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석(57)씨는 1986년부터 경북 상주에 있는 목장에서 경주마(競走馬)를 생산해왔다. 지난 10월 그는 몸무게 400kg인 한 살짜리 말 10마리를 싣고 2시간 거리에 있는 전북 장수로 가기로 했다. 자신이 기른 경주마들을 경매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서다. 그런데 장씨가 보유한 5톤 크기 운반 트럭은 차량 구조와 말의 안전 문제 때문에 최다 다섯 마리만 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두 차례 걸쳐 상주와 장수를 오가며 말을 실어 날랐다.

경매는 오후 1시 30분부터 세 시간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장씨 소유의 10마리 말을 사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장씨는 “코로나19로 경마 경기가 제대로 열리지 않다 보니, 우리 같은 말 생산자들이 거리로 나앉게 생겼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오전 경기 과천경마장 안에 있는 마방(마구간). 경주마들은 이곳에 머물다가 경마장으로 가서 훈련하거나 시합을 뛴다. /곽창렬 기자

코로나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마업계다. 연간 약 2700경기가 열리던 경마장(서울·부산·제주)은 코로나가 터지자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넉 달 동안 완전히 문을 닫았다. 이후 무관중 경기가 열리기도 하는 등 코로나 상황에 따라 경기장 문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결국 올 한 해 경마는 절반 수준인 1500여 경기만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경기가 안 열리면서, 마주(말 주인)와 기수(말을 타는 선수), 조교사(경마 지도자), 말을 생산하는 농민까지 큰 위기에 빠졌다”고 말했다. 국내 경마 시장은 말이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기수, 조교사, 마주 등이 상금을 나눠 갖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예년 같으면 한 경기당 뿌려지는 상금이 총 1억1000만원이지만, 현재는 한국마사회가 자체 재원으로 내거는 60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제대로 열리지 못해 수입이 크게 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경주마를 생산하는 농민들도 어려움에 직면했다. 마주들이 말 구매를 꺼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경주마는 연간 1400여 마리다. 이 가운데 200여 마리는 질병 등으로 사망하고, 1200마리가 살아남는다. 이들이 만 2세를 넘으면 경매 시장에서 팔리거나 개별적으로 거래가 이뤄져 경기에 투입되고, 약 5세까지 활약한다. 마주들이 마리당 평균 4000만원을 주고 말을 사들인 뒤, 경기를 통해 상금을 받으면 다른 말을 구매하면서 투자를 이어가는 식으로 경마 생태계가 유지된다. 한 마주는 “사료 구입 등 관리에만 1년에 1500만원이 드는데, 경기가 줄어 상금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말 구매는 위험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주마 경매 시장도 크게 위축됐다.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가 5월·7월·9월·11월 등 네 차례 경매를 진행했는데, 시장에 나온 말 512마리 가운데 108마리만 판매됐다. 2016년(581마리 가운데 213마리)과 2017년(570마리 가운데 231마리)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일부 생산자는 마주에게 무료로 말을 가져가라고 하는 실정이다.

경매 시장이 얼어붙자 한국마사회는 내년 한 해 동안 외국에서 태어난 말(외산마) 수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경마업계는 국내산 경주마 외에도 한 해 평균 300마리쯤 외산마(주로 미국)를 들여온다. 당연히 국내산 말보다 기량이 뛰어난 경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결정은 외산마 수입을 막고 국내산 경주마 경매 건수를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시도다.

극장이 자국 영화를 일정 기준 일수 이상 상영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인 ‘스크린쿼터’와 비슷해 ‘말크린쿼터’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말크린쿼터‘ 때문에 통상 분쟁이 일어날 우려도 있다. 한국마사회 정대원 홍보부장은 “국내 경주마 생산 시장을 고려해 내린 조치지만, 미국 등 경주마 판매 국가의 반발이 있을 수 있어 무기한 유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는 경마 경기에도 각종 변수를 낳고 있다. 이를테면 인기 없는 말이 우승해 고배당을 만드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예년 같으면 예정된 스케줄에 맞춰서 경주마 훈련량을 조절하는 등 준비가 이뤄진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에 따라 경기가 들쑥날쑥 열리다 보니 말뿐만 아니라 기수들도 컨디션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 2일 경기도 과천 경마장에서 만난 기수 김정준(31)씨는 “국내산 경주마는 평균 몸무게가 480kg 정도 나가는데, 올해는 강도 높은 훈련이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살이 30kg 이상 찌는 경우도 있다”며 “그럼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경마업계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경마가 어떤 방식으로든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경마장조교사협회 박대흥 회장은 “프로야구 등 프로 스포츠에서도 스포츠토토 등을 통해 베팅이 이뤄지고 있는데, 유독 경마만 사행성 조장을 이유로 온라인 베팅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소액만 베팅할 수 있게 해도 좋으니 경마 산업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