아파트로 분류되는 6층짜리 빌라)’에 세 들어 있어요.”

—비혼주의자인가요?

“전혀요. 지금은 제 삶이 자기 완결적이라…. 필요하면 더 적극적으로 짝을 찾아 나서겠죠. 조카가 요즘 부지런히 소개팅을 하고 다녀 살짝 걱정되긴 해요. 나가면 외로워지려나.”

—책 말고 다른 여가 생활은 없나요?

“작년부터 2년 동안 영국 록 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 멤버 마크 노플러에게 푹 빠졌어요. 나이 오십에 뒤늦게 아이돌이 생긴 행복이란! 마크 노플러가 1983년 밥 딜런하고 작업한 걸 알게 된 뒤론 관심이 밥 딜런에게까지 옮아갔어요. ‘덕후(하나에 푹 빠져 파고드는 사람을 가리키는 속어)’ 기질 농후하죠?”

—살림도 하나요?

“금요일 퇴근 때 동네 수퍼에 들러 채소 몇 가지 사 와 찌개를 한 솥 끓여요. 그걸로 일주일 내내 아침을 때우죠. 물 좀 부어 데워 먹고 또 먹고. 김치·된장·순두부찌개를 한 주씩 돌려요. 하루는 조카랑 청소하고 쓰레기 분리 배출 하는 날이고.”

게임 회사에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일하는 조카는 20~30대 민심을 들여다보는 바로미터다.

—조카를 통해 본 젊은 세대는 어떻던가요.

“정치 전반엔 관심이 없는데 아파트 공급처럼 삶과 직결되는 문제엔 관심이 무척 많아요. 우리 세대는 정치를 관념적으로 생각했는데, 이 세대는 훨씬 현실적으로 봐요. 관념적인 철학은 정치가가 머릿속에 가지고 있어야 하지 그걸 꺼내 사람들에게 주입하려 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수포자(수학 포기자)’ 언니 얘기를 꺼내 공교육 문제를 짚은 글이 화제였어요. 가정 환경은 어땠나요?

“딸 아들 딸 딸. 1남 3녀 중 셋째예요. 아들 하나 더 낳으려 했는데 연달아 딸이 나온 거죠. 부모님은 전형적인 개발 세대예요. 아버지는 부산, 어머니는 경남 김해 출신. 결혼해 숟가락 두 개만 들고 일자리 찾아 서울로 올라와 단칸방에서 시작하셨어요. 아버지는 월급쟁이 하다 자영업을 하셨고요.”

중랑구에서 쭉 살다가 중고등학교는 잠실에서 보냈다. “부모님이 세 살 터울 오빠를 강남 8학군 고등학교에 진학시키려고 잠실로 이사하셨어요. 덩달아 저도 거기서 학교(정신여중, 영동여고)를 다녔어요.”

80대 부모님은 둘째 딸이 정치인이 되고 바빠졌다. “엄마는 매일 유튜브 뒤져 저랑 관련된 영상을 보내주시느라 바빠요. 딸이 정치하면서 인생의 무료함은 사라졌는데 걱정이 많아지셨죠.”

—빠른 70년생이죠?

“재수 89학번이에요. 586에 가깝죠. 어쩌면 우리는 학교 때 배워야 했던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불행한 세대예요.”

대학교 2학년 때 일화를 꺼냈다. “필수 과목인 경제 통계 시험 때였어요. 데모 쫓아다니느라 글렀다 싶어 저는 철회했는데 대부분 대리 시험을 쳤어요. 40여 명이 징계를 받았죠. 시험을 대신 쳐줬다가 무기정학 받은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중 지금 외국 명문대 교수인 친구들도 있는데, 그 친구들이 징계 풀려고 반성문 쓰고 어찌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당시엔 독재 정권이라는 거악(巨惡)에 맞서 싸우는데 이게 대수냐는 분위기였어요. 룰을 성실하게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기본을 학교 때 못 배웠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뒤늦게 우리가 편향적이었고, 성실히 자기 삶을 꾸려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제대로 경제활동을 안 하고 주변부만 왔다 갔다 하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이들이 주로 정치권에 와 있어요.”

—운동권이었나요?

