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5시. 빨간색 산타 모자를 쓴 SK텔레콤 직원 조회수(31)씨가 와인잔과 함께 구글 미트(Google meet·화상 앱)에 등장했다. 나머지 직원 7명도 각자 준비한 음식과 음료를 들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SK텔레콤은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권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각자 집 컴퓨터 앞에 앉아 연말 송년회를 했다. 이른바 ‘랜선(비대면) 송년회'. 음식과 음료는 정해진 법인 카드 한도 내에서 알아서 시키면 된다. 파스타부터 소고기 구이, 맥주와 와인까지 다양한 식음료가 모니터 앞에 펼쳐졌다. 서로 어떤 음식을 먹는지 ‘인증'한 다음엔 가수와 노래 제목 맞히기 퀴즈가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조씨가 음악을 들려주면, 정답을 아는 사람이 머리 위로 양팔을 올려 동그라미를 만들면 된다.
작년에는 이 회사도 외부 식당에서 송년회를 했다. 조씨는 “올해는 팀원들끼리 제대로 회식을 한 적도 없는데, 한 해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이런 시간을 가지니 좋더라”며 “처음엔 어색했지만, 나중엔 ‘이것도 추억으로 남겠다'는 생각에 즐거웠다”고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밤 9시 이후 식당 내 취식이 금지되고, 회사마다 재택근무가 강화되면서 ‘랜선 송년회’가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각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이 모인 네이버 카페에서는 지난 11월부터 “랜선 송년회 아이디어 구한다”는 글이 줄을 이었다. 실제 비대면 상황을 역으로 활용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등장했다. 과거 ‘가족오락관’의 인기 코너였던 ‘고요 속의 외침’처럼 직원들이 음소거를 한 채 서로 말하는 것을 맞혀 보자는 아이디어, 한 명이 그림판에서 그림을 그리면 나머지 사람들이 이를 맞히는 ‘캐치마인드 게임’ 등이 호응을 얻었다.
국내 대기업에 근무하는 이모(36)씨는 “재택근무 중이라 팀장이 요리를 진행하면 팀원들이 이를 따라 해보는 비대면 송년회 아이디어를 회사에 제안했다”며 “오히려 예년과 다른 이색 송년회가 될 것 같아 기대 중”이라고 했다. 천연 립스틱을 만드는 스타트업 율립은 VIP 고객들에게 스파클링 논알코올 샴페인과 치즈 플래터를 미리 배송하고서, 줌(Zoom·화상 앱)에서 만나 이를 동시에 마시고 먹는 송년 간담회를 진행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인 ‘배달의민족’은 아예 법인 사업자에 한해서만 구매 가능한 ‘B2B 쿠폰’을 내놓았다. 회사가 미리 결제하면, 직원들은 이 쿠폰으로 ‘랜선 회식’ 등을 할 때 음식을 배달시킬 수 있다.
기업행사 대행업체 더팀컴퍼니는 올해 초부터 각 기업들의 비대면 회식 진행을 맡고 있다. 더팀컴퍼니 유성(35) 대표는 “이번 달에만 60~70건의 비대면 송년회 진행이 잡혀 있다”며 “지난해보다 송년회를 못 하게 된 올해에 오히려 더 많은 문의가 오고 있다”고 했다. 유 대표는 “비대면 송년회의 경우 자연스러운 대화는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퀴즈 쇼나 시상식 등 비대면 상황에서도 비교적 쉽고 즐겁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게 좋다”며 “10명 이상이 참가할 땐 진행자를 두는 게 집중도가 높다. 그래야 상황에 따라 특정인을 더 크게 화면에 보여주거나, 발언권을 부여하는 등 아기자기한 진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일부 기업은 송년회 대신 해당 예산에 맞는 선물을 주기도 한다. 인천에 있는 A 중소기업은 최근 송년회 대신 직원들에게 한우 세트를 선물했다. 이 회사 직원 김모(32)씨는 “코로나로 인해 생긴 거의 유일한 좋은 점인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