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지면과 온라인을 뒤덮은 한 주입니다. 진영 논리를 유일신 신앙으로 믿는 사람들도 더 많아졌죠. 주지하다시피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자기 입맛에 맞는 친구와 뉴스만 골라 주고, 반대쪽 뉴스와 친구는 자동 삭제합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에서 예외적 이야기 하나를 알게 됐어요. 이 정권에 비판적인 시인과 반대로 이 정권을 신뢰하는 출판사 사장 간의 작은 우정에 대한 이야깁니다. 둘은 페북 친구일 뿐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죠.
주인공은 김도언(48) 시인과 소명출판 박성모(57) 대표. 시인은 올해 5월 은평구 신사동에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이름은 ‘살롱 도스또옙스키’. 러시아 문호의 이름을 거창하게 가져왔지만, 가난한 시인에게 돈과 책은 부족하고 낭만과 열정만 가득했죠. 소명 박 대표가 여기에 화답합니다. 오랫동안 창고에 있던 재고이기는 했지만, 500여 권의 귀한 책을 트럭에 실어 보냈다는 거죠. 택배비까지 포함한 무료 기증이었습니다.
문학과 출판 담당을 지낸 기자에게 소명출판은 ‘더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부모도 아닌데 이런 비유는 무례겠지만, 펴내는 양서(良書)에 비해 자주 소개하지는 못했거든요. 대한민국 학술 출판의 자존과 양심으로 불리지만, 대중 눈높이에 버거운 경우가 많다 보니 신문 지면에서는 상대적 홀대를 받은 거죠.
각각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판단할 때, 시인과 사장은 정치적으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전술했지만, 진영 간 갈등의 골이 감정 다툼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 쪽에 있는 사람에게 이만 한 선의를 베푸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정치적 견해나 지향이 당신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통 큰 결정을 했다. 새삼 옷깃을 여미고 경의를 표하면서 문화는 정치에 앞선다는 것을 깨우친다”고 적었습니다.
책을 받은 뒤 시인은 작은 사례로 건강식품 침향환을 보냈고, 사장은 “직원들과 잘 나눴다”는 답 문자를 보내왔답니다. 여전히 두 사람은 면식 없는 사이인 거죠.
이런 작은 이야기 하나로 진영 갈등이 해결될 리는 없겠지만, 주말 지면 한 구석에는 이런 다른 이야기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는 세상에서, 입장 다른 사람끼리도 이 정도 온기의 연대와 우정은 가능하다는 것을. “멋있네요, 두 분”이라는 페이스북 댓글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