“확신이 없어 데모에 기웃기웃하는 젊은 날을 보냈다고 생각하는데, 남들은 운동권으로 분류했어요. KDI에서 저를 채용할 때 운동 세게 해 편향적인 사람일까 봐 걱정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어요. 같은 당 김웅 의원을 보니 왠지 낯이 익다 싶더군요. 데모할 때 깃발 들고 다니던 비쩍 마른 옆 과 학생이었어요. 김웅은 정치과, 저는 경제과. 같은 사회대 소속이었어요.” 두 사람은 ‘숙아’ ‘웅아’ 부르는 동갑내기 절친 동료다.

지난 11~12일 국회 필리버스터에서 12시간 47분 최장 기록을 세웠을 때. /뉴시스

◇화장실도 못 가는 철의 여인?

—5분짜리 ‘임차인 연설’로 정치인 윤희숙 이름 석 자가 대중의 뇌리에 또렷이 박혔습니다.

“주말 동안 갑자기 영상이 확 퍼지는데 신기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막연하게 느끼는 분노와 불안을 명징한 언어로 대변해주는 것, 이 또한 정치라는 걸.”

—연설 이후 집주인 반응이 궁금합니다.

“감히 반응을 살피지 못했어요. 민망해서 나가라고 못하시는 거 아닐까요(웃음).”

—이후 주택을 보유한 임대인이라는 게 밝혀졌어요. 여당에선 ‘가짜 임차인'이라고 비판했죠? 왜 그 내용은 빠뜨렸나요.

“그 부분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연설의 핵심은 임대차 3법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국회가 반성하자는 것이었으니까요. 메시지의 핵심에 대고 반응하는 게 정치인데, 본질 아닌 부분을 물고 늘어져 공격하는 모습을 보니 하수 같았습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명연설이라고 평했어요. “‘빨갱이’ 소리 하지 않고도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죠.

“고마우면서도, 진 교수 말씀을 보며 우리 당 이미지가 참 고착됐구나 싶었어요. 지금까지 당에서 빨갱이 운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사람들 머리에 그렇게 박혀 있는 거잖아요. 진 교수는 나이 들며 점점 글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그날그날 누구보다 날카롭게 현상을 진단하는 것도 대단하고. 자기를 끊임없이 닦는 사람이구나 싶어요.”

—이른바 ‘조국 흑서’ 멤버인 서민 교수도 윤희숙을 기대되는 정치인으로 언급했던데요.

“김웅 의원이 서민 교수 얘기를 하도 하길래 페북 친구 신청을 했더니 1초 만에 수락하더라고요. 냉소적일 줄 알았는데 만나 보니 재치 넘치고 따뜻한 분이었어요.”

—지난 11일 오후 3시 24분부터 12일 오전 4시 12분까지, 장장 12시간 47분 동안 필리버스터 연설을 했어요. 어떻게 준비했나요.

“갑자기 대타로 올라간 거였어요. 예정돼 있던 동료 의원이 사정이 생겨 대신해 달라고 오전 10시에 문자를 보냈어요. 그때부터 5시간 정도 후다닥 준비했어요. 여당이 일방 처리에 나선 국정원법, 남북 관계 발전법 개정안, 5·18 역사 왜곡 처벌법 등 세 법이 표현의 자유, 기본법을 무시한 법이니 ‘닥쳐 3법’으로 하면 되겠다 싶었죠. 김웅 의원이 제가 무슨 말만 하면 장난삼아 ‘닥쳐’ 하는데 그 단어가 떠올랐어요.”

—13시간 가까이 하리라고 예상했나요.

“네다섯 시간 얘기하자는 맘으로 올라갔어요. 하다 보니 동료 의원들이 앞자리로 옮겨 응원하더군요. 내려올 수가 없었어요. 긴장해서 초집중했더니 화장실도 한번 못 갔답니다. 자정 무렵 권성동 의원이 ‘화장실 다녀와’라고 소리쳤어요. ‘아무리 내 나이 오십이지만 그래도 여잔데 주책이야’ 하면서 넘어갔죠.”

—연설에서 “제발 겸손해지자. 법을 만드는 입법부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말자” “이런 기회에 공부도 좀 하자”라고 했지요.

“입법부의 정체성을 공부하자는 얘기였습니다. 국체(國體)의 요체가 삼권분립인데, 행정부와 입법부가 완전히 상하 관계예요. 청와대에서 언제까지 데드라인 맞춰 통과시키라고 하면 여당이 날치기로 통과시켜요. 말도 안 돼요. 국민이 준 권력 앞에 겸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연설 끝나고 ‘철의 여인’ ‘한국의 대처’ ‘걸 크러시’ 같은 별명이 생겼던데요.

“소심해 화장실도 못 갔는데 웬 철의 여인? 교수니까 오래 말하는 건 자신 있고 채울 콘텐츠도 많았는데 체력이 문제였어요. 후반부에 탈장이 좀 일어나 며칠 고생했답니다.”

—대처를 좋아하나요?

“뚜렷한 방향성을 세운 다음 몰고 가는 리더십은 존경하지만 요즘 시대에도 먹힐까 하는 질문엔 물음표가 생겨요. 지금은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받는 시대예요. 저마다의 목소리에 가중치를 둬야 해요. 선명한 방향성을 지니고 앞에서 이끌어 가는 ‘대처식 리더십’과 여러 목소리를 종합해 타협을 이끌어 내는 ‘메르켈식 리더십’이 합쳐진 형태가 이상적이에요. ‘대르켈(대처+메르켈)식 리더십’이랄까요.”

—초선, 그것도 여성 의원이 주목받으니 주변 견제는 없던가요.

“당 이미지가 워낙 남성적인데 막상 들어와 보니 수직적 위계가 굉장히 약해 놀랐어요. 원래 더불어민주당은 조직 규율이 세고, 국민의힘은 세대 간 규율이 강했다고 하는데 우리 당은 초선 비율이 60% 정도 돼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유연해졌어요. 견제는 못 느꼈습니다.”

◇포퓰리즘에 펀치 날리는 파이터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국책 기관인 KDI 재직 시절부터 ‘포퓰리즘 파이터’로 유명했다. 좌우 가리지 않고 인기 영합성 정책에 펀치를 날렸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위원회가 정치 논리로 움직인다는 이유로 사퇴했다. 지난 3월 출간한 저서 ‘정책의 배신’은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비정규직 대책, 국민연금 문제, 정년 연장, 신산업 정책 등 문재인 정부의 6가지 주요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현 정부 재정 정책의 가장 큰 문제가 뭔가요.

“미래 세대에게 빚을 전가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한국 진보는 환경 얘기를 하면 지속 가능성을 말한다고 반기면서, 재정 부담을 미래 세대에게 전가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 수구라고 해요. 지속 가능성의 기본 논리는 지금 세대에게 허용되는 것을 미래 세대에게도 허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환경도, 재정도 같아요. 현 정부는 지금 재정을 당겨 써버리자고 해요. 이러면 미래 세대 때 쓸 재정은 확 쪼그라들어 버려요. 잘못된 정책이죠. 획일적, 급진적인 것도 문제입니다.”

—예를 들자면요?

“주 52시간제를 보죠. 우리 사회엔 ‘저녁이 있는 삶’보다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삶’이 더 중요한 사람도 여전히 있어요. 그런 이들에게 저녁 있는 삶을 주겠다면서 갑자기 근무시간을 줄여 버리면 저녁 먹을 수 있는 삶을 뺏을 수 있어요. ‘노란불 기간’을 주고 소통부터 해야죠. 정부가 나서서 왜 획일적으로 합니까.”

—현안에 대해 적극 발언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를 유예하는 것이 전태일 정신”이라고 해 망언 논쟁이 붙기도 했죠.

“역사적 인물인 전태일을 제 방식으로 추모한 거였어요. 논란의 밑바탕은 ‘내가 찬성할 수 없는 방식으로 왜 네가 전태일을 기리느냐’였어요.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거죠. 역사적 인물은 어느 시대에서건 재해석할 수 있고, 다르게 생각할 여지는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게 자유 민주주의 기본 아닌가요? 저는 ‘쓸데 있는 갈등' ‘의미 있는 소란'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시작한 지 세 시간이 훌쩍 넘어 점심시간이었다. “배고프죠? 구내식당으로 갑시다. 3900원짜리 국회 밥, 잘 나와요. 남이 해주면 다 맛있지 뭐.” 그가 옷걸이에서 낡은 검정 패딩을 꺼내 입었다. 영락없는 동네 